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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무대 오른 SF…지금, 여기를 고발하다

등록 2018-09-21 05:00수정 2018-09-27 12:02

연극 ‘X’
명왕성에 고립된 탐사 대원들
자연훼손·단절 등 현실 돌아봐

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신분따라 구획된 미래도시 배경
계급사회 속 숨겨진 ‘정의’ 다뤄

창극 ‘우주소리’
우주 생명체와 소녀의 우정 통해
편견 맞서는 ‘능동적 여성’ 그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 삶을 더 강하게 조명하는 효과가 있다. ‘SF’(공상과학)란 장르가 보여주는 먼 미래나 우주의 삶 역시 그러하다. 상상에 발 딛고 있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복제인간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린 영화 <블레이드러너>나 가상세계에 사는 인류를 보여주는 영화 <매트릭스>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고발한다.

무대공연에서도 에스에프 장르의 외피를 두른 작품들이 점차 늘고 있다. 뮤지컬·연극·창극 가릴 것 없이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지닌 소설, 연극 원작을 접목하는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처럼 특수효과로 시각효과를 강조할 수 없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 인생의 의미, 삶과 죽음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전달한다.

연극 <X>.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는 ‘영국 연극의 미래’로 불리는 젊은 극작가 알리스테어 맥도웰의 동명 작품을 가져와 만들었다. 인류 외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남아있지 않은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명왕성에 고립된 탐사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구를 떠나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명왕성에 온 5명의 탐사대원은 지구와의 송신이 끊긴 채 하염없이 귀환선을 기다린다. 대장 레이와 부대장인 길다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탐사기지라는 제한된 공간, 지구의 시간이 무의미한 행성에 고립된 이들은 서로 나눈 대화와 각자의 기억이 엉킨 채 지쳐간다.

연극은 1막이 끝날 무렵부터 섬뜩한 반전을 드러내고, 전달하고 싶은 주제도 선명해진다. 새들이 전부 땅에 떨어졌던 날과 지구에 남은 마지막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함부로 망치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을 심어준다. “지구의 아파트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채 방전되느니 차라리 수십 마일 떨어진 곳(우주)에서 죽는 걸 택하겠다”는 레이와 마지막에 혼자 남아 “나 여기 있어”를 외치는 길다의 외침은 고립된 인간의 씁쓸함을 안긴다. 연출을 맡은 극단 작은신화의 최용훈 연출가는 “명왕성은 무인도라고 설정해도 무방할 만큼 연결이 끊어진 곳을 의미하는데 우주라는 설정이 ‘무한 고립’, ‘무한 단절’을 더 강화해줄 수 있다”며 “많은 에스에프 작품처럼 이 연극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사는 터전에서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과 이렇게 살면 되겠냐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에스에프는 젊은이들에겐 익숙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이를 활용한 공연들이 앞으로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에스에프 장르가 접목되면서 무대의 조명, 영상, 음향도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요절한 작가 박지리(1985~2016)가 남긴 에스에프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지난 해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이었던 850쪽 분량의 방대한 원작을 2시간 내외 극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시공간이 지워진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도시는 핵심권력층이 사는 1지구부터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땅 9지구까지 완벽한 신분사회로 구획돼있다. 상위 1지구 엘리트학교에 다니는 우등생 다윈은 아버지 니스의 친구였던 제이의 추도식에서 루미를 만난다. 루미는 하위지구에서 일어난 ‘12월 폭동’으로 살해된 삼촌 제이의 죽음을 파헤치는 중이다. 뮤지컬은 다윈이 루미와 함께 30년 전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철저한 계급사회 뒤에 숨겨진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오경택 연출가는 “내용적인 면에서 죄와 벌, 선과 악, 법과 정의 등 굉장히 묵직한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는 점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10월2일부터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우주소리>는 전통적인 우리 소리와는 거리가 먼 에스에프를 끌어온 새로운 실험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한다. 부모로부터 생일 선물로 우주선을 받아 광활한 우주로 떠난 소녀가 뇌 속에 자리 잡은 외계생명체에 감염되지만 이 생명체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워 마지막으로 자신이 할 만한 멋진 일을 선택한다는 경쾌한 우주 탐험기다. 이야기 배경이 미래지만 ‘어린’ ‘소녀’가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소녀가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선택하는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녹였다. 김태형 연출가는 “창극이라는 공연 장르가 상상하지 못한 에스에프와 페미니즘을 접목하면 우리 현실과 가까운 문학 같은 소재들은 앞으로 더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우주소리>는 소재 뿐 아니라 창작 방식 또한 독특하다. 출연 배우들이 직접 작창을 맡아 연습 과정부터 공동 창작한다. 김 연출가는 “우리 소리가 한이 깊고 슬프다는 매력이 있지만 해학적이고 유쾌한 장면에서 나오는 소리도 재밌다”면서 “영어 이름이나 수학, 물리학, 로켓 같은 창극에서 접하기 힘든 단어를 우리 소리로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21~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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