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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연애는 ‘노코멘트’, 취미는 청소”

등록 2017-11-28 16:08수정 2017-11-28 20:12

밴 클라이번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밀려드는 연주회 소화하느라 일정 빡빡
“외국서 살며 또래보다 풍부한 20대 경험”
“나이 들어도 열정 잃지 않는 연주할 것”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제러미 엔로/밴 클라이번 콩쿠르 제공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제러미 엔로/밴 클라이번 콩쿠르 제공
“항공사 마일리지가 엄청 늘었어요.”

‘얼마나 바쁘게 지내냐’는 질문에 조금 전 공항에서 왔다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웃으며 대답했다. 인터뷰 직전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다음날 독일로 출국한다고 했다. 어제는 일본, 오늘은 한국, 내일은 독일. 그의 삶은 지난 6월 밴 클라이번 콩쿠르(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한 주에 두세 대륙을 넘나들고, 한 달에 세계 14~15개 도시에서 연주하는 일이 생겼다. “공항 가는 시간이 가장 편한 자유시간”이라는 그의 스케줄 표엔 2019년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 올해 한국 나이 29살로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황금기를 맞은 그를 2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생계 위해 ‘콩쿠르 부자’가 된 청년 선우예권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회사원 아빠와 전업주부 엄마, 누나 두 명이 있다. 부모나 형제가 음악을 하는 ‘음악가족’이 아니었으니 그가 피아니스트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누나들을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선우예권의 재능을 알아본 학원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계속 시킬 것을 당부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다니다 16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이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십시일반 유학비를 보탰다. 학비는 무료였지만 집세 등 생활비가 필요했다. 이때부터 상금을 주는 각종 콩쿠르에 지원했다. 인터라켄 클래식(2009), 윌리엄 카펠(2012) 등과 이번 콩쿠르까지 8차례 우승하며 ‘콩쿠르 부자’가 됐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2만~3만달러를 받으니까 한해 생활비가 어느 정도 충당되었어요. 콩쿠르는 보통 30살이 나이 제한이기 때문에 올해 밴 클라이번은 사실상 제 마지막 콩쿠르 도전이었죠.”

‘대기만성형’ 피아니스트 최근 각광받고 있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23살임을 고려하면 그는 일찌감치 발견된 ‘원석’은 아니다. 자신도 “신동이나 영재과가 아닌 노력파”라고 했다. 그의 매니지먼트인 목프로덕션 이샘 대표는 그를 “대기만성형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으며 성장한 결과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의미다. ‘한국인 피아니스트 중 콩쿠르 최다 우승’이란 타이틀을 가졌지만 콩쿠르마다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조성진씨가 우승하던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전 예선탈락 했었죠. 밴 클라이번도 4년 만의 재도전이었어요. 올해 콩쿠르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는 마음으로 준비했기에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아요.”

‘생계형 아티스트’로 불리는 건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는 그는 넉넉지 않은 유학 생활에서도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소리가 좋았어요. 피아노 앞에 있는 순간엔 잡념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여러 도시를 다니며 연주하느라 지쳐서, 또 혼자인 게 외로워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기만 해요.”

연애는 ‘노코멘트’, 취미는 청소 여느 20대처럼 연애는 제대로 해봤을까. “노코멘트”라더니 “혹시 모태솔로?”라는 질문에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쉴 때는 그냥 집에 있는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 유일하게 하는 거라면 청소예요. 안정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호텔에 머물 때도 종종 청소를 하고 나와요.(웃음)”

내년이면 서른 살로 삼십 대가 된다. “매 순간 집중하며 살아왔기에 나이는 의식을 안 해요. 삼십 대가 되는 것에 두려움이나 기대가 있지도 않고요. 또래보다 외국에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는 뜻깊은 20대를 보낸 것 같네요.”

12월은 선우예권 만날 시간 서른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12월2일 시작하는 <제이티비시>(JTBC) 예능 <이방인>에서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평범한 일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많이 고민했는데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에 관심을 가질 기회 같아 출연을 결심했어요. 또 잡념을 잘 정리하는 편이어서 방송 출연이 연주에 지장을 안 줄 것 같기도 했고요.”

공연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15일과 20일에 각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아이비케이(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21일에는 서울 강남의 클럽 옥타곤 무대에도 오른다. 17일 수원, 18일 광주, 25일 대구에서 지역 관객도 만날 예정이다.

공항 갈 때마다 홍삼을 사서 건강을 챙긴다는 선우예권과 헤어지기 직전 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지 않은, 두텁고 투박한 손이었다. “피아노도 사람의 신체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요. 두텁고 무게감 있는 짙은 소리를 좋아하는데 그런 소리를 내기엔 적합한 손이죠.” 이샘 대표가 말을 거들었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탐내는 손이에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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