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예명 M00N-E) 작가가 7월29일까지 서울 문정동 삼성물산 사옥 1층에 자리한 래미안 갤러리에서 진행중인 개인전의 출품 작품 ‘기억 속으로’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이제야 비로소 ‘내 옷’을 입은 느낌이에요. 어릴 적부터 거침없이 달려온 ‘예술가’의 길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나 방황도 했지만, 반백년 중년의 문턱에 이르니 새삼 확신이 생겼어요. 이제는 화려한 허울보다는 ‘사람’ 그 자체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요.”
오는 29일까지 서울 문정동 복합문화공간 래미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조각가 이문희(문희·M00N-E)씨는 지난 9일 전시 제목 <더 스토리·이야기>처럼 패션디자인에서 출발한 자신의 삶이 운명처럼 조형예술의 세계로 이어진 여정을 들려줬다.
세 아이 키우며 파리 에스모드 ‘수석’
홍대앞 첫 복합문화공간 ‘오아이’ 기획
젊음의 명소·‘클럽 데이’ 효시로 유명
계약 취소 등으로 잇달아 사기 ‘좌절’
“찰흙 만지며 나도 몰래 치유의 경험”
삶의 굴곡 깃든 ‘더 스토리’ 작품으로
문희 개인전 포스터. ‘동행 II’(Go with II). 사진 튤립 아트랩 제공
“아버지께서 건축 일을 하신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리거나 만드는 놀이를 좋아했어요. 이화여대 섬유예술과 시절엔 한국디자인대전이나 뉴욕 파인힐아트갤러리전 같은 국내외 대회에서 곧잘 입상도 하며 재능을 인정받았죠.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해서 세 아이를 낳아 10년간 육아와 미술학원을 함께 하느라 일상에 찌들어 살게 됐어요. 그러다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 유학을 감행했어요. 의사로 자리잡은 남편의 지지와 후원은 그나마 행운이었죠.”
2003년 9살·6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날아간 그는 패션 명문 ‘에스모드 파리’를 4년 만에 수석 졸업했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돌아온 그는 미대 지망생이던 남동생과 손을 잡고 홍대 앞에서 파격적인 문화실험에 뛰어들었다. 2006년부터 5년간 서울에서 가장 ‘핫한’ 젊은이들의 놀이터로 꼽힌 복합문화공간 ‘오아이(OI)’가 그것이었다. “오(O)는 지구를, 아이(I)는 주체적인 자아를 뜻해요.”
그가 직접 설계와 디자인을 맡았다. 7층 건물의 3층 전체, 야외 테라스까지 130평을 동굴처럼 꾸미고 바닥에 물까지 흐르게 한 몽환적인 분위기 덕분에 ‘순수우주공간’으로 불렸다.
이문희 작가가 2006년부터 5년간 남동생과 함께 운영했던 홍대 앞 복합문화공간 ‘오아이’의 내부. 곡선을 살린 동굴 형상의 실내 디자인은 그가 직접 다했다. 사진 이문희 작가 제공
“한달에 한번씩 패션쇼를 열었어요. ‘파리 프레타 포르테’ 참가는 물론이고 파리 유학파 패션전, 서울 국제영화제 개막식 초청 패션쇼 등을 기획하거나 연출하면서 승승장구했죠.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춤에도 끼가 많았던 남동생도 ‘화화’란 예명으로 다양한 행사를 열며 맹활약했어요. 지금의 홍대앞 ‘클럽 데이’를 그때 오아이에서 시작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앞서가다보니 ‘젠트리피케이션’도 가장 먼저 당했다. 오아이를 비롯해 일대가 유명해지자 부동산 값이 뛰더니 새 건물주가 나타나 돌연 재계약을 거절하고 원상복구까지 요구했던 것이다. 갑자기 문을 닫게 되니 권리금은커녕 투자비 수억원을 빚으로 떠안아야 했다. “어렵게 됐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오아이 때 경험을 살려보라고들 권해서 복합문화공간 디자인 사업을 벌였어요. 병원,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 커피 전문점, 패션몰 등등 지금도 몇군데 작품이 남아 있긴해요. 그런데 연달아 사기를 당했어요. 엎친 데 덮친다고, 친정과 시댁에서 하던 사업도 부도가 났어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싫어지고 무섭기까지 했다는 그는 폐인처럼 한동안 숨어지냈다. “어느날 선배들의 권유로 홍대 조소과 교수님의 작업실에 나가봤어요. 어릴 때 추억을 살려 심심풀이 삼아 찰흙 놀이를 했는데 뜻밖에 몰입이 됐어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치유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3년 가까이 씨름한 그는 2014년 인사동에서 첫 조각 전시회 <인(
人), 바람이 일다>로 다시 일어섰다. 브론즈, 유리, 레진(합성수지)의 재질로 만든 20여점의 초기 작품은 ‘패션 감각을 살린 특유의 조형선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패션 디자인 할 때 해뒀던 마네킹 스케치를 보면서 새로운 인체 조형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저만의 색채감각을 찾기도 했어요.”
문희 작가의 2017년 자생한방병원 신논현 사옥 설치작품 ‘아버지의 왕진 가방’. 사진 김문기 포토랜드
지난 2017년 자생한방병원 신논현 신사옥의 로비 디자인은 그에게 설치미술가의 새 명함을 안겨줬다. “패션과 오아이 시절의 공간 디자인, 거기에 조각의 경험을 모두 융합한 작업이었어요.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죠.”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새, 날개, 바람, 춤 등의 조형을 통해 ‘희망·자유·환희’ 같은 긍정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대표 작품 ‘비상'은 세찬 현실의 바람 속에서 몸이 다 부서지고 쓰러지지 않고 한 팔로 지탱하며 모진 현실을 이겨내는 모습을 형상화해 눈길을 끈다.
“문득 돌아보니, 올봄까지 세 아이 모두 하고 싶은 일이나 전공을 찾았고, 양가 어르신들 돌봄의 시기도 끝났더군요. 오로지 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을 얻은 거죠. 그런 기운이 은연 중에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