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덴바움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이 지난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바흐의 ‘사라방드’를 연주해 보이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왜 남북연합 오케스트라를 만들려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이 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게 되면 바흐의 ‘사라방드’를 들려주고 싶어요. 느리고 우울한 느낌이 있는 춤곡인데 왠지 그가 좋아할 것 같거든요.”
지난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린덴바움 페스티벌’ 음악감독인 원형준의 표정은 밝았다. 2010년부터 남북연합 오케스트라를 추진해온 그는 “올해는 정권도 바뀌고, 내년에 평창겨울올림픽도 열려 오케스트라에 좀더 희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미국 줄리아드음대를 수학하고 국내외에서 촉망받는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원 감독이 음악을 통한 남북교류를 구상하게 된 것은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의 감동 때문이었다.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한 공연이다. 그는 이 축제에서 영감을 받아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샤를 뒤투아를 초청해 2009년 서울에서 ‘제1회 린덴바움(보리수)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듬해엔 친분이 있던 외교관을 통해 북한에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주를 제안했다. 이 역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1999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 청소년들을 불러 모은 오케스트라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영향을 받았다. 원 감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서도 만나는데, 한반도 남·북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연합 오케스트라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광복 70돌’이라 기대가 컸던 2015년의 실패는 지금도 뼈아프다. “남한은 서울 독립문, 북한은 백두산에서 각각 1차 공연을 한 뒤 8월15일 판문점에서 만나 함께 연주하는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목함지뢰 사건’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더니 연주 당일 통일대교 앞에서 정부가 통과를 안 시켜줬어요. 북한 오케스트라는 판문점에 내려와 있었는데…. 결국 합동 연주는 무산됐죠.”
더는 추진할 엄두가 나지 않아 2년째 손을 놓고 있던 그에게 올해 들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9월 ‘유엔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열린 ‘제네바 평화회담’에서 한국인 최초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원 감독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왜 남북연합 오케스트라를 하려는지 설명해 큰 박수를 받았다. 다큐 영화를 찍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시리아 민간구호단체인 ‘하얀 헬멧’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을 받은 올랜도 본 아인시델 감독과 함께 내년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새달 6일에는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박물관에서 열리는 평창겨울올림픽 기념행사에서 평화를 주제로 독주회도 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아이오시 위원들에게 남북연합 오케스트라가 열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할 계획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