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평창겨울음악제에서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가 직접 작곡한 아리랑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평창겨울음악제 제공
아리랑은 우리 문화의 ‘탯줄’ 같은 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반복되는 단순한 곡이지만 국내외 어디서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졌다. 세계적인 하프 연주자 라비니아 마이어(35)도 ‘아리랑’에 끌렸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두살 때 친오빠와 함께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2009년 공연을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가 아리랑을 접한 그는 이후 아리랑 변주곡을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고통, 희망 등의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는 아리랑은 어둡고, 밝고, 섬세한 느낌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했다.
최근 싱글앨범 <아리랑>까지 낸 마이어는 지난달 30일 개막한 평창겨울음악제 무대에서 아리랑 변주곡을 소개했다. 하프가 만들어낸 청량하고 섬세한 소리는 아리랑이 가진 서정성을 깊이 있게 끌어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소니뮤직에서 만난 마이어는 “아리랑은 저와 한국을 교감하게 해준 곡”이라고 했다.
“아리랑을 연주할 때마다 인생의 첫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입양과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친아버지를 만난 일 등이 영향을 줬겠죠.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했다’고 얘기해주더군요.”
하프는 9살 때 배우기 시작했다. 외모가 다르니 악기도 독특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프를 선택했는데 재능이 있었다.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1997), 브뤼셀 하프 콩쿠르(2000) 등에서 우승하고, 네덜란드 음악상(2009) 등을 받았다. 그의 음악을 풍부하게 해준 건 특별한 성장 배경이었다. 네덜란드 사회복지사인 양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 회계사인 양어머니는 첫딸을 낳고 한국에서 이들 남매를 입양했다. 이후엔 그보다 두살 어린 남동생을 에티오피아에서 또 입양했다.
“우리 가족이 좀 특별하죠.(웃음) 제가 이방인처럼 다르다는 게 음악 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네덜란드인인 나와 한국인인 내가 있어 풍족한 느낌을 받죠.”
마이어는 평창겨울음악제에서 윤이상의 ‘첼로와 하프를 위한 이중주’도 선보였다. 서양의 악기로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를 연상케 하는 연주기법을 쓰는 윤이상의 작품은 그에게 더없이 매력적이다. 학위를 딸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 공연에도 윤이상의 작품을 즐겨 연주한다는 그는 윤이상을 “하프를 위한 작품을 잘 만드는 작곡가”라고 평가했다.
“하프를 연주하면서 가야금 연주를 하는 느낌을 받아요. 가야금 연주를 들으면 하프가 떠오르고요. 모양은 달라도 두 악기엔 연관성이 있어요. 몇 년 전에 황병기 선생님을 만나 책도 받고 가야금의 가능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축복이고 영광이었죠.”
2015년 평창겨울음악제에 이어 올해 겨울음악제, 그리고 오는 7월에 열리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또 초청을 받은 그는 “올 때마다 늘 준비가 완벽하고 신구의 조화 같은 프로그램이 좋아 칭찬밖에 할 게 없다”며 “이번 음악제는 특히 ‘평창 흥부가’ 판소리가 좋았다”고 말했다.
음악제 출연은 끝났지만 출국은 좀 느긋하게 잡았다. 영화음악 미팅이 있고, 올림픽 스키 경기도 보고 갈 예정이다. 생일인 12일 출국할 예정이라는 그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노래방도 갈 계획이라고 했다. “노래방은 스트레스를 가장 빠른 시간에 풀 수 있는 곳 같아요. 왜 한국인들이 노래방을 가는지 알겠더라고요. 노래방을 가면 (고음이 많은) 켈리 클라크슨 노래를 하는데 한 곡 하고 나면 목소리가 안 나와요. 하하하.”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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