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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네 개의 방, 벽 너머 다른 진실에 귀기울여라

등록 2018-01-31 08:01수정 2018-01-31 08:16

-연극 ‘더 헬멧’-
1987년 서울-2013년 알레포
백골단-학생, 화이트헬멧-아이
각각의 공간에서 동시공연 형식

독재·전쟁이란 암흑의 현실 속
여성의 역할도 비중있게 조명
‘룸서울’의 한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룸서울’의 한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걸 눈앞에서 보니 그냥 눈물이 나요.” 최근 연극 <더 헬멧> 공연장에서 만난 한 20대 관객은 울먹거렸다. 그는 이 연극이 영화 <1987>과 뮤지컬 <모래시계>처럼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다룬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소극장에서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만나는 80년대는 또 달랐다고 한다. “배우들의 눈물, 땀, 절규가 눈앞에서 보이니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또 다른 젊은 관객도 감상평을 내놨다.

<더 헬멧>이 펼쳐지는 무대 그림. ‘룸서울’의 경우 ‘빅룸’은 취조실, ‘스몰룸’은 학생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 된다. ‘룸알레포’에선 ‘빅룸’은 구조대원들, ‘스몰룸’은 구조되지 못한 채 갇혀 있는 어린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엠컬처 제공
<더 헬멧>이 펼쳐지는 무대 그림. ‘룸서울’의 경우 ‘빅룸’은 취조실, ‘스몰룸’은 학생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 된다. ‘룸알레포’에선 ‘빅룸’은 구조대원들, ‘스몰룸’은 구조되지 못한 채 갇혀 있는 어린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엠컬처 제공
“형식의 새로움에 이끌려 왔다가 가슴 먹먹해져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 연극 <더 헬멧>이 화제다. 3월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에서 선보이는데 구성과 내용의 신선함에 호평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고정관념을 깬 형식 파괴가 눈길을 끌었다. <더 헬멧>은 ‘하얀 헬멧’을 키워드로 두개의 연극을 선보인다. 1987년 시위대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백골단을 그린 ‘룸서울’과, 2013년 시리아 알레포 내전에서 활동하는 민간 구조대를 그린 ‘룸알레포’다. 이 두편 모두 극이 진행되는 도중 무대가 분리되며 또다시 두개의 이야기로 나뉜다. ‘룸서울’은 백골단에 잡혀 온 학생들이 갇혀 있는 공간(스몰룸)과 그 앞 취조실에서 벌이는 백골단(빅룸)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룸알레포’는 건물 안을 수색하는 민간 구조대(빅룸)와 그 건물 어딘가에 갇혀 있는 아이의 이야기(스몰룸)로 나뉜다.

개별적으로 이야기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편만 봐도 되지만, 빅룸을 봤다면 스몰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자꾸 찾게 된다. 관객을 끌려는 제작사의 영리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는데, 단순히 흥미를 돋우려는 선택은 아니다. <더 헬멧>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의 부당함을 얘기한다. ‘룸서울’은 독재로부터, ‘룸알레포’는 전쟁으로부터다. 그저 “어른이 되는 게 꿈”이라는 ‘룸알레포’의 아이와 “후배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싸울 수 있게 나는 지금 데모하는 것이다”라는 ‘룸서울’ 청춘들의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을 ‘꿈’꿔야 하는 현실에 분노와 슬픔을 자아낸다. 무대가 나뉘어 동시에 진행되는 탓에 옆방의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려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편 때론 집중을 방해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연출가의 정교한 의도가 담겨 있다. 김태형 연출가는 “여론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가 실체적인 진실과 다르기도 하고 오해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가 저 벽 너머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 헬멧>에서 도드라지는 대목은 민주화 운동이나 전쟁의 서사에서 배제되어 있던 ‘여성의 힘’을 강조한 부분이다. 영화 <1987>은 민주화 항쟁 당시 여성의 활약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 헬멧>은 ‘룸서울’에서도 ‘룸알레포’에서도 여성을 가운데에 놓는다. ‘룸서울’에선 1987년 겁 많던 신입 여학생이 선배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4년 뒤인 1991년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위에 앞장선다. ‘룸알레포’ 역시 실제 민간 구조대원은 모두 남자이지만, 남성 대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용감한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다. 김태형 연출가는 “전쟁이나 민주화 운동 시기에도 배제되어 있거나 논의되지 않은 여성들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공연에서 캐릭터를 성별 구분 없이 쓰다 보면 무대 밖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변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룸알레포’의 한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룸알레포’의 한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더 헬멧>은 빅룸보다는 스몰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세부적인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 관객들의 감정을 훨씬 더 파고든다. ‘룸서울’ 스몰룸의 경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온 ‘미친개’로 불리는 여성과 알고 보면 프락치인 또 다른 여성의 대화와 갈등 속에서 여성의 연대를 느끼게 한다. ‘룸알레포’ 역시 스몰룸에 갇혀 구조되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는 세월호를 연상케도 한다. 저 멀리 있는 줄 알았던 시리아의 비극이 폐부를 찌르는 이유다. 하지만 스몰룸은 30석에 불과하다. 2월25일까지는 연일 매진(30일 기준)이어서, 그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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