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네덜란드댄스시어터1가 밀려온다…내면의 아우성이 터진다

등록 2018-10-02 18:05수정 2018-10-02 20:23

현지에서 미리본 ‘엔디티1’ 신작 ‘워크 더 데몬’

거친 숨소리·움직임 관절 하나로도
헛된 사위 없이 집요한 소통의 몸짓

현대무용 최전선, 16년만에 내한
‘스톱모션’ 등 기존 레퍼토리 함께
‘STOP-MOTION’의 한 장면. 엔디티1-라히 레즈바니 제공
‘STOP-MOTION’의 한 장면. 엔디티1-라히 레즈바니 제공
“무용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르 피가로>)라는 찬사까지 받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엔디티·NDT)가 이달 중순 내한한다. 2018~2019 시즌의 신작을 자신들 본거지에서 ‘세계 초연’(월드 프리미어)한 지 3주 만이다.

지난달 27일 해거름, 네덜란드 헤이그 끝자락 작은 항구 마을에 위치한 즈위더스트랜드 극장(Zuiderstrandtheater)은 일찌감치 매진으로 북적였다. 사흘치 공연(27~29일)이 모두 그러하다.

준비하고 각오한 관객들, 밤 8시 암전의 객석에 갇히는 동시, 비언어와 접선하며 열린 신세계로 찰나 쓸려간다. 30분 숨 죽였다 5분간 기립 환호(예외가 없다. 키 크기로 유명한 나라, 앞 열에서 일어나면 뒷 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이유는 아닐 것이다)하고, 다음 작품 무대교체까지 10여분간 숨 돌린다 물 한 잔,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또는 사색… 세 차례 반복하니, 극장 밖은 밤 10시30분으로 달리고 있었고, 치마나 정장바지 그대로 자전거를 굴려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관객들 보며 ‘다시 이 세계구나’ 한다.

이달 19~21일 잡힌 서울 공연은 엔디티1(엔디티는 본체라 할 엔디티1과 더 젊은 무용수로 구성된 엔디티2가 있다)의 기존 대표작 둘과, 9월27일 세계 초연한 작품 셋 가운데 하나로 짜여진다. 객원 안무가 마르코 괴케의 ‘워크 더 데몬’(Walk the Demon)이 선택됐다. 초연 땐 2번째 배치된 작품으로, 굳이 의역하자면 ‘악마와의 조우’ 정도가 될까.

개벽한 듯한 무대 위 생명체들은 서로를 역동적으로 탐색한다. ‘늑대와 개의 시간’인 양 댄서와 댄서의 춤사위, 그로 빚어지는 슬픔과 유희, 불화와 조화 따위 경계가 모두 모호하다. 배경음악 노랫말의 선명한 의미(가령 반복되는 “에브리팅 이즈 뉴(Everything is new)”)마저 삼킬 만큼 세계는 조매하여 흐린 듯하다. 댄서들의 비명, 독백까지 연출된 강렬하고도 난해한 20여분을 감당한 관객에게, 막바지 10분 생명체들이 끝끝내 성취한 ‘소통’의 춤사위는, 두 사내에게 집약되어 격하고 집요하기 이를 데 없다. 거친 숨소리, 살과 살이 부닥치는 소리까지 춤이자 언어다. 공연 중 휘갈긴 기자수첩엔 “이 희열은 희열로밖에 묘사할 도리가 없다”고 적혀있다.

‘SAFE AS HOUSES’의 한 장면. 엔디티1-라히 레즈바니 제공
‘SAFE AS HOUSES’의 한 장면. 엔디티1-라히 레즈바니 제공
‘워크 더 데몬’의 극작가 나댜 카델은 “움직임 이면의 ‘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게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며 “끊임없이 내면을 말하지 않는다면 춤의 의미는 전무하다”고 말한다.

세계 현대발레의 지평을 확장 중인 엔디티의 작품엔 움직이는 관절 하나하나에 메시지가 있다는 양 헛된 사위가 드물어 보인다. 말 또한 혀의 움직임일 뿐 춤이 곧 언어를 태동시켰다 할 만큼, 실제 엔디티의 비언어가 관객과의 언어로 전이되는 과정은 감각적이고도 서사적이다. 그들 스스로, 서로 다른 안무가들 작품 어떤 것이든 “‘이것이 나의 미적 댄스이며 비유적 언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예술감독 폴 라이트풋 경우 “단순히 안무가 아니라 예술적 창작”이라고 자신하는 까닭으로도 보인다. 서울 공연(예술의전당)에 함께 오르는 기존 레퍼토리 ‘세이프 애즈 하우스’(Safe as Houses)와 ‘스톱-모션’(Stop-Motion)’에서도 증명될 법한 명제들이다.

즈위더스트랜드 극장(Zuiderstrandtheater) 전경. 엔디티의 헤이그 공연은 대부분 여기에서 펼쳐진다. 왼쪽에 엔디티 전용 트럭이 보인다. 헤이그/임인택 기자
즈위더스트랜드 극장(Zuiderstrandtheater) 전경. 엔디티의 헤이그 공연은 대부분 여기에서 펼쳐진다. 왼쪽에 엔디티 전용 트럭이 보인다. 헤이그/임인택 기자
엔디티1은 내년 창단 60돌(엔디티2는 1978년 창단. 지금의 엔디티를 있게 한 전설적 안무가 이리 킬리언이 한때 중년 무용수만의 엔디티3을 만든 적도 있다)을 맞는다. 그럼에도 무장 대담해지고 혁신적일 수 있는 데는, 일상화된 ‘이종교배’의 힘 덕분이 커보인다. 독일인 안무가 마르코 괴케는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전속됐던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예술감독으로, 2014년부터 상주 안무가처럼 NDT와도 호흡을 맞춰왔다. 이번 세계 초연 작품 셋 중 둘이 객원 몫이었다. 무용수들의 나이, 국적도 다양하다. 24살부터 40살까지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중국, 대만, 미국(필리핀계도 포함) 등 현재 기준 10개국 이상에서 모인 28명 무용수들이 해마다 전 세계 10만명 이상의 관객들을 매료시켜왔다. 1989년 서울서 태어났다는 미국인 댄서(척 존스)도 눈에 띈다.

엔디티의 누리집엔 공연차 다녀간 세계 도시 명단에 서울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한국인에게, 헤이그의 평화궁이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소장된 마우리츠호이스(미술관)냐 묻는다면, 고개 흔들며 필시 ’헤이그의 엔디티’라 말할 이 있을 것이다. 그 엔디티1이 2002년 이후 16년 만에 한국을 찾는 것이다.

헤이그/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1.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윤석열 수호’ JK김동욱, 고발되자 “표현의 자유 억압” 2.

‘윤석열 수호’ JK김동욱, 고발되자 “표현의 자유 억압”

탄핵시위 나간 응원봉…계엄 이틀 뒤 나온 케이팝 책 보니 [.txt] 3.

탄핵시위 나간 응원봉…계엄 이틀 뒤 나온 케이팝 책 보니 [.txt]

‘오징어게임2’ 영희 교체설에 제작진 “사실은…바뀌지 않았죠” 4.

‘오징어게임2’ 영희 교체설에 제작진 “사실은…바뀌지 않았죠”

60년 저항의 비평가 “요즘 비평, 논문꼴 아니면 작가 뒤만 쫓아” [.txt] 5.

60년 저항의 비평가 “요즘 비평, 논문꼴 아니면 작가 뒤만 쫓아” [.txt]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