[짬] 시민합창단 이지콰이어 이준용 대표·정은주 지휘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5명 이상 모이기도 어려운 시기에 새로 창단한 합창단이 있다. 더구나 창단 1년도 되지 않은 이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합창 편곡 공모에 나서 화제다. 생활예술합창단을 표방하며 지난해 4월 온라인으로 출범한 ‘이지콰이어’는 새해 초부터 ‘우리가 사랑했던 노래들’을 주제로 ‘제1회 합창편곡 공모’를 진행 중이다. 편곡 지정곡 목록도 이채롭다. 김동률·루시드폴·부활·브로콜리너마저·빛과소금·옥상달빛·이소라·이승환·이적·토이, 모두 10명의 대중가수가 부른 가요 30곡이다.
“중학교 때부터 노래를 좋아해 합창 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그런데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게 있어서 그만두곤 했죠. 클래식 가곡이나 성가곡을 부르는 합창단은 많은데 정작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평소 즐겨 듣고 부르는 팝·재즈나 대중가요를 하는 합창단은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10년 전쯤에도 한번 시도를 했다가 접었던 아쉬움이 있었죠. 그래서 지난해 2월 더 늦기 전에 직접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모으기로 결심했어요. 합창단 이름도 ‘쉽다’는 의미로 이지콰이어로 직접 지었죠.”
지난 2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온 이지콰이어 대표 이준용(50)씨와 지휘자 정은주(36)씨에게 ‘역발상의 창단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코로나 방콕’ 역발상 착안
“외국 시민들 편안한 합창 부러워”
‘대중가요 부르는 생활예술합창단’
온라인 모집에 10여명 호응 ‘창단’ 2000년대 대중가수들 유행곡 대상
이달말까지 ‘합창편곡 공모’ 진행중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방콕’ 덕분에 창단 용기를 냈어요. 유튜브 등을 통해 외국 합창단의 영상을 자주 보게 됐는데, 학생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동네나 직장에서, 편안한 발성과 가벼운 차림으로 즐겁게 노래를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어요. 부럽기도 했고요. ‘우리 합창단은 왜 그렇게 근엄한가?’ 나도, 우리도, 그들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합창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예술이잖아요?”
건축 관련 인테리어 전문업체에서 마케팅 담당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지난해 2월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저는 취미로 노래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10년 전부터 대중음악 합창단이 생기길 기다려왔습니다”로 시작하는 ‘단원 모집 게시글’을 올렸다. 이어 무려 400여명에게 ‘페친’ 신청을 해서 취지를 알렸다.
그러자 수십명이 ‘좋아요’로 호응했고 주변 지인까지 10명을 엄선해 준비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사비를 털어 오픈채팅방을 열고, 누리집을 꾸리고, 연습 공간도 마련했다. 지난해 4월 마침내 창단 모임과 함께 첫 연습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연습은 자주 중단됐고 단원들은 온라인 소통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10월 국립합창단 부지휘자 출신으로,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정은주씨가 기꺼이 지휘를 맡아주기로 했어요. 천군만마 같은 귀인인 셈이죠.”
이 대표와 ‘페친’으로 초기부터 교류해온 정씨는 부산 동아대 성악과를 나와 일찍이 창원시립합창단원으로 10년간 활동한 정통 클래식 음악 전공자였다. 우연히 지역 방송사의 어린이합창단 연습을 도와주다 지휘의 매력에 끌린 그는 한세대 대학원에서 합창지휘 석사를 거쳐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지휘자와 트레이너, 보컬코치를 통해서 합창의 재미를 깨달았죠. 시립합창단원으로서 합창음악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잘 알고 있어요. 2018년 국립합창단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이듬해 ‘신진 객원 부지휘자’로 뽑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데뷔 콘서트'도 성황리에 마쳤죠. 예술인으로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고민하던 중에 이지콰이어를 만난 건 또다른 도전이었어요. 저도 ‘한 열정’ 하는데 이 대표님의 끈질긴 열정에 ‘세뇌’ 당했죠. 누구나 이 대표 얘기를 듣다보면 합창단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에요.(웃음)”
정씨는 “진짜 하고 싶었던 즐거운 음악을 시도하는 설렘과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면서도 그 불안함이 예술의 생명이자 창작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식 지휘자를 영입한 이지콰이어는 지난해 12월 첫 데뷔 공연을 했다. 경기문화재단 주최 ‘한 사람을 위한 예술’ 공모에 뽑혀 여주의 대안학교인 늘푸른자연학교에서 김태양 교장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지휘자·반주자 포함 8명이었으니 중창 공연이었으나 두 사람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근사한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역시나 이 대표의 사비를 털어 ‘합창편곡 공모’에 나선 것이다.
“시립합창단 등에서 가끔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하면서 대중가요를 ‘양념’처럼 부르기는 해요. 그런데 아직 이문세·유재하·김광석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우리는 2000년 이후 노래로 젊은층을 끌어들여보려고 해요.”
‘합창편곡 공모’는 온라인으로만 알리고 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이미 75여곡이 들어왔고, 이달 말까지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지콰이어는 오는 20일 오디션을 통해 새 단원도 선발해 공모 당선곡을 연습한 뒤 공연할 계획이다. 공모 일정과 방법은 누리집(easychoir.c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시민합창단 이지콰이어의 정은주(왼쪽) 지휘자와 이준용(오른쪽)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국내 유일 ‘대중음악 전문 합창단’을 꿈꾸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외국 시민들 편안한 합창 부러워”
‘대중가요 부르는 생활예술합창단’
온라인 모집에 10여명 호응 ‘창단’ 2000년대 대중가수들 유행곡 대상
이달말까지 ‘합창편곡 공모’ 진행중
온라인으로 진행중인 이지콰이어의 ‘합창편곡 공모’ 안내 포스터.
지난해 12월 여주 늘푸른자연학교에서 첫 공연을 하고 있는 이지콰이어 단원들. 코로나 탓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교직원과 전교생에게 노래를 전달했다. 중부일보 제공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