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래시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995년 화제의 드라마 <모래시계>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관건은 ‘뮤지컬이 드라마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있느냐’였다. 드라마는 유신정권 반대 학생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변의 현대사 속에 얽혀버린 세 주인공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탄탄한 이야기와 주·조연 할 것 없이 개성 강한 캐릭터들, “나 떨고 있니” 같은 명대사, “우우우 우우~”로 알려진 사운드트랙 ‘백학’까지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는 명작으로 꼽힌다.
지난 5일부터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모래시계>는 그런 우려와 기대를 안다는 듯 영리한 길을 택했다. 원작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그대로 가져오되 음악은 새롭게 만들었고, 시대에 맞지 않는 대사는 과감히 버렸다. 총 24부작에 달하는 원작을 150분(인터미션 제외)에 압축하면서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원작의 향수를 살렸다.
뮤지컬은 학창 시절부터 친구이지만 카지노 사업의 대부가 된 태수와 그를 사형시킬 수밖에 없는 검사 우석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우석이 태수를 향해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고 읊조리면, 태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백학’의 처연한 음을 휘파람으로 분다. 이윽고 시대 배경은 두 사람이 처음 친구가 된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컬은 곁가지 없이 드라마의 줄거리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빨치산 아들’로 찍혀 육사생도의 꿈을 접고 조직폭력배가 되는 태수, 카지노 대부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혜린,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검사 우석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뮤지컬 <모래시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굴곡진 시대 배경도 옛날 신문을 스크린에 비추는 것으로 장황한 설명을 대신한다. 분노하는 민중의 모습은 군무와 떼창에서 힘을 발휘한다. 군화공장 노동자들이 군화로 바닥을 치며 자신들을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 빗대는 장면, 1막 마지막에서 세 명의 주인공과 전 출연진이 함께 부르는 ‘세상 너머로’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캐릭터마다 색깔 있는 음악을 만들어낸 것도 좋은 시도다. 강렬한 태수의 넘버(노래)는 기타 중심의 록, 강단 있게 자신의 삶을 사는 혜린의 넘버는 현악, 신념을 갖고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우석의 넘버는 힘 있는 발라드로 구성했다. ‘침묵의 보디가드’인 재희는 검도 안무와 함께 ‘그만큼의 거리’라는 노래로 캐릭터를 드러낸다.
“나 떨고 있니”, “널 갖기 위해서였어. 넌 내 여자니까” 같은 대사도 과감히 정리했다. 홍보사인 창작컴퍼니다의 관계자는 “첫 대본 리딩 당시에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는 순간 현장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며 “공연 중에도 그런 상황이 생길 것 같아 다른 대사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뒷부분의 서사가 거대하다 보니 초반 10대 시절과 태수와 혜린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이 감정이입 할 새도 없이 전개된다. 장면 전환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띈다. 하지만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추억을 선사하고, 드라마를 보지 못한 세대들도 공감하기에 부족해 보이진 않는다. 내년 2월11일까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