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음악감독은 “독일 악단 생활도 하고 국립교향악단(현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악장도 했지만, 모차르트 교향곡 46곡 중에 28곡은 처음 연주해볼 정도로 국외 악단에서도 모차르트 전곡 연주는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모차르트 교향곡 1번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9살 때 작곡한 곡이다. 모차르트 교향곡 전체 46개 중에서 ‘주피터’(41번), ‘하프너’(35번) 등 자주 연주되는 13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잘 연주되지 않아, 공연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접할 기회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선 이 곡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공연이 열렸다. 국내 최초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KCO)의 공연이었다.
“첫 공연이라 굉장히 긴장했어요. 모차르트는 너무 투명해서 작은 실수도 다 드러나요. 듣는 사람에겐 명확하고 쉽게 들릴 수 있지만, 연주자는 엄청 고생하죠. 연주자들이 특히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게 모차르트입니다.” 31일 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악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민 음악감독은 첫 공연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악단은 이번 공연에 앞서 지난달 23일부터 매일 합동 연습을 이어오고 있다. 첫 공연 당일에는 공연 시작 4시간 전부터 리허설을 해서 본공연까지 모두 6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다른 작곡가의 곡이었으면 굉장히 지쳤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엔 머리도 맑고 컨디션도 좋아요.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면역력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는 올해 연말까지 10차례 공연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 여기에 바이올린과 피아노 협주곡 10곡도 함께 무대에 올린다. 공연 실황을 녹음해 낙소스 음반사에서 내년 연말께 발매할 예정이다. “음반사에서 알아본 바로는 전곡 연주 앨범은 고음악 연주단체인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과 잉글리시 콘서트 등 전 세계적으로 10개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스튜디오가 아닌 실황 녹음이라는 점과 아시아 악단이란 점에선 저희가 처음이고요.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기로 한 것은 악단이 실내악단을 넘어 국제적 수준의 챔버 오케스트라로 성장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악단은 5년전 국내 명칭인 ‘서울 바로크 합주단’도 국외에서 쓰던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로 바꿨다. 목관과 금관 연주자를 영입해 30명 가량의 규모를 가진 챔버 오케스트라로 외형도 갖췄다. 하지만 김 감독은 만족하지 못했다.
“올해도 저희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뷔르츠부르크와 스위스 시옹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초청받아서 갑니다. 하지만 챔버 오케스트라 구성으로는 아직 국외에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오케스트라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계기가 될만한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집중적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전체를 연주해보자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죠.” 1987년부터 국외 공연을 141차례 소화하며 가다듬어온 악단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모차르트 교향곡은 오래 사운드를 다듬어온 악단이 아니면 제대로 소리를 내기 힘듭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 거죠.”
김민 음악감독과 함께 한 코리아 챔버 오케스트라. 코리아 챔버 오케스트라 제공
지휘는 모차르트 연주로 유명한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2000~2009)를 역임했던 랄프 고토니(74)가 맡았다. 지난 6월 핀란드 난탈리 음악축제에서도 그가 피아노 협연과 지휘를 맡는 등 악단과 수차례 호흡을 맞춰온 인연이 있다. “2년 반 전에 고토니에게 지휘를 제안했을 때, 워낙 큰 프로젝트니 고심해보고 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곧바로 ‘기막힌 아이디어’라며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보수도 자청해서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받기로 했어요. 연습 때는 음악학자 답게 풍성한 지식으로 강의하듯이 설명하는데, 단원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재정만 된다면 상임으로 모셔다가 몇년 같이 해보고 싶은 지휘자죠.”
그는 모차르트 교향곡을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은 문학 전집”에 빗대어 설명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크리스탈처럼 아주 맑고 질서정연한데, 듣다보면 그 안에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어요. 내가 지나온 삶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여운이 있으면서, 듣고나면 희망적인 에너지가 차오르는게 느껴집니다.”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는 앞서 언급한 고음악 연주단체들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해석을 추구한다. “청중들이 공연장에 옛날에 어떻게 연주했는지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악단의 특색은 전통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파격적으로, 작품의 다이내믹을 최대한도로 극대화해서 청중이 듣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번 ‘모차르트 프로젝트’는 창단 55주년과 김민 감독 취임 4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이다. 김 감독은 1965년 고 전봉초 서울대 교수가 창단할 당시부터 악장을 맡았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인 1980년부터 고 전 교수를 이어 현재까지 40년간 2대 음악감독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공연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연주하는 모습이 78살이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이번 전곡 공연에도 악장으로 모두 참여한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건강이 있는 것 같아요. 운동하거나 특별한 관리를 하는 건 아닌데 아직은 연주에 지장이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은퇴하고 즐기며 살라’고 하는데, 저는 별 취미도 없고 연주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러나 그의 마음속으로는 3대 음악감독에 대한 구상을 거의 마친 상태다. “음악감독을 이어받을 사람을 생각은 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승계해야 단체가 없어지지 않고 전통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어요? 모차르트 전곡 연주가 끝난 다음에 구체화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렇다고 올해가 제 마지막 연주란 뜻은 아닙니다. 하하하.”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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