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연꽃 연작 앞에서 앉은 남종현 작가. 남종현 페이스북 갈무리
“2008년 광고 사진 스튜디오를 경영난으로 닫고 사진 일도 접으려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영국에서 첫 개인전을 제안해 다시 카메라를 들게 됐어요. 올해로 딱 10년이 됐네요.”
5일 세번째 개인전 <백백(百白)하다>를 시작하는 사진작가 남종현(47)씨는 10월에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 차례 전시를 하게 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옥스포드대학 교수인 ‘절친’(서울 화곡초 동창)에게 ‘호주관광청 사진전’(93년)에서 대상을 받은 공동묘지 사진을 줬는데, 연구실에 걸린 그 사진을 보고 끌린 동료 교수들이 교수회관 갤러리에서 전시를 주선해 준 거예요. 겨울 양수리 한강변에서 흰눈밭의 마른 연꽃 가지를 찍은 작품들을 만들어 보냈죠.”
첫 전시에서 작품은 한 장도 팔리지 않았지만, 프랑스인 에이전시 얀과 인연이 닿아 그는 유럽에게 먼저 작가로 데뷔해 지금껏 외국에서 더 주문을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사진은 연꽃을 비롯 달항아리, 고가구 같은 정물이나 풍경을 찍어 한지에 인화하는 자신만의 기법으로 한국적인 미와 정서를 살린 작품이다. “주로 흑백이나 단색으로 수묵화처럼 여백을 많이 살려서 그런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인 줄 아는 이들이 많아요.”
1990년무렵 재수 시절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광고사진 스튜디오에서 ‘알바’로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일본 자동차 광고 사진 전문작가의 보조로 연수를 가게 됐다. 이어 이탈리아의 가구 사진 전문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된 그는 비자도 받을 겸 3년제 전문대에 입학해 정식으로 광고사진을 배웠다. “졸업 한달 남긴 채 서울의 스튜디오 사무실이 부도로 정리되는 바람에 수료만 했어요.” 99년 귀국한 그는 직접 서울 신사동에서 광고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으나 “포토샵의 등장과 디카 붐에 밀려” 2008년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맨처음 연꽃 사진은 파인아트지에 인화했는데, 동양화를 배우러 다니면서 한지의 매력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질 좋은 전통 한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그는 이제 전문가 수준의 감식안과 기법을 갖게 됐다.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장지방’(중요무형문화재)을 쓰고 있어요. 일본식 쌍발지보다는 전통 외발지가 질감도 보존성도 탁월하죠. 프린트 방식도 디지털이 편하긴 한데 아날로그의 질감이 더 좋구요. 한지에 옻칠을 해봤더니 보존성이 높아지더라구요.”
서울 방배동 갤러리 웰에서 열리는 남종현 세번째 개인전 ‘백백하다’ 포스터.
‘백백하다’는 전시 제목도 99번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는 한지에 마지막 흰 여백을 살렸다는 뜻이다. “여백은 그냥 비어둔 것이 아니죠. 사물의 기능을 떠나 그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최대한 명암과 그림자를 눈과 손에서 지우는 것이죠.”
그는 “침묵하는 사물들이 내 사진을 통해 한지에 스미고, 그 마음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름답게 번진다면 그 이상의 바람은 없겠다”고 작가노트에 썼다.
<백백하다> 서울전은 새달 15일까지 방배동 갤러리 웰에서, 첫번째인 일본전은 10일부터 15일까지 도쿄 미나타구에 있는 아자부주반 갤러리에서 진행한다. 오는 26~28일에는 서울 호텔리베라청담에서 열리는 ‘
아트룸페어 서울 2018’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소더비 디렉터·평론가·컬렉터·큐레이터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공모를 통해 뽑은 전세계 40여개 나라 100여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룸페어는 런던, 로마에 이어 아시아권에서 처음 서울에서 열린다. 갤러리 웰에서는 5일 오후 7시 오프닝 겸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한다. (02)596-6659.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