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명 테너이자 지휘자인 페터 슈라이어가 2011년 9월24일 라이프치히에서 멘델스존 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슈라이어는 25일(현지시간) 8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AFP/연합뉴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리트(예술가곡) 거장 페터 슈라이어가 성탄절인 지난 25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살.
독일 <빌트>지와 인터뷰에서 슈나이더의 부인은 “그의 심장이 너무나 약했다”며 “마지막 순간에 남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장질환과 당뇨 등의 질환을 앓았다. 옛 동독 출신인 그는 8살에 드레스덴의 ‘성 십자가 합창단’에 들어가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9살 때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세 어린이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1959년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의 죄수 역으로 오페라 데뷔를 한 후 61년엔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 단원이 됐다. 1963년엔 옛 동독 최고 명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동독에서 명망을 떨치던 그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1967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였다. 당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유명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가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대타로 무대에 선 그는 슈베르트와 슈만의 낭만 가곡을 불러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이후 밀라노 라 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 등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섰으며 바이로이트, 잘츠부르크 등 최고 수준의 페스티벌에 꾸준하게 초청을 받았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바로크 음악과 잘 맞아 ‘마태 수난곡' 등 바흐의 작품에 탁월한 해석을 보였으며 모차르트의 작품도 능숙하게 다뤘다. 특히 독일 리트계의 맥을 잇는 테너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그는 서정성 넘치는 지적인 리릭 테너로 독일 리트의 문학적, 서정적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등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은 그의 대표 레퍼토리였다. 바리톤 가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하는 ‘겨울 나그네'는 그에 의해 테너를 위한 작품으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197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공연에 앞서 출연자들과 드레스 리허설을 하고 있는 페터 슈라이어.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성악에만 만족하지 않고 지휘자로도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뉴욕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슈라이어는 70살이었던 지난 2005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연주를 끝으로 은퇴했다. 당시 지휘와 노래를 병행한 그는 “그간 충분히 노래를 많이 불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평안하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1993년과 2003년, 2005년엔 한국을 찾아, 슈베르트의 가곡 등을 부르며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는 “슈라이어는 슈만과 슈베르트 등 독일 리트의 계승자로 그를 빼놓고는 이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단 하나의 음절에도 여러가지의 뉘앙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대단한 테너였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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