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텃밭킬러>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대한민국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한 빈곤층 가족이 뜯어먹을 게 없어서 서로를 더 악착같이 뜯어먹는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시절, 집 한칸도 없이 폐업한 구둣방에 모여 사는 수음이네의 유일한 재산은 93살 할머니의 금니 세개뿐이다. 할머니의 아들과 두 손주는 할머니가 혹여 돌아다니다 객사해 금니를 잃게 될까, 딱딱한 음식을 먹다 금니가 닳을까 안절부절못한다. 동네에서 ‘텃밭킬러’로 불리는 할머니는 이 집의 유일한 가장이다. 남의 집 텃밭에서 훔친 무, 토마토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20년간 닭털 뽑는 일을 했던 엄마는 집 나간 지 오래고, 구두 수선공이던 아빠는 자신을 한낱 ‘검은색 구두코’로 대하는 세상이 전쟁이 나서 뒤집어지길 바라는 알코올 중독자다. 백수 큰아들은 치킨집 알바생인 아가씨와 결혼을 꿈꾸지만 함께 살 집도, 돈도 없다. 십대인 작은 아들 수음은 집도 좁은데 왜 가출을 안 하느냐는 타박을 받는다. 친구들이 놀린다며 포경수술 없인 가출도 못 한다는 그의 소원은 친구들처럼 유행하는 등산복 잠바를 입는 거다.
<텃밭킬러>의 부조리한 현실 고발은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1막을 지나 금니를 뺏으려는 욕망이 절정에 달하는 2막에서 본격화된다. 평생 남의 구두를 반질반질 닦아주고도 집 한채 마련 못 한 아빠가 엄마와 함께 비쩍 마른 메추리를 구워 먹던 추억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수음은 “서로 더 뜯어먹을 게 없어서 엄마가 가출한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평생 가족을 건사해왔지만 금니마저 내놓으라고 위협받는 할머니 역시 “냉기 서린 집보다 풀밭이나 텃밭이 더 푹신하겠어”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선 삶의 고단함이 극에 달한다. 빈곤한 삶을 탈출하고자 노력하기보다 할머니를 착취해 살면서도 “금니 때문에 참고 참고”라고 노래하는 아들과 손주들의 모습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섬뜩해진다.
극중 텃밭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텃밭킬러>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운영해온 예술가들의 모임 ‘세종 카메라타’에서 만들었다. 우리 정서가 담긴 우리말 오페라를 개발하고자 2012년부터 활동해온 모임이다.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성악가, 작곡가 등이 매달 세미나를 열고 창작오페라 길을 모색해왔다”며 “창작 논의 과정에서부터 시대를 가장 잘 투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장영아 연출은 “집의 배경을 옥상으로 설정해 땅에서 발을 딛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둣방을 옥상까지 끌고 와서 사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구둣방이 옥상에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져서인지 대사나 설정이 흥미로움에도 오페라에는 착 붙는 맛이 덜해 아쉽다. 3~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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