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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TV대신 무대에서…연기 내공 펼치는 희망의 2막

등록 2018-03-01 08:00수정 2018-03-01 09:16

엠비시 탤런트들이 극단 만든 까닭은
소속사 없어서…나이가 많아서…
설 자리 없어지는 후배들 보고
윤철형·정욱 등 MBC 출신 탤런트들
“연기할 무대 만들어주자” 극단 창단

TV주름잡던 연기 실력 바탕
정세호 피디-최완규 작가 손잡고
첫 작품 ‘쥐덫’ 올려 화제몰이
<문화방송>(MBC) 출신 탤런트들로 구성된 ‘엠비시 탤런트 극단’이 연극 <쥐덫>을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엠비시 탤런트 극단 제공
<문화방송>(MBC) 출신 탤런트들로 구성된 ‘엠비시 탤런트 극단’이 연극 <쥐덫>을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엠비시 탤런트 극단 제공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네….’ 무대 위에서도 문득문득 울컥한다고 했다. 배우 이정화는 1997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지만 기회가 없어서 최근 10년 동안 연기를 하지 못하고 요가 강사, 광고 촬영 등을 해왔다. 최근 서울 대학로 에스에이치(SH)아트홀에서 만난 이정화는 “다시 꿈을 꾸게 됐다. 연기를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연극 <쥐덫>(3월25일까지)은 기회가 없어서 혹은 개인적인 문제로 열정을 억눌러왔던 배우들에게 희망의 무대가 되고 있다. <쥐덫>은 <문화방송> 탤런트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모아 지난해 10월30일 창단한 ‘엠비시 탤런트 극단’의 첫번째 작품이다. 양희경, 오미연, 박형준, 정성모, 정욱 등 잘 알려진 선배 배우들뿐 아니라, 그동안 활동 기회가 다양하지 못했던 이들까지 총 42명이 단원이다. 배우 윤철형이 회장, 드라마 <엠>(M)으로 유명한 정세호 피디가 연출 겸 대표를 맡고, 연극을 오래했던 배우 김선동이 부대표로 있다. 드라마 <올인> 등으로 유명한 최완규 작가가 상임작가로 참여했다.

‘엠비시 탤런트 극단’은 선후배 단원 42명이 참여했다. 단원들이 공연 전에 함께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엠비시 탤런트 극단’은 선후배 단원 42명이 참여했다. 단원들이 공연 전에 함께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얼굴 알려진 배우들에 화려한 제작진이 모였으니 극단 창단은 식은 죽 먹기였을까? 천만에.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처음 극단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던 배우 윤철형은 고군분투했다. “행사 하고 받은 100만원으로 극단 통장을 만들었어요. 후원사를 찾으려고 발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어요. 연극이다 보니 광고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대부분 꺼리더라고요.” ‘정말 가능할까’라는 반신반의의 눈초리도 쏟아졌다. 윤철형은 “처음에 12명으로 시작했는데, 감독, 작가가 붙고, 연습을 시작하니 ‘어 정말 하네’라며 배우들이 한두명씩 추가적으로 들어왔다”며 웃었다. 박형준도 “정말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감격해했다.

돈은 없었지만 “마음이 모였기에” 가능했다. 배우들도, 정세호 피디, 최완규 작가도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윤철형은 “정세호 피디님한테 조심스럽게 <쥐덫> 연출을 제안했는데 흔쾌히 도와주셨고, 정 피디님이 최완규 작가님한테 <쥐덫> 각색을 부탁하면서 화려한 제작진이 꾸려졌다”며 웃었다. 에스에이치아트홀도 선뜻 대관을 해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올리고 싶었는데, 마침 에스에이치아트홀에서 <쥐덫> 판권을 갖고 있는 등 운도 따랐다. 이덕화, 임예진 등 선배들은 단원들 밥값을 내주며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다. 윤철형은 “<쥐덫> 공연이 끝난 뒤 수익금을 정산해 나눠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바쁜 스케줄에도 선·후배·동료들을 위해 이 작품에 참여한 양희경은 “돈을 떠나, 연기할 수 있다는 취지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정욱은 “나는 문화방송이 드라마 왕국일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경험이 있지만 요즘 후배들은 너무 의기소침해 있더라. 그런 모습 보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렇게 활력을 찾으니 좋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마음이 된 데는 달라진 방송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방송사들이 직접 배우들을 뽑아 훈련시켰지만 이제는 소속사와 계약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잘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공을 맡는 배우와 같은 소속사의 배우들이 ‘패키지 조연’으로 투입되는 일이 잦아, 이른바 ‘힘’없는 배우들의 설 자리가 없다. 윤철형은 “40대가 넘어가면 맡을 배역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대중에 잘 알려진 박형준조차 “갈수록 연기할 수 있는 무대가 적어지고 기회가 없다. 연기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너무 잘 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쥐덫>에서 메카프 소령으로 분한 정욱은 국립극단 1기로 시작해 오랫동안 연극무대에서 갈고닦은 기본기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쥐덫>에서 메카프 소령으로 분한 정욱은 국립극단 1기로 시작해 오랫동안 연극무대에서 갈고닦은 기본기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문화방송> 출신은 아니지만, 특별히 <쥐덫> 공연에 보일 배역으로 참여한 양희경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문화방송> 출신은 아니지만, 특별히 <쥐덫> 공연에 보일 배역으로 참여한 양희경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기회가 줄었을 뿐 모두들 숱한 세월 티브이를 주름잡던 배우들이다. 그 내공이 어디 가지 않는다. 더욱이 3개월간 매일 모여 연습을 했고, 정세호 연출로부터 표정·손짓 등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연습을 하면서 배우로서 자신을 돌아봤다”는 정성모는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이는 파격을 감행했고, 올해 여든살인 정욱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무대는 역시 무서운 것이다”라는 박형준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보러 오시는 분들한테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반가운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뛰어난 연기 실력이 입소문을 타며 전체 250석이 연일 가득 찬다.

엠비시 탤런트 극단의 계획표는 빼곡하다. 오는 6월 <쥐덫> 앙코르 공연이 예정돼 있고, 양로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디 뮤지컬 <러브>도 준비중이다. 드라마 <올인>을 연극으로 올리거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명작을 선보이는 것도 구상중이다. 배우보다 스타 양산에 더 집중하는 요즘 시류에 맞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도 발굴할 계획이다. 문화방송은 31기를 끝으로 탤런트 공채를 뽑지 않고 있다. 윤철형은 “예전에 엠비시에서 공채 탤런트를 뽑았던 것처럼, 엠비시 탤런트 극단에서 정기적으로 배우를 뽑으려고 한다”며 “정말 연기 잘하는 이들을 발굴하고 훈련시켜서 좋은 배우를 많이 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이 모든 계획을 현실화하려면 어쨌든 “그놈의 머니가 문제”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뛴다”며 윤철형은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후원자를 만나러 자리를 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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