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장면. KBS교향악단 제공.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이 창단 62년 만에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첫 음반을 낸다. 오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정기연주회 실황을 녹음해 올 하반기에 발매할 예정이다. 국내 양대산맥으로 비교되는 서울시립교향악단(1945년 창단)이 도이체 그라모폰 음반을 지금껏 9장이나 낸 것과 비교하면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이번 음반 발매는 매우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첫 음반을 내던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이체 그라모폰과 음반을 내는 것은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비유했을 만큼 이 레이블을 단 음반은 연주자와 연주단체의 실력을 입증한다. 장일범 클래식평론가는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이었으나 (각종 내홍으로) 내림세를 보였다”면서 “하지만 올해 유명 연주자를 초청해 같이 협연하는 등 노력하고 있어 이번 음반 발매가 다시 도약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연주회는 음악감독인 요엘 레비(68)의 지휘로 말러 ‘교향곡 제9번’을 연주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레비는 2014년에 음악감독으로 선임됐고, 지난해 재신임되며 2019년 말까지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을 이끈다. 미국 애틀랜타심포니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레비는 ‘말러 스페셜리스트’로도 정평이 나 있다.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난 레비는 “말러 교향곡은 거의 다 녹음해봤지만 ‘교향곡 제9번’의 실황 음반을 내는 건 처음”이라면서 “말러를 좋아하지만 똑같은 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나와 단원들 모두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엘 레비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KBS교향악단 제공
‘교향곡 제9번’은 평생 교향악과 가곡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표현해온 말러의 복잡한 심경이 집대성된 음악이다. 레비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 같은 작품”이라면서 “총보 마지막에서 피아니시시모(아주 여리게)가 5분간 이어지며 평화롭고 긴 죽음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레비는 음반 발매를 오래 전부터 구상해으나,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은 2012년 재단법인 출범과 그해 벌어진 함신익 전 상임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갈등으로 생긴 내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음악에 대한 방향성을 잃으면서 청중들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레비는 “지난 4년간 단원 35명 정도를 새로 고용하고, 연주기법과 음악적인 방향성을 단원들과 함께 얘기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이번 음반은 전통 있는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수준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4년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 직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된 일명 ‘서울시향 사태’로 상처가 큰 서울시향도 조속히 정상화되길 바랐다. “외국 교향악단에서도 다양한 갈등이 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나 디트로이트 심포니 등도 1년씩 파업한 전례가 있다.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그 뒤 어떻게 방향을 잡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나는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면 평판, 청중, 단원들이 모두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해왔다. 서울시향 역시 잘 해결되길 바란다.”
지난해 임기 연장은 그와 단원들 사이에 신뢰가 쌓였음을 의미한다.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한 관계자는 “레비는 굉장히 겸손한 사람으로 단원들을 강압적으로 자기 생각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면서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정상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레비가 이끄는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은 올해 바그너, 말러 등 독일 후기 낭만주의 거장들의 작품 연주와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대작 컬렉션 같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해 들려주고 있다. 레비가 재취임하면서 목표로 내걸었던 ‘레퍼토리의 확대’다. 레비는 “2016년에도 국내 오케스트라 중 최초로 2주에 걸쳐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를 선보였다”면서 “굉장히 복잡한 곡들로 짧은 시간에 연달아 보여주기 쉽지 않아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애정이 큰 만큼 아쉬운 점도 보인다. 1년에 12번인 정기연주회 횟수가 적다고 지적한 그는 “단원들의 역량을 늘릴 수 있는 연주회가 더 많아야 한다”면서 “전통 있는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의 위상을 되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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