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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백건우 “힘 안 줘도 빛나는 쇼팽의 울림 살리고파”

등록 2019-03-05 15:41수정 2019-03-05 21:09

슈베르트 앨범 이후 6년 만에 ‘녹턴’ 전집 발매
“작은 살롱에서 연주 즐기던
쇼팽에 가까워지려 야상곡 선택”

지난 추석 때 통영에서 녹음
“흐린 날씨엔 소리도 침체
햇볕 날 때 다시 녹음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5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간담회를 열어 최근 발매한 쇼팽의 ‘녹턴’ 연주 음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5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간담회를 열어 최근 발매한 쇼팽의 ‘녹턴’ 연주 음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앨범 녹음은 충실히 했고 잘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한 ‘야상곡’이 나왔다고 보지만 듣는 사람의 느낌은 다를 수 있죠. 이 앨범을 듣고 어떤 사람은 시를, 어떤 사람은 장편소설을 쓸 수도 있을 거고요. 음악은 작곡가가 작곡해서, 연주자가 연주해서, 청중이 들어서 생명이 끝나는 게 아니라 늘 변하고 새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게 음악이죠.”

피아니스트 백건우(73)가 6년 만에 정규앨범을 냈다. ‘즉흥곡’과 ‘클라비어 소품집’ 등의 레퍼토리를 담았던 슈베르트 앨범을 낸 뒤 오랜만에 담아낸 곡은 쇼팽의 ‘녹턴’(야상곡) 전곡이다. 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백건우는 “(2017년) 베토벤 리사이틀을 하며 베토벤에 몰두해있을 때 한 스튜디오에서 쇼팽 ‘녹턴’ 악보가 있어서 훑어봤다. 오래전부터 알던 곡이 달라 보여 새로운 야상곡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 다시 이 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0살 때 데뷔해 피아니스트로서 살아온 지 63년이 된 거장은 ‘쇼팽과의 대화’에 빠져들며 음악에 집중했다. “전 한 곡을 연주하면 그 곡 주변에 있는 곡까지 보는 습관이 있어요. 쇼팽의 모든 곡을 다 보고, 쇼팽이란 작곡가가 가진 세계를 잘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연구하다 보니 그 끝에 야상곡이 있었죠. 쇼팽은 큰 홀에서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작은 살롱에서 자기 곡을 연주하며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죠. 어떨 때는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피아노를 쳤는데 그 감동은 너무나도 컸다고 합니다. 그런 쇼팽을 가장 가깝게 그려보고 싶어 선택한 게 야상곡입니다.”

앨범 녹음은 지난 추석 무렵 경남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뤄졌다. 백건우는 쇼팽의 음악을 접하는 시작점이자 정수라고 평가받는 녹턴 전집을 녹음하면서 피아노 고유의 소리와 울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쇼팽의 녹턴은 무리하지 않고 울리는 소리에요. 그 소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힘을 안 줘도 빛을 발하는 소리여야 하는데 그게 피아노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느냐가 첫 번째 숙제였죠. 그런데 (통영) 날씨가 흐려 피아노 소리가 침체된 상태여서 그 소리를 다시 살리는 게 힘들었어요. 일주일을 녹음하니 날이 좋아지면서 소리도 햇빛을 받은 것처럼 돼서 처음 한 걸 나중에 다시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쇼팽-녹턴> 앨범.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쇼팽-녹턴> 앨범. 빈체로 제공
그의 이번 앨범은 여느 녹턴 앨범과 다르다. 우선 21곡인 녹턴을 1번부터 21번까지 나란히 배열하지 않고 순서를 뒤섞었다. “작곡가들의 작품을 보면 몇 년씩 차이를 두고 내거나 한꺼번에 몰아서 쓰거나 합니다. 작곡가가 작곡을 함에 있어 꼭 순서대로 연주해주길 바란 건 아니었을 거예요. 소리가 잘 들릴 수 있게 살리는 게 중요하지 곡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봤어요.” 앨범 뒤표지엔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중 “우리 여기 앉아서 귓전으로 스며드는 음악 소리를 들어보자. 고요한 밤에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게 제격이야”라는 문구를 발췌해 넣었다. 이 문구를 넣은 이유를 묻자 그는 “예전부터 음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라면서 “야상곡과 매치가 잘 돼 야상곡을 듣게끔 마음의 자세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앨범 발매를 기념해 그는 오는 12일 마포아트센터를 시작으로 11개 도시를 돌며 전국 순회 리사이틀을 연다. 이와는 별도로 오는 4월2일엔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와도 협연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에선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어제 차이콥스키를 다시 쳐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건 그 곡이 또 새롭게 다가와서였어요. 몇십년간 그 곡을 대하는데 또 새로운 게 보인거죠. 그게 행복이라고 느껴졌어요.”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겐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그는 “앞으로 연주보다 녹음에 더 신경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연주는 그 시간에 끝나지만 앨범은 내 나름으로 전달하고 싶은 음악을 남길 수 있어서”라고 했다. 이날 백건우는 언제든 어디든 함께 하던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윤정희와 함께 자리하지 못했다. “아내가 몸이 아파서 서울에서 잠시 치료 중”이라며 근황을 전할 때 말끝이 잠시 흐려졌다. 내성적이고 고독했던 쇼팽처럼 그의 미소도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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