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아코디언 팝스 오케스트라 이끄는 김지연 상임지휘자
애잔하게 심금을 울린다. 어려운 시절 서민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언제 들어도 친근하다. 그런데 대접을 못 받는다. 비(B)급 악기로 치부된다. 약 팔러 다니던 풍각쟁이를 연상한다. 시골 공터의 서커스 천막에서 울려 나오는 싸구려 음률로도 인식된다. 바로 아코디언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코디언 오케스트라가 ‘큰일’을 냈다.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1위 입상을 했다. 첫 출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다. 무관심이다. 그래서 서럽다. 서러울수록 아코디언의 소리는 활기차게 날아오른다. 기운차게 바람을 불어 넣으며 세차게 건반을 누른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연주음악 선곡의 ‘반란’에서 시작됐다. 금의환향은 받지 못했지만 당당한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김지연(57)씨를 지난 5일 서울 도곡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첫 출전 러시아 국제 콩쿠르 ‘1등’
‘님과 함께’ ‘굳세어라 금순아’ 등
“파격적인 한국가요 선곡으로 성공” 중학 윤리교사하다 ‘음악 꿈’ 도전
유학 거쳐 음악원 열고 연주단 꾸려
“악극단 편견에도 애호가 70만 넘어”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열린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 참가한 한국 연주단은 독주·앙상블·오케스트라 세 부문에 걸쳐 치러진 경연의 오케스트라 부분에서 깜짝 수상을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콩쿠르는 2005년에 시작돼 러시아, 미국, 오스트리아,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국제아코디언연합(CIA) 회원국 60곳이 해마다 돌아가며 여는 권위 있는 대회다. 올해 월드컵을 개최하는 러시아가 축구 경기가 열리는 도시에서 주최했다. 이번 대회에는 60개 나라에서 모두 50개 팀이 참여했고, 오케스트라 부분은 6개 팀이 출전했다. 한국은 회원국이 아니지만 주최국의 초청을 받았다.
김씨는 상식을 깬 파격적인 선곡을 했다. “대부분 출전팀들이 장중한 클래식을 연주합니다. 한국팀은 한국 가요를 선택했어요. 남진의 ‘님과 함께’, 신중현의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 등 서양인들이 처음 듣는 곡을 연주했어요. 심지어 ‘굳세어라 금순아’도….”
가장 한국적인 가요를 편곡해서 세계 무대에 도전했고, 결국 성공했다. 러시아 국내 항공사가 악기를 화물 취급 하면서, 단원 대부분의 아코디언이 망가지는 사고로 콩쿠르 참가 자체가 무산될 뻔했다. 다행히 러시아 정부가 전문가를 동원해 아코디언 수리를 해준 덕분에 간신히 무대에 오르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김씨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이화여대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중학교 윤리담당 교사를 하던 그는 어릴 때 꿈인 음악가의 길을 가고 싶었다.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그는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며 음악을 놓지 않았다. 우연히 아코디언과 만났다. 19세기 독일에서 만들어진 아코디언은 ‘화음’(Akkord)이라는 뜻의 독일어가 어원이듯이 다양한 소리를 낸다. ‘손풍금’으로 불릴 만큼 휴대도 쉽다. ‘작은 오케스트라’라는 별명처럼 한 대의 악기로 선율과 반주를 함께 할 수 있고, 다채로운 음색 효과를 낼 수 있다. 소리도 강렬하고 음량도 크다.
한때 일본 시부야음악원에서 아코디언 공부를 한 김씨는 한세대와 삼육대에서 아코디언을 가르치다가 3년 전 서울 강남에 아코디언 교육원을 차렸다. “대부분의 수강생이 40대 이상입니다. 아마도 어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아련히 들었던 아코디언의 추억이 강한 것 같아요.” 이번 콩쿠르대회에 출전한 단원 20명 중에는 70대가 3명이나 있다.
김씨는 한국에서 유독 아코디언이 악기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풍조가 안타깝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음대에 아코디언을 전공하는 학과가 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아코디언만을 전공하는 중·고교가 여러 곳 있고,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군 면제를 해줄 정도로 중시한다고 한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시골 거리를 다니며 약을 팔던 거리의 악사로부터 처음 접한 탓인지 아코디언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만 유독 부정적입니다.”
김씨의 아코디언에 대한 사랑은 깊고도 크다. “오른손으로는 41개의 건반을 눌러야 해요. 왼손으로는 120개 버튼 가운데 여러 가지 코드를 눌러야 합니다. 결코 연주하기 쉽지 않은 악기죠.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써야 하기에 치매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는 “지난해 정부에 아코디언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자, 담당 공무원이 악기 같지 않은 악기에 대한 지원 요청을 하지 말라며 아주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며 “하지만 이미 국내엔 아코디언 애호 인구가 70만명 이상 있다”고 말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서울 도곡동 아코디언 교육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님과 함께’ ‘굳세어라 금순아’ 등
“파격적인 한국가요 선곡으로 성공” 중학 윤리교사하다 ‘음악 꿈’ 도전
유학 거쳐 음악원 열고 연주단 꾸려
“악극단 편견에도 애호가 70만 넘어”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열린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한국 대표로 첫 초청 출전한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 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김지연 아코디언 팝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지난달 러시아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 부문 받은 1등 상장과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코디언 연주하는 김지연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아코디언은 양손을 사용해 연주를 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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