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새 번안곡 들고 돌아온 포크 가수 양병집
1970년대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청개구리홀 모임 출신으로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대표 포크 가수로 꼽히는 양병집(67·사진)씨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번안곡을 들고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다. 오는 11~28일(목·금·토요일) 남성 4인조 밴드 ‘어쿠스틱스’의 이름으로 공연한다.
양씨는 ‘타박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소낙비’ ‘양단 몇 마름’ 등 구전 가요나 외국 포크 음악을 한국적 이미지로 표현해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1974년 데뷔작인 <넋두리>가 불온 음반으로 찍혀 발매 3개월 만에 전량 회수되는 등 유신독재 정권 아래서 수난을 겪었다. 그 뒤 증권사 직원, 음반 제작자, 라이브 카페 운영자 등으로 변신했던 그는 86년 결국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났다. 99년 홀로 귀국한 그는 꾸준히 음반을 내고 후배들을 발굴하며 조용히 무대를 지켜왔다.
지난 4일 공연장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라이브투데이클럽에서 밴드와 함께 맹연습 중인 양씨를 만났다.
남성 4인조 밴드 ‘어쿠스틱스’ 결성
1980년대 영국 그룹 인기곡들 ‘번안’
“전쟁은 왜 하는지…반전·평화 노래”
11일부터 일산 라이브클럽에서 공연 실용음악과 쏟아지지만 설 무대 없어
“2군 밀린 노장이지만 1군 그날까지” “이 안개 낀 산이 나의 집이지만/ 원래 나의 고향은 저 언덕 아래/ 언젠가 돌아가리 내가 살던 곳으로/ 의미없는 전쟁을 인간들은 왜 하는지 (중략) 아주 많은 세상들 서로 다른 태양들/ 지구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믿음들 (후략)” 칠순을 바라보는 그이지만 부리부리한 눈빛, 시니컬하고 텁텁한 목소리,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포크 음악의 생명인 비판 의식은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이번에 영국의 4인조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85년 발표곡 ‘브러더스 인 암스’와 ‘원 월드’ 등 3곡을 번안해 첫선을 보인다. 반전·평화 메시지가 담긴 이 곡들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9주간 머무르며, 395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그는 ‘전쟁은 왜 하는지’, ‘평화의 하모니’ 등으로 번안해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시켰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이 외국 노래를 잘 듣지 않고 팝송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즐기는 게 답답했어요. 영어 못지 않게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말을 예술가들이 잘 활용하지 않으니, 나라도 번안 전문 가수로 나서려 합니다.”
그는 예전에도 밥 딜런의 노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이츠 올라이트’를 개사한 ‘역’과 ‘어 하드 레인스 어고너 폴’을 번안한 ‘소낙비’(이연실 노래)를 비롯해 ‘서울 하늘’ ‘잃어버린 전설’ 등 10여개의 번안곡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등의 노랫말로 모순된 현실을 표현한 ‘역’은 후배 가수 김광석이 90년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부르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에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노래를 선택한 이유로 그는 “밥 딜런과 유사한 음악을 하면서 밥 딜런보다 더 대중적이고 부드러워서”라고 말했다.
최근 결성해 첫 공연을 하게 된 ‘어쿠스틱스’는 4인조 남성 보컬 밴드다. 리드기타를 맡은 민수홍(28)을 비롯해 베이스기타 장인호, 리듬기타 겸 퍼커션 김용덕 등 젊은 음악인이 참여했다. 그는 “공연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4인조 남성 보컬로 장기 콘서트를 계속 밀고 나가겠다. 기존의 통기타 사운드 방식에서 벗어나 일렉트릭과 통기타 사이의 절묘한 조화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4인조 밴드 시에스엔와이(CSNY. 크로스비·스틸스·내시·영)처럼 흩어져 개별 활동을 하면서 때때로 모여 팀을 이루는 포크 4중창단’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요즘 대중 가수들이 절실하지 않은 것 같고, 특히 포크 가수들의 시야가 너무 좁다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무늬만 포크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메시지 있는 포크 음악이 몇 개나 있냐.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든 미사리의 통기타 가수들은 70~80년대에 머물러 옛날식 사랑 노래만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레코드사 대표로부터 ‘목소리가 좋으니 트로트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단다. “트로트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같은 옛 노래들은 시대 상황을 한장의 그림처럼 담고 있는데 60년대 이후 수준이 떨어졌다”고 그는 에둘러 꼬집었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현상도 그는 비판했다. “전국적으로 대학에서 수많은 실용음악과생들이 배출되지만 라이브 클럽도 드물고 방송사는 벽이 높아 써먹을 곳이 없다. 수많은 가수들이 거리를 떠돌며 외롭게 음악을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가 “언 땅에 박치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운 건 아직 풀지 못한 ‘한’ 때문이다. 그는 “한대수씨 말처럼 시대의 톱니바퀴와 맞지 않아 소수파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면서도 “프로야구 2군의 노장들처럼 1군의 그날까지 은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포크 가수 1세대 양병집이 오는 11일 공연을 앞두고 새로 결성한 밴드 어쿠스틱스와 함께 일산 라이브투데이클럽에서 맹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박경만 기자
1980년대 영국 그룹 인기곡들 ‘번안’
“전쟁은 왜 하는지…반전·평화 노래”
11일부터 일산 라이브클럽에서 공연 실용음악과 쏟아지지만 설 무대 없어
“2군 밀린 노장이지만 1군 그날까지” “이 안개 낀 산이 나의 집이지만/ 원래 나의 고향은 저 언덕 아래/ 언젠가 돌아가리 내가 살던 곳으로/ 의미없는 전쟁을 인간들은 왜 하는지 (중략) 아주 많은 세상들 서로 다른 태양들/ 지구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믿음들 (후략)” 칠순을 바라보는 그이지만 부리부리한 눈빛, 시니컬하고 텁텁한 목소리,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포크 음악의 생명인 비판 의식은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이번에 영국의 4인조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85년 발표곡 ‘브러더스 인 암스’와 ‘원 월드’ 등 3곡을 번안해 첫선을 보인다. 반전·평화 메시지가 담긴 이 곡들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9주간 머무르며, 395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그는 ‘전쟁은 왜 하는지’, ‘평화의 하모니’ 등으로 번안해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시켰다.
노래 인생 반세기를 바라보는 양병집은 포크 1세대답게 여전히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사진 박경만 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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