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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진은숙 길러낸 거장 리게티가 꼽은, 단 한명의 피아니스트

등록 2017-11-22 09:13수정 2017-11-30 12:55

[인터뷰]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현대음악 대표 작곡가 리게티가 극찬한
‘피아노의 시적인 분석가’ ‘고요한 거장’
25일 대전·28일 서울서 첫 내한 공연
러시아 출신 독일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러시아 출신 독일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진은숙의 스승이기도 한 죄르지 리게티(1923~2006)는 “단 하나의 음반만 들을 수 있다면 코롤리오프의 바흐를 선택할 것이다.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그의 음악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다. 코롤리오프가 연주한 바흐 ‘푸가의 기법’(The Art Of Fugue, BWV 1080)을 두고서다.

펀치보다 운치 있는 음악을 찾는 당신에게, 드디어 이 사람이 찾아온다. 피아노 내부만큼 정교하게 악보를 파고들면서 그윽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시적인 분석가’. 바흐(J.S. Bach)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러시아 출신 독일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68)가 한국에서 첫 연주회를 한다.

코롤리오프는 오는 25일 대전 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2017 바흐 무반주 컬렉션’ 무대에 올라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을 연주한 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바흐 ‘3성 신포니아’(BWV 787-801), ‘푸가의 기법’ 중 4개의 콘트라풍크투스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듀오를 위한 소나타 ‘그랜드 듀오’(D 812)를 선보인다. 특히 ‘푸가의 기법’은 바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평생 몰두한 작곡 기법인 대위법이 집대성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클래식 팬들 사이에선 바로크음악 명연주자로 이미 정평이 났다.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서울 신사동) 관계자는 “코롤리오프의 <바흐 편곡작품집>(2010)은 최근까지도 인기음반 10위 안팎에 오르내린다. 한 클래식 음반 매장에서 1000은 매우 이례적인 숫자인데, <헨델 건반 모음곡>(2008)은 1000장 넘게 팔린 몇 안 되는 음반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그는 주로 유럽 ‘안’에서 연주해왔다. 명성만큼 투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건 과시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곳에 붙박일 수밖에 없는 교육자로서의 삶을 무대만큼 소중히 여긴 까닭이기도 하다. 코롤리오프는 1978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 함부르크 음대 교수로 일했다. 첫 한국 나들이를 앞둔 그를 <한겨레>가 서면으로 먼저 만났다. 코롤리오프는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사용한다. 인터뷰는 독일어로 진행됐다.

- 당신의 연주는 왔다가 가면서 모래를 정돈하는 파도 같습니다. 감정을 깊이 휘젓지만 흐트러뜨리지 않아요. 오히려 단정해지죠. 음악에 특별히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저는 세상에 무엇을 전해야겠다는 어떤 야망도 없어요. 단지 연주하고자 하는 필요를 느끼고 그 욕구에 따라 연주할 뿐입니다.”

- 그 욕구의 근원엔 바흐가 있습니까?

“아주 일찍부터 바흐의 음악을 접했습니다. 곧바로 매료됐어요. 다단조의 프렐류드(BWV 999)를 시작으로 인벤션과 신포니아, 평균율 클라비어 등 작품들로 이어졌죠. 바흐는 지금까지 제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에 ‘BACH’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바흐는 제 삶과 음악의 큰 버팀목입니다.”

- 한국에서 연주할 곡도 한 작품을 빼면 모두 바흐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어요?

“한국처럼 먼 곳으로 여행하는 것이 제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차로 인한 피로와 기후 변화, 그 밖에 낯선 점이 많죠. 그래서 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작품들로 선택했습니다. 바흐 작품이 아닌 유일한 곡인 슈베르트의 그 유명한 ‘그랜드 듀오’는 피아니스트인 제 아내 류프카 하지에 게오르기에바와 함께 연주합니다.”

- 연주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요?

“최대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음표 하나하나를 연주하려 하지 말고 그 음표에 깃든 그 순간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에겐 정확하게만 연주하기보다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연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로 말합니다. 사람이 말할 땐 자연스럽게 어조와 높낮이가 생기죠. 연주할 때도 목소리로 말하듯, 노래하듯 표현해야죠.”

바흐(J.S. Bach)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예브게니 코롤리오프는 “연주자에 따른 해석의 차이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악보”라고 말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바흐(J.S. Bach)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예브게니 코롤리오프는 “연주자에 따른 해석의 차이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악보”라고 말했다. 더브릿지컴퍼니 제공

- 다른 연주자의 음반은 자주 듣는 편인지.

“아주 드물게요. 학생들과는 종종 내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Radu Lupu)의 음반을 들었습니다. 저는 음악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연주자에 따른 해석의 차이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오직 악보입니다.”

- 피아노 외에 즐겨 듣는 악기는 뭔가요?

“클라비코드와 류트를 좋아합니다.”

- 음악을 가르칠 때 문학과 미술을 자주 얘기하신다구요.

“모든 예술이 하나의 출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원이 같다는 말씀이지요. 제 학생들이 지성과 감성의 시야를 지속적으로 넓혀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수많은 러시아 문학가와 단테, 괴테, 셰익스피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베를렌, 프루스트, 카프카, 횔덜린도 빼놓을 수 없어요. 미술에선 반 데르 바이덴, 반 에이크, 베르메르 같은 네덜란드 화가들과 모네, 세잔, 파울 클레 등이 있습니다.”

- 독서가로서 음악에 관한 책 중에 혹시 아끼는 책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 제자들 연락처를 꼭 외워서 연락하고, 추천서는 손글씨로 직접 쓰셨죠. 아내분은 당신 제자의 연주가 있는 날이면 정원에서 찾은 네잎클로버를 대기실에 가져다주곤 하고요. 37년 동안 제자이자 후배를 기르는 일은 어떤 의미였나요?

“오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가 피아노를 얼마나 더 잘 치는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직업, 명성, 돈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물론 저런 것들도 귀한 것이지만요.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청중을 매료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행복이에요. 내가 있는 곳으로 청중이 다가오고, 음악가와 관객이 음악으로 더불어 행복을 나누길 바랍니다.”

- 그런 당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족과 자연, 맛있는 음식, 그리고 산책. 평소에 그림 보는 걸 좋아합니다. 시와 철학책 읽기, 체스게임을 오랫동안 즐겨왔죠. 축구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특별히 받는 영감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보면서 쉬는 거예요.

음악계에서도 기술적으로 어렵고 화려한 레퍼토리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지만, 비교적 흔하고 쉬워 보이는 곡으로 특별한 감동을 만드는 방법도 있죠. 저는 아주 평범하고 그래서 특별히 만족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도움말·번역 양윤희 피아니스트 yoonheey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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