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오페라 스타’ 선정자 네명은 오페라 갈라 콘서트 마지막 순서로 다른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나와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예술의전당 제공
훈련된 성악가들이 고음을 넘나드는 독특한 창법을 구사해가며 이탈리아어 같은 낯선 언어로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일반인들은 이런 오페라 아리아를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부르는 노래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오페라 아리아에 도전해 용감히 무대에 선 아마추어 성악가들이 있다.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오페라 갈라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퇴역 군인, 의사 부부, 학원 원장이 열었다. 페스티벌조직위원회는 ‘도전! 오페라 스타’ 행사를 기획해 지난 3월부터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내온 사람들 중 세 팀을 선발해 무대에 설 기회를 준 것. 맹렬한 연습으로 이날을 준비해온 네 명의 도전자들은 45인의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800여명의 관객 앞에서도 떨지 않고 무리 없이 곡을 소화해냈다.
지난해 군 생활 37년을 마치고 준장으로 퇴역한 테너 우봉만씨는 베르디의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첫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는 퇴역 장성 우봉만(68)씨. 우씨는 하얀색 하절기 군 예복을 입고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한 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씨는 젊은 시절부터 오페라를 좋아해 중령 때는 원주시립합창단 단원으로 1년간 활동했고, 대령으로 진급해 대대장으로 일하면서는 병사 휴게실에 중고 피아노를 들여놓기도 했다. 지난해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준장으로 전역한 뒤에 예술의전당 서정학 성악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만난 우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한달 동안 이 곡을 천번은 들었을 거예요. 은퇴를 하고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즐겁고 행복합니다.”
의사 부부 김정희(왼쪽)씨와 여원욱(오른쪽)씨는 각각 양산과 포도주병을 소품으로 들고나와 티격태격하는 극중 인물들을 연기하며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중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네’를 불렀다. 예술의전당 제공
두번째 출연자는 대구에 사는 의사 부부인 김정희(47)씨와 여원욱(49)씨. 김씨는 양산을, 여씨는 포도주병을 소품으로 들고나와 티격태격하는 극중 인물 연기까지 펼치면서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중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네’를 함께 불렀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부부는 2011년부터 함께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2016년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작은 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씨는 “예술의전당 무대에 언젠간 서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돼서 놀라고 좋네요. 연습을 많이 했는데 한 곡만 하고 내려오려니 아쉬워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영어학원 원장 이진화씨는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중 ‘달의 노래’를 3개월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불렀다. 예술의전당 제공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이진화(61)씨는 분홍빛 꽃이 수놓인 하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이씨는 대학생 때 전국 대학생 합창 경연대회에 나갈 정도로 노래를 사랑했지만, 졸업 후론 노래할 기회가 없었다. 졸업 후 생물교사로 일하다가 2001년 영어학원을 차렸는데, 유치부 아이들의 영어 뮤지컬 발표회 때 틈새 시간을 메우려 노래를 부른 것이 반응이 좋자 매년 노래를 부르게 됐다. 4년 전부터 서정학 성악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곡은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중 ‘달의 노래’. “친정어머니가 제 노래를 듣는 걸 매우 좋아하셨는데 3개월 전에 돌아가셨어요. 오늘 오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달이 아니라 어머니께 바치는 노래라는 마음으로 불렀어요.”
콘서트의 마지막, 네 명의 ‘오페라 스타’들은 그동안 객석에서 지켜보기만 해왔던 현역 성악가들과 나란히 무대에 서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꿈만 같았던 초여름밤의 끝을 추억으로 장식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