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김상열연극사랑회 한보경 대표
지난달 26일은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우리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고 김상열 극단 신시 대표의 22주기 기일이었다. ‘제22회 김상열연극상’ 시상식과 16회 김상열연극장학금 수여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그가 떠난 이듬해인 1999년부터 한해도 빠짐없이 이어진 시상식은 부인의 집념 어린 순애보 덕에 가능했다.
올해는 특히 고인이 1978년부터 3년간 썼던 <문화방송>(MBC) 티브이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1·2)의 극본을 묶어낸 <김상열 희곡집>(16·17권)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코로나 사태로 규모는 축소했지만 무사히 시상식과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어서 더 감회가 깊었어요. 무엇보다 <김상열 희곡집>을 얼추 마무리해서 큰 숙제를 다 한 기분입니다.” 김상열연극사랑회와 극단 김상열연극사랑을 이끄는 한보경 대표를 시상식 전후 전화로 만났다.
1998년 남편 별세하자 ‘사랑회’ 꾸리고
22년째 연극상 시상…장학금도 16년째
80년대 남편 집필 ‘수사반장’ 대본 ‘김상열 희곡집’ 16·17권으로 펴내 최근 고 김상열 ‘은관문화훈장’ 추서
올 연극상은 박해성 연출가 받아
“이번 ‘수사반장’ 희곡집은 <한겨레> 덕분에 나온 셈이에요. 2018년 ‘길을 찾아서-고석만의 첨병’을 연재하면서 김상열 작가가 쓴 첫번째 ‘수사반장’ 극본을 찾아달라는 고석만 피디의 요청을 받고 자료를 정리했거든요. 70여편 대본을 일일이 스캔하는 데만 두 사람이 꼬박 두 달을 매달렸어요. 2007년 김상열장학금 수상자인 이양구 작가가 스캔한 원고를 보고 요약본을 만들어 고 피디에게 보냈고, 그 가운데 26편의 대표작을 골라 책을 낼 수 있었어요.”
이번 <수사반장> 희곡집에서 고 피디는 ‘들어가는 말’을 맡아 극작가 김상열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강렬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1978년 가을 개편 때 문화방송의 간판 프로 ‘수사반장’ 연출을 맡았다. 우연히 한국방송(KBS) 추석특집극 <팔베개>를 보고 극작가 김상열 이름을 처음 발견했다. 세운상가 3층 극단 현대극장의 아파트 겸 사무실 겸 연습실로 무작정 찾아갔다. 그런데 극단 관계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래서 세검정 삼거리에서 구기터널 쪽 언덕에 있던 그의 자택으로 찾아가 밤새 대화를 나눴다. 그는 재기발랄하고 호기에 넘치며 광기까지 엿보이는 예술가였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를 만났다.”
드라마 ‘수사반장’은 1971∼89년 무려 18년간 방영된 수사 실화극이다. 김 작가는 1978∼80년 3년간 100편이 넘는 수사반장 극본을 썼다. 고 피디는 “김상열 대본은 탁월한 입담으로 가득하다. 80년대 언어 감각으로 21세기를 달리고 있었다. 오늘 읽어도 신선하다. 시어들이 넘치고, 사물의 객관묘사가 탁월하다”고 새삼 감탄했다.
한 대표 역시 “이번에 ‘수사반장’ 출간 작업을 하면서 그때의 시대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이 현대 우리 삶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상열은 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극단 가교에서 공연 활동을 시작해 천막 극장, 교도소 순회공연, 실험극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대 마당 세실극장 대표로 소극장 운동에 앞장섰고, <에비타> <뿌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으로 뮤지컬 대중화도 이끌었다. 1988년 극단 신시를 창단했고, 문화방송 마당놀이 <구운몽> <배비장전>, 악극 <번지없는 주막>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전통 연희극의 현대화를 주도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본과 협동연출도 맡았다. 서울연극제(전 대한민국연극제) 최다 출품·최다 수상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이처럼 종횡무진 모든 공연예술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열정과 재능을 쏟던 그는 결혼 13년 만인 1998년 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한씨는 교정작업 중에 멈춘 <번지없는 주막>의 희곡집(4권)을 남편의 1주기 때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꾸준히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던 작품과 글을 찾아 22년 만에 17권까지 매듭을 지었다. 앞서 2018년 20주기 때 그는 남편의 연극인생 33년 자료를 총정리한 <김상열, 광대 시인의 연극세계>를 직접 펴냈다. 역대 ‘김상열연극상’을 수상한 연출가 7명이 작품집 <그때, 김상열>의 희곡 낭독 공연을 헌정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고 김상열은 지난달 2020문화예술발전유공자 시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사실 스스로 생각해도 어떻게 지금껏 꾸려왔는지 신기할 때가 있어요. 무슨 대단한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편이 남겨놓은 집과 그를 좋아해 준 수많은 팬의 후원 덕에 근근이 유지해올 수 있었죠.”
해마다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이자 김상열기념관이기도 한 김상열연극사랑의집이 바로 그 자택이다. 한국 연극의 메카인 서울 종로 대학로 인근 혜화동에 자리한 다가구 주택이다.
“1980년대 초반 극단 현대극장의 상임연출가와 새내기 배우로 처음 만났어요. 유난히 심부름을 자주 시켰는데 알고 보니 나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와 함께했던 17년간보다 5년이나 더 오랜 세월이 지났네요. 하지만 ‘내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그는 진정 ‘연극이 신앙이었던 예술가’였기에 그 정신을 잇고자 해요.”
한편 올해 ‘김상열 연극상’은 연출가 겸 극작가로 <코리올라누스>, <후쿠시마의 바람>, <스푸트니크>, <아는 엔딩> 등의 작품을 발표한 박해성씨가, ‘김상열연극장학금’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 재학생으로 연극 <푸르는 날에>를 연출한 강민구씨가 받았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22년 동안 남편이자 연극인 김상열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는 한보경 배우. 사진 김상열연극사랑회 제공
22년째 연극상 시상…장학금도 16년째
80년대 남편 집필 ‘수사반장’ 대본 ‘김상열 희곡집’ 16·17권으로 펴내 최근 고 김상열 ‘은관문화훈장’ 추서
올 연극상은 박해성 연출가 받아
지난달 26일 열린 2020 김상열연극상 시상식 단체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상현, 최준호, 고석만, 박정순, 최창주, 이대연, 이승호, 전인철, 윤여성, 최주봉, 김명화, 허성윤, 한보경, 강민구, 박해성, 전세권, 박정기씨. 사진 김상열연극사랑회 제공
고 김상열 극작가가 쓴 실화 드라마 <수사반장>의 극본 26편을 묶어낸 김상열 희곡집 16~17권.
지난 10월19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2020문화예술발전유공자 시상식에서 부인 한보경(왼쪽)씨와 딸 김태나(오른쪽)씨가 고 김상열 선생의 은관문화훈장을 대신 수상했다. 사진 김상열연극사랑회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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