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과 홍콩필 음악감독을 맡은 야프 판즈베던.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 제공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야프 판즈베던(59)은 엄격한 지휘자로 악명이 높다. 단원들에게 많은 연습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음표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혹독한 리허설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짧은 시간에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클래식 캐슬’의 음악 코디다. 뉴욕필에 앞서 ‘클래식계 변방’에 있던 홍콩 필하모닉을 2012년부터 이끌었던 그는 홍콩 필과 2015년부터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부작(20시간)을 완주해 홍콩에서 처음으로 음반(2018)을 내는 등 홍콩필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가 오는 21일(예술의전당)과 22일(케이비에스홀)에 열리는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를 이끈다. 한국 악단과의 연주는 지난해 경기 필하모닉 이후 두 번째다.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판즈베던은 “지휘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언제나 설레기 때문에 가급적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하려고 한다”면서 케이비에스 교향악단과의 호흡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출신의 판즈베던은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19살에 세계 최정상급 악단 중 하나인 로열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면서 주목받았던 그는 전설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권유로 뒤늦게 지휘를 시작했다. 1996년부터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네덜란드 라디오필하모닉 교향악단, 댈러스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무대에 차츰 이름을 알렸다. 홍콩필뿐 아니라 2018~2019시즌부터 뉴욕필도 이끌면서 현재는 가장 ‘핫’한 지휘자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현재 동시에 이끄는 홍콩필과 뉴욕필을 두고 “그야말로 새로 떠오르는 별과 전통적인 강호”라면서 두 악단을 와인에 빗대 표현했다. “뉴욕필은 수많은 거장이 함께 해왔다면, 홍콩필은 무서운 속도로 정상을 향해 성장 중이죠. 뉴욕필이 아주 오래된 근사한 와인이라면 홍콩필은 갓 양조돼 신선한,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와인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연주 질을 끌어올리는 특별한 비결이 있냐는 질문엔 ‘노력’과 ‘헌신’이란 근본적인 답변을 내놨다. “집중도 높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고 그 과정을 잘 견뎌내면, 쓴 노력 후의 달콤한 결과를 맛보게 됩니다. 결과물을 좇는 게 아닙니다. 최고의 음악을 위한 노력이 좋은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가 케이비에스 교향악단과 연주하는 곡은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과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다. 브루크너가 만년에 거의 8년 가까이 공을 쏟아 작곡한 교향곡 8번은 80분에 이르는 웅장한 대작이다. 판즈베던은 “브루크너는 오케스트라를 더 깊게 이해하기에 좋은 곡이다. 연주가 어떤 수준인지 여실히 드러난다”면서 “관객들이 따로 준비할 건 없다. 그냥 와서 듣다 보면 수많은 디테일을 위해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돼 분명한 차이를 느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연에 앞서 지난 17일 내한한 판즈베던은 사흘간 리허설을 갖는다. 18일 오전에 진행된 첫 리허설을 지켜봤다는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관계자는 “현악 연주자 출신답게 활 사용이나 비브라토(현의 떨림) 방식 등까지 굉장히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판즈베던이 귀가 열린 지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세심하고 엄격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악단 연주자들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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