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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음악으로 세상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 행복해요”

등록 2019-11-24 17:48수정 2019-11-25 02:34

[짬] 바이올린 연주자 아네조피 무터

아네조피 무터. 사진 크레디아 제공
아네조피 무터. 사진 크레디아 제공

15살의 나이로 대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앨범을 발표한 바이올린 신동.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들의 뮤즈. 젊은 아티스트들의 든든한 후원자…. 아네조피 무터(56)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세계 투어의 하나로,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와 리사이틀을 여는 그를 서면 인터뷰로 미리 만났다.

“아마도 베토벤은 인류애적 목적으로 작곡을 한 첫번째 작곡가일 것입니다. 원래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지지자로 교향곡 3번의 제목을 ‘보나파르트’로 지어 그에게 헌정하려 했지만, 그가 혁명 이후 독재자로 군림한 것에 실망해 이 제목을 버리고 ‘영웅’으로 변경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죠. 여기서 알 수 있듯 그는 평등을 중시했습니다. 음악의 중심에는 항상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시대에 상관없이 그 점은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베토벤 250주년의 의미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20년 전 같은 피아니스트와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앨범을 내놓아 미국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연주와 지금의 연주가 전혀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기대를 더한다. “20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졌죠. 템포와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그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아네조피 무터. 사진 크레디아 제공
아네조피 무터. 사진 크레디아 제공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체 10곡 중 이번 공연에서 그가 선보일 곡은 4·5·9번이다. “베토벤 소나타는 하나하나가 강렬합니다. 램버트와 제가 이 세곡을 고른 것은 바이올린 소나타의 발전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18세기 초반에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같은 수준의 솔로 악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바이올린에 피아노와 동등한 목소리를 준 최초의 음악가였습니다. 소나타 4번은 상대적으로 바로크적인 데 비해, 5번 ‘봄’은 그보다 크게 발전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사이의 관계가 훨씬 밀접해집니다. 2부에서 연주할 9번 ‘크로이처’는 더 나아가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램버트와 29일 서울 예당서 협연

바이올린 소나타 4·5·9번 연주

베토벤 탄생 250년 기념 투어

“바이올린을 피아노와 동등하게

대우한 첫 음악가가 베토벤이죠”

재단 만들어 젊은 예술가 후원도

무터는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같은 고전 레퍼토리의 대가지만 현대음악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9명 이상의 현대 작곡가가 그에게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현대음악 28곡을 초연했고, 그 범위도 클래식을 넘어 영화음악에까지 이른다. 그가 지난 8월에 내놓은 앨범 <어크로스 더 스타스>(도이체그라모폰)는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영화 <스타워즈>, <해리 포터>의 주제곡들을 연주한 음반이다. “저는 윌리엄스의 팬입니다. <스타워즈>는 어릴 때부터 팬이었고, <해리 포터>와 윌리엄스의 클래식 곡도 좋아해요. 그는 우리 시대의 음악을 잘 표현해주는 작곡가죠. 제겐 엄청나게 유명한 곡들을 조합해 음반을 만든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이번 음반에 들어간 모든 곡은 저를 위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새롭게 편곡됐어요.”

13살 때인 1976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데뷔한 뒤 43년 동안 연주자로 생활하면서 부침이 거의 없었던 것은 주변 연주자들이 그의 업적만큼이나 놀랍게 생각하는 점이다. “완벽한 일과 삶의 균형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자녀들이 외국에 살고 저는 공연하러 다니죠. 서로 다른 도시에 사는 소중한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자주 만날 수가 없으니, 정서적으로 집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인 것 같아요.” 그에겐 26살에 서른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카라얀의 변호사 데틀레프 분더리히(1995년 사망) 사이에서 낳은 자녀 두 명이 있다. 올 2월 작고한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는 2002년 결혼했다가 4년 뒤에 이혼했지만 음악적 동지 관계를 이어온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명성을 유지하는 데만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존경받는 예술가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첼리스트 김두민,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 비올리스트 이화윤 등 이 재단의 도움을 받은 연주자가 많다. 그는 공연 수익을 시리아 난민들에게 기부하기도 한다. 난민을 혐오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그의 신념 때문이다. “저는 음악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그것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합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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