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마을 합창단'이 17일 저녁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합창단이 무대로 들어섰지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남성 낭독자(이한오 신부)가 조용히 앞으로 나와 세월호 참사의 내용을 건조하게 보고했다. “이 사고는 2014년 4월16일 오전에 대한민국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중 발생했다….” 이어 여성 낭독자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이유를 신에게 물었다. “신이여, 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십니까?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천리 길을 떠났던 이들의 기도가 들리십니까?” 그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오르간의 무거운 반주 위로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슬퍼하는 사람아 복이 있다.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18일 저녁 8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시민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가 열렸다. 59명의 합창단원과 소프라노 정혜욱, 바리톤 염경묵, 4명의 낭독자 등 모두 67명의 연주자가 이건용 전 서울시오페라단장이 작곡한 10곡의 노래를 불렀다. 3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에 300명가량의 청중이 모여들었다. 추모의 뜻으로 공연은 입장료, 인사, 박수, 화환 없이 진행됐다.
‘음악이 있는 마을 합창단'이 17일 저녁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합창단은 앞서 세월호 1주기인 2015년에 이 칸타타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처음 공연했다. 하지만 내리 두 해 동안 공연하지 못했다. 홍준철 지휘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첫 공연 때는 컴컴한 배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장으로 쓰인 기독교 예배당은 전통적으로 ‘노아의 방주(구원의 배)’로 상징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아팠다. 그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슬프고 괴로웠다. 단원들이 연습할 때마다 울었다. 1회 공연을 하고 다시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년째가 되고 나니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피한다고 피해질 거냐, 용기를 내자’고 해서 다시 하게 됐다.” 합창단이 부른 노래는 첫 번째 공연과 똑같았지만 낭독 내용엔 그간 벌어졌던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세월호 인양 등을 반영했다.
‘음악이 있는 마을 합창단'이 17일 저녁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칸타타 ‘정의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최종 연습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연 전체는 심판-구원-부활-승천으로 이어지는 서양음악의 레퀴엠(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의 전개 방식과 유사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사람들이 느낀 절망과 분노를 섬뜩하게 담아낸 부분이 압권이었다. “주여, 저들이 과부와 나그네를 목 조르고 고아를 살해하며 말합니다. ‘하느님은 죽었다.’” “복수, 복수의 하나님, 나타나소서, 일어나소서. 세상을 재판하시어 교만한 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소서.” 작곡자 이건용은 “분노의 이유도 치유의 시작도 위로의 근거도 정의에 있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정의”라고 말했다. 특히 교복을 입은 학생 낭독자(원묵고 3학년 김예서)는 출연만으로도 존재감이 컸다. 눈물을 훔치는 청중 위로, 위로의 합창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빛이었다는 것을, 어둠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는 우리들의 모습을 섬광처럼 비추어준 빛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세월호의 원혼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듯한 마지막 곡 ‘평안히 쉬게 하소서’로 절정에 이르며 60분가량의 공연이 끝났지만 아무도 박수 치지 않았고 연주자들도 인사하지 않았다. 모두가 1분간 묵념을 한 뒤 조용히 교회당을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빠져나가는 청중들 뒤편으론 1938년에 완성돼 80년간 교회 중앙 제단 위를 지켜왔던 예수의 모자이크가 노란 황금빛으로 빛났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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