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전주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관장
“(지난해) 어느날 밤 11시 택배가 도착한 것을 보고 당황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이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의아했다.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었고 택배기사는 이미 사라졌다. 이 시간까지 배달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 밤중에 배달은 가혹한 일이다. 근무시간 단축을 권장하는 세상에 누군가는 한밤중까지 일해야 먹고 사는 것이다.”
<택배> 제목으로 기획전을 여는 김지연(72) 전북 전주 서학동사진관 관장의 전시회 홍보물 내용이다. 그는 올해 초부터 자신이 받은 택배상자, 그리고 택배를 찍은 사진 등 100여점을 9일부터 새달 10일까지 한달간 선보인다. 부제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에도 끼지 못하는 이 시대의 택배기사에 주목한다’이다. 매일 일상 속에서 택배를 받는 과정을 사진과 설치를 통해 보여준다. 지난 7일 사진관에서 그를 만났다.
새달 10일까지 한달간 ‘택배’ 전시
‘자영업자·노동자에도 끼지 못하는’
“물건만 보고 사람엔 관심없는 우리” 50대초 뒤늦게 사진 시작해 20여년
정미소 같은 옛것·민중의 삶 기록
“낮은 계층 편안해야 건전한 사회죠”
우선 전시회를 연 이유를 바로 묻자 그는 자신이 겪은 일화부터 소개했다. ‘몹시 더웠던 2018년 여름, 한낮에 택배기사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대문을 들어서며 “어휴~사람이 꼬실라지네요(‘태우다’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너무나 적절한 비유였기에 민망한 웃음이 터졌다. 기사도 함께 따라 웃었다. 농부는 땡볕에서 일한 뒤 잠시라도 시원한 그늘에서 쉴 수 있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시간에 쫓겨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음료수라도 한 잔 주려고 냉장고로 간 찰나 기사는 곧바로 사라지고 없다.’ 그는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늘면서 업무량도 가중되고 작업환경도 더 나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나도 왜 이런 기획전을 하는지 자문해 보왔어요. 결국 선친한테서 물려받은 디엔에이(DNA)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광주에서 사학을 운영했던 아버지가 경영난으로 폐교를 하게 되면서 집안이 망했죠. 가족 모두가 너무 고생을 해서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원망했죠. 그런데 나 역시 이렇게 수익도 없는 전시회를 열고 있네요. 아버지는 사회의 낮은 곳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광주가 고향인 그는 결혼과 함께 전주에서 살아왔다. 그는 2006년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마을의 낡은 정미소를 고쳐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개관했다. 그때만해도 생소했던 문화공동체를 지향했다. 주변에서는 실패할 것이라며 말렸다. 도시재생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개인이 농촌마을의 근현대유산을 살려서 지역과 함께 문화활동을 해보겠다고 나선 사례는 드물었다. 유럽 여행 때 작은 마을의 미술관에서 질높은 작품을 보면서 부러웠던 것도 한 원인이다. 직접 동기는 정미소 사진을 찍다보니까 정미소가 자꾸 사라지는 추세여서 옛것 기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움이 많아 2012년 잠시 운영을 멈췄다.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 주변의 한옥을 개조해 2013년 5월 서학동사진관을 열었다. 계남정미소가 문화운동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색깔 다르게 사진전시관만 생각했다. 형편이 어려운 젊은 작가 등의 전시회를 위해 힘들지만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연극·미술·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십 문턱에 뒤늦게 사진을 시작했다. 그동안 옛것을 찾는 역사의 발자취나 민중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정미소>(2002년),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4년).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 중>(2008년), <근대화상회>(2010년), <3천원의 식사>(2014년), <빈방에 서다>(2015년), <자영업자>(2016년) 등 꾸준히 사진전을 열어왔다.
그는 ‘3천원의 식사’ 전시 때 일화도 들려줬다. 3천원은 서민들이 한끼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그런데 전시를 본 한 젊은이가 “식당에 가면 음식만 봤고,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전시회를 보고 나서 사람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들의 노고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단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택배가 오면 물건만 바라볼 뿐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부터 워낙 생활 주변에 시선을 뒀다. 2016년에는 자영업자 48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삶을 가감없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줬다.
“이번 추석에도 기사님들은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아파트와 골목을 누빌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는 택배기사는 중요한 전달자입니다.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낮은 곳에 있는 계층이 편안해야 행복하고 건전한 사회입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전주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관장이 지난 7일 한옥을 개조해 만든 전시장에서 ‘택배’ 사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자영업자·노동자에도 끼지 못하는’
“물건만 보고 사람엔 관심없는 우리” 50대초 뒤늦게 사진 시작해 20여년
정미소 같은 옛것·민중의 삶 기록
“낮은 계층 편안해야 건전한 사회죠”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관장이 지난 7일 ‘택배’ 전시를 기획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택배’ 전시에 소개한 김지연 관장의 사진 작품. “배달 물건만 보고 사람은 쳐다보지 않는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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