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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비자림로 훼손에 ‘숲과 고양이’ 지켜주고 싶어 그렸어요”

등록 2020-06-18 05:00수정 2020-06-18 07:36

[짬] 제주 발달장애 청년작가 고동우씨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동우씨는 7년 전부터 배운 적이 전혀 없는 그림 작업에 몰두해 좋아하는 고양이 작품을 들고 첫 서울 나들이 전시에 나선다. 사진 허호준 기자
제주에서 나고 자란 고동우씨는 7년 전부터 배운 적이 전혀 없는 그림 작업에 몰두해 좋아하는 고양이 작품을 들고 첫 서울 나들이 전시에 나선다. 사진 허호준 기자

“고양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에요.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숲이 사라지면 그 속에 사는 고양이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고양이가 숲에서 나오면 불편할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숲과 고양이를 그리게 됐어요.”

지난 14일 오후 제주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제주의 작가 고동우(29)씨의 말이다. 카페에는 강렬한 색감으로 그린 고 작가의 고양이 그림과 직접 제작한 옹기 작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달 전쯤 고 작가가 어머니 박이경(57)씨와 함께 문을 연 카페다.

골프·제빵 ·도예 거쳐 돌연 그림으로
“그려야겠어” 7년째 열정적 몰입해
소통약자 창작지원법인 ‘누구나’ 전속

18~24일 첫 서울 나들이 개인전
‘귀를 기울이면’ 주제…옹기 작품도 함께
“예민한 감성으로 ‘자연의 절규’ 통역”

고동우 작가의 첫 서울 개인전 포스터.
고동우 작가의 첫 서울 개인전 포스터.

고 작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발달장애를 지닌 청년이다. 부모의 노력으로 특수교육 치료를 받다 11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해 대회에도 나가는 등 10년 남짓 골프를 쳤고, 22살 무렵 어머니 권유로 제빵에 빠져들었다. 이어 그곳에서 알게 된 도예가를 통해 열심히 도예기술도 익혔다. 어머니 박씨는 “도예작업을 5~6개월 정도 하다가 동우가 거짓말처럼 ‘엄마, 나 그림 그려야겠어’하고 얘기를 하더라.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 본인이 직접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고 작가의 그림 그리기는 어느덧 7년째를 맞았다. 박씨는 “처음 아들이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보니까 무엇인가 샘솟는 것처럼 열정이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아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그렸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어머니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갈 때는 자주 비자림로를 이용한다. “뉴스를 통해 비자림로의 삼나무숲이 잘려나간다는 소식을 듣잖아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렇게 나무가 잘려나가서 숲이 없어지면 고양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그렇게 고 작가가 숲과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

숲과 생명을 그린 고 작가의 개인전이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열린다. 개인전 제목 <귀를 기울이면>(Whisper of the Forest)처럼 고 작가의 작품에 귀를 기울이면 ‘숲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한다. 2018년 12월 발달장애인, 결혼이주여성, 노인, 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의 소통 약자를 위한 창작 활동을 지원해 문화예술을 통한 자립기반 구축을 목적으로 창립된 사단법인 ‘누구나’(이사장 오한숙희)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고 작가의 그림 34점과 옹기 40점을 선보이게 된다. 고 작가는 누구나 전속작가이기도 하다.

김미애 누구나 사무처장은 “작가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시 기획을 하는데, 고 작가는 집중도가 뛰어나고 예민하다. 그림을 보다 보니 고 작가가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 작가에게 숲에 사는 생명체는 새가 아니라 고양이다. 고 작가만이 가진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예민성으로 인해 고 작가가 먼저 귀를 기울여서 ‘나무를 자르지 마’, ‘숲을 지켜줘’라는 숲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며 고 작가는 ‘동물과 숲과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통역자’라고 설명했다. 비자림로가 작품의 모티브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숲 훼손은 국내 곳곳에서, 전 지구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 작가는 보통 저녁식사를 마친 뒤 작업실에 들어가 새벽 1~2시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발달장애 청년작가는 고유의 섬세한 감각과 강렬한 색감으로 숲과 나무, 고양이 등을 그려왔고, 2016년 제주의 갤러리 비오톱에서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연 첫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네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단체전에도 여섯차례나 참여했다.

고 작가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쏟았다. 고 작가는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열심히 준비했다. 많은 분이 전시회에 와 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오한숙희 누구나 이사장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작가의 순수하고 위트 넘치는 예술작품이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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