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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젊은 날 ‘인수봉 바위하다’ 스친 인연 반백되어 재회했네요”

등록 2020-03-02 23:46수정 2020-03-03 02:46

[짬] 시사진집 내고 전시하는 전민조·박인식 작가

인수봉을 시로 노래한 박인식(왼쪽) 작가와 사진으로 기록해온 전민조(오른쪽) 작가가 지난 2월 26일 ‘인수봉 바위하다’의 인연을 회상하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인수봉을 시로 노래한 박인식(왼쪽) 작가와 사진으로 기록해온 전민조(오른쪽) 작가가 지난 2월 26일 ‘인수봉 바위하다’의 인연을 회상하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1970년대 북한산에서 바위를 타며 스치듯 오갔던 두 청년이 반세기 세월을 넘어 <인수봉 바위하다>(여름언덕)의 작가로 재회를 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박인식(69)씨가 인수봉을 주제로 세 번째 시집을 내고, 사진기자 출신 다큐사진가 전민조(75)씨와 함께 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삼청동 갤러리 담에서 시사진전을 연다.

지난달 26일 서촌에서 만난 두 작가는 마치 한 편의 순애보같은 ‘인수봉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 작가 “70년부터 30년 바위했죠”
“우연히 인수봉 사진보고 ‘시’ 영감”

전 작가 “70년부터 인수봉 찍었죠”
“석달 전 제안받고 사진첩 첫 공개”

‘인수봉 바위하다’ 시 소재 사진 골라
3일부터 갤러리 담에서 함께 전시회

&lt;박인식 시집-인수봉 바위하다&gt; 표지. 전민조 사진 ‘인수봉-이 고독의 문장은 묘사일까 서술일까’.
<박인식 시집-인수봉 바위하다> 표지. 전민조 사진 ‘인수봉-이 고독의 문장은 묘사일까 서술일까’.

&lt;인수봉, 바위하다-전민조&gt; 사진전 포스터. 전민조 사진 ‘인수봉 십자로’.
<인수봉, 바위하다-전민조> 사진전 포스터. 전민조 사진 ‘인수봉 십자로’.

“산꾼들은 벽등반(클라이밍)을 바위한다, 말한다. 스물에서 쉰 나이에 이르도록 바위하며 바위를 말하고 바위를 살았다. 그 서른 해 동안 나의 바위는, 우리는 어디서 온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몇달 전, 전민조 사진가가 50년째 찍어온, 뭇 산꾼들의 어미바위인 북한산 인수봉 사진을 만난 우연으로 그 오랜 질문의 인수봉 대답을 듣게 되었다면, 그 또한 우연일까? 운명의 필연은 언제나 우연의 얼굴로 오기에 바위를 선택해 운명을 선택한 나답게 바위를 새롭게 말해본다. 될수록 사람보다 바위에 가까운 말로, 시적 영감을 바위적 촉감으로 번역하여.”

일찍이 연세대 산악회 시절부터 북한산에서 살다시피했던 박 작가는 두 사람이 함께 전시하게 된 인연에 앞서, 종이에 연필로 쓴 시집의 서문 원고를 내밀었다. 지구물리학을 전공해 교수가 될 뻔했던 그는 ‘바위를 하느라’ 인생을 바꿨다. 월간 <산>을 거쳐 <사람과 산> 편집인이자 발행인으로 필명을 얻은 그는 더 이상 직접 ‘바위하기’가 힘들어진 중년 이후 시·소설·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산악문학인’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그가 1995년 이래로 일년에 절반은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여름 두번째 시집 <러빙 고흐 버닝 고흐>(여름언덕)를 낸 그가 불과 반년 남짓 만에 신작 시집과 함께 전시까지 열게 된 연유는 전 작가가 털어놓았다.

“석달 전쯤 파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전 선생의 인수봉 사진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면서 갑자기 시의 구상이 떠올라 인수봉 사진을 넣어서 시집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곧바로 귀국한 그를 만나고 보니 산꾼 시절 안면이 있는 박 형이었어요. 그래서 수십년간 내 서랍 속에 잠자고 있었던 인수봉 사진 스크랩을 보여줬더니, 그가 한 장의 사진마다 숨이 멎을 듯 보더군요. 내가 더 놀라고 감동했어요. 그 바람에 그가 고른 15장 인수봉 사진을 ‘그냥 사용하라'며 건네줬네요.ㅎㅎ”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나 부산을 거쳐 인천에서 자란 전 작가는 그림 재능이 뛰어나 화가를 지망했단다. 김환기 선생이 심사를 한 홍대 미대 입시에서 ‘색약’으로 드러나 좌절한 그는 입대 직후 자원해간 베트남 전쟁터에서 사진기자의 꿈을 건져왔다. “세계적인 통신사의 종군사진기자들이 죽음을 무릅쓴 채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열정”에 끌린 그는 서라벌예대 사진과(현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와 1971년 <한국일보>를 거쳐 <동아일보>에서 1998년까지 20년 가까이 보도사진을 찍었다.

“신문사 입사하기 전부터, 산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암벽 전문 산악회 ‘악우회’ 활동을 하던 선배 사진기자 이훈태 형을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주말이면 인수봉 아래서 비박을 하며 살다시피 한 덕분에 ‘명예회원’으로 인정받았죠.”

초기엔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 한국 대표 명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녔다는 그는 어느날 “산 하나를 제대로 찍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을 문득 깨닫았단다. 그때부터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어디서나 항상 쳐다볼 수 있는 북한산을 렌즈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인수봉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일년 열두 달 찾아 올라도 빛에 따라, 시간에 따라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인수봉에 나는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그래서 인수봉 하나만을 바라보기로 했다”고 고백하는 그는 이사를 할 때도 반드시 인수봉이 바라다보이는 집을 고집해왔다.

지금껏 <얼굴>(1986)부터 <사진이 다 말해 주었다>(2016)까지 10여권의 사진집을 낸 전 작가가 인수봉 사진만은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수봉을 바라보는 시간이 언제나 너무나 행복했어요. 그 시간만큼은 일체의 잡념이 없어지고 유독 마음이 평안해져서 종교처럼 경배할 정도지요.”

전 작가는 ‘피로 쓰는 글은 천년이 지나도 알아보는 이에게 발견된다’는 옛 글을 인용하며 박 시인 덕분에 뜻밖에 전시까지 하게 된 것을 만족스러워했다. 실제로 박 작가가 오로지 인수봉만을 주제로 쓴 65편의 시 가운데는 ‘전민조 인수봉 사진에 바위꾼이 보이지 않는 까닭’ 같은 제목의 작품도 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페루로 가는 새들의 마지막 비상 인수봉행/ 인수봉하다 바위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무도 말하지 못한/ 바위하는 새들의 페루/ 바위하다 인수봉하다’

전민조 사진 ‘인수봉 바위하는 새들의 페루’.
전민조 사진 ‘인수봉 바위하는 새들의 페루’.

이번 시집의 또 다른 재미는 ‘바위꾼 박인식’만의 표현과 감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홀드 1mm 못 미친/ 1mm 찰나에 목숨 놓고/ 스탠스 1mm 위에 얹혀/ 1mm 영원으로 목숨 붙잡는/ 삶과 죽음이 퇴고하는 /단 1mm의 시’(바위하다 3)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인수봉 바위의 초상을 첫 새벽 어머니에 비유한 작품을 기가 막힐 정도의 걸작”이라고 상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바위에 애기집 들어앉을 때까지 제 몸 바위 문지르기/ 애기빌이 돌멩이를 어미바위 품에 안치는 석녀의 기도/ 온몸 뼈와 살로 빌어 바위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바위하면 바위는 사람을 안치네/ 자식 밥 안치는 첫 새벽 어머니처럼 바위하다 엄마하다’(밥 안치듯 사람 안치는)

(02)738-2745.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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