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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불륜’은 남았는데 ‘고뇌’는 사라졌네

등록 2018-01-18 18:45수정 2018-01-18 21:13

상반기 뮤지컬 기대작 ‘안나 카레니나’
사랑과 파국 ‘사건’에만 초점
섬세한 드라마는 못살린 채
화려한 무대·춤만 도드라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마스트미디어 제공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마스트미디어 제공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는 영화, 드라마, 발레, 오페라 등으로 수없이 만들어졌을 만큼 매력적인 고전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풍속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뮤지컬 프로덕션 ‘모스크바 오페레타 시어터’가 만든 <안나 카레니나>가 라이선스 초연으로 한국에 들어온다고 알려지면서 뮤지컬은 올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다. 자국 고전을 본토에서 어떻게 해석했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작품은 드라마는 없고 쇼만 있었다.

뮤지컬은 안나와 레빈의 대조적 삶을 두 축으로 보여주는 원작과 달리 안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안나가 젊은 백작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과 행복을 쫓다 결국 파국에 이르는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톨스토이의 ‘정신적 자아’인 레빈의 이야기는 축소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마스트미디어 제공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마스트미디어 제공
문제는 사건만 가져왔을 뿐 안나의 섬세한 감정변화는 거세됐다는 점이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무도회에서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부터 브론스키와 갈등을 겪고 불행해 하는 모습까지 두 사람의 감정선을 매끄럽게 보여주지 못한다. 이 때문에 원작을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관객들은 극에 감정이입을 하기가 어렵다. 귀족사회에서 숨 막혀 살던 안나와 진보적인 브론스키의 사랑이 그저 불륜으로 비칠 뿐 사회적 규범과 조건을 초월한 불같은 사랑의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뮤지컬에서는 노래가 대사와 같다. 노래가 부족한 이야기를 채워 감정선을 이어주면 좋으련만 노래도 힘이 없긴 마찬가지다. 원곡을 그대로 번역한 탓인지 가사가 한없이 단조롭다. 사랑하던 키티로부터 거절당한 레빈은 첫 솔로곡에서 “끝났어”라는 노랫말을, 아이를 보내달라는 안나의 편지를 받은 남편 카레닌은 “은혜를 모르는 것”이란 말을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해서 부른다. 옥주현, 정선아, 이지훈, 민우혁 등 성량과 기량이 뛰어난 배우들이 노래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방대한 원작의 섬세한 이야기를 살리지 못한 대형뮤지컬은 결국 무대와 조명, 앙상블로 빈 곳을 채운다. 거대한 중앙 스크린과 8개의 패널 영상으로 보여주는 열차, 기차역, 경마장 등은 화려하고 장엄하다. 발레와 클래식이 강한 러시아의 색채를 느끼는 건 앙상블 배우들이 남녀 한 쌍으로 짝을 지어 춤추는 모습에서다.

인상적인 장면은 공연의 시작과 끝에서 나온다. 주된 배경인 기차역과 기차가 나오면서 내레이터가 앙상블과 등장하는 프롤로그 장면은 극의 전개를 암시하듯 강렬하게 시작된다. 록 사운드의 노랫말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 규칙을 지키세요. 그래야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라며 선로의 이탈이 곧 인간이 지켜야 도덕적 가치와 규칙을 깨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일깨운다. 극의 끝에서 안나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 당대 유명가수 패티가 나오는 장면은 가장 많은 박수가 나온다. 노랫말 “죽음 같은 사랑”에서 그나마 위태로운 사랑 속에 절망하는 안나의 고통을 보여준다.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원작에서 사건만 가져왔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다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월25일까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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