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글 그리는 안승환 작가
“한글은 참 아름다운 글자예요. 글의 뜻을 풀어 종이에 써봤어요.”
한글 그리는 작가 ‘낡고 못난’ 안승환(77)씨가 충남 당진의 갤러리 늘꿈에서 오는 30일까지 두 번째 글씨전 <우리글이 곱게 새새대는 자리>를 열고 있다. ‘새새대다’는 실없이 웃으며 가볍게 자꾸 지껄이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4900여점의 작품 가운데 25점을 고르느라 두번씩이나 몸살을 앓았다는 작가를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다.
당진에서 30일까지 두번째 글씨전
‘우리 글이 곱게 새새대는 자리’
1993년 첫 작품 ‘엉겅퀴꽃’ 등 25점
“사각 종이 위에서 자유로움 깨달아” 농구인 출신 문인화가 선친 안병석
“예술은 취미로만 하라해 낙농업 전공”
우선 전시장 들머리에 내건 ‘엉겅퀴꽃’이 눈길을 끈다. 정사각형 한지의 오른쪽 4분의3에 생김새가 꼭 엉겅퀴꽃 같은 글씨가 자리 잡았다. 왼쪽 4분의1에는 ‘단군임금 백두산 내려오신 지 4326년 애기원추리 등 우리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다’는 화제가 적혀 있다.
‘엉겅퀴꽃’은 그가 처음 그린 한글이다. ‘엉’,·‘겅’·‘퀴’는 줄기 생김처럼 들쭉날쭉 길쭉하고 ‘꽃’의 ‘ㄲ’은 요즘 애들 머리 염색한 듯 자주색에 오밀조밀하다. “선친께서 ‘국전’에서 입상하실 만큼 그림에 조예가 깊으셨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먹 갈고 물감도 꺼내 놓으라고 하시기에 준비하다가 물감을 찍어 붓장난을 해봤죠.” 그렇게 혼자 연습해 쓴 첫 작품이 바로 ‘엉겅퀴꽃’(1993년 작)이다.
가로로 긴 쭉쟁이는 고향 충청도의 말이 담겼다. “처음엔 쭉정이라고 썼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쭉쟁이라고 하거든? 그냥 작대기 하나 더 내려그었지.” 그의 목소리에 명랑한 웃음이 담겼다. 꺾인 벽면에 걸린 ‘뻔질’은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작품에 테두리가 있는 한겹 배접만 한다고 했다. 표구를 하면 공간 생김대로 걸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물감을 쓰느라 더 이상 먹을 갈지 않아 한가해진 벼루들에게는 미안함이 듬뿍 담긴 글을 새겼다.
그의 천성은 선친인 청곡 안병석(1923~84) 선생에게 물려받았다. 청곡은 농구 선수로 1948년 런던·56년 멜버른 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조흥은행 여자농구팀 창단의 주역이자 금융인이었다. 조흥은행 지점장으로 재직한 청곡은 월전 장우성·심산 노수현·제당 배렴·일중 김충현 등 당대 거장들에게 서화를 사사해 1966~76년 국전에서 12회 연속 입상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화의 거장이었다.
“나도 예술을 하고 싶어했는데 아버지는 취미로만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로는 최첨단 산업이던 낙농을 공부했지요.” 그는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의 동부제강 자리에 한호목장을 꾸리고 한우와 젖소를 키웠다. 사과 과수원도 경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진에 빠져 10여년 동안 세계를 돌며 자유여행을 했고, 흙벽의 아름다움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묵직한 묵의 향기에 빠져 글을 쓰는 서예 역시 큰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정형화된 틀을 넘어서는 변화를 갈망했다.
“붓에 먹 대신 물감을 찍던 순간, ‘엉겅퀴꽃’을 쓰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사각의 종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그날 그는 미국 가수 닐 세다카의 <오 캐럴>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미친 듯 춤을 췄단다. “전통을 계승하고 서예에 매진하는 이들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시류에 따르는 현대적인 문인화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는 진하게, 또는 연하게, 색깔을 달리하고 아교 혼합 배율을 조정해 번지는 효과까지 다 다르게 표현해 한글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그 자신 문인화 작가인 김윤숙 갤러리늘꿈 관장은 “17년 전 당진에서 첫 문인화 전시를 하면서 인연을 맺어온 안 선생님은 글씨만이 아니라 사진, 시, 글씨 등 모든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분이다. 어떤 장르든 섭렵해 자유롭게 독창적으로 표현한다”며 “진정한 예술인으로 건강하게 오랫동안 활동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 작가는 당진사진동우회 창립회원으로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진전>도 10회나 열였고, <엉터리사진과 늙은이>(다빈치·2006년)라는 작품해설집도 냈다. 실, 한지, 바늘 등을 이용해 여러 번 촬영을 하고 색감을 나타내는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는 그의 독특한 사진기술기법은 마치 빛으로 그린 추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교 때 4·19혁명을 겪고, 군 복무 때 베트남전쟁에 차출될 뻔 했던 그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사회단체 고문과 한베평화재단 후원회원 등으로 지역 시민사회의 어른 노릇도 하고 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날 ‘꼴통’이라고 말할 겁니다. 상관 안 해요. 1930년대에 추상을 시도한 이응노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종이의 사각에서 벗어나는 고민을 평생 할 겁니다.” 그 스스로 정한 여생의 숙제다.
당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안승환 작가는 자신을 ‘낡고 못난 꼴통’라고 낮추지만 사진·글씨·시 등 독창적인 문인화의 경지를 이뤄 ‘당진의 기인 예술가’로 불린다. 사진 송인걸 기자
‘우리 글이 곱게 새새대는 자리’
1993년 첫 작품 ‘엉겅퀴꽃’ 등 25점
“사각 종이 위에서 자유로움 깨달아” 농구인 출신 문인화가 선친 안병석
“예술은 취미로만 하라해 낙농업 전공”
안승환 작가가 1993년 그린 첫 한글 글씨 작품 ‘엉겅퀴꽃’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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