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새 시대 새 민중가요
광화문, 성주, 세월호 집회 등
현장에서 느낀대로 만든 노래들
페미니스트 가수는 여성 위로
젊은 래퍼는 청년들의 아픔 읊어
“자주·해방·통일 등 관념어를 버린
개인 전략을 담은 새 민중가요”
광화문, 성주, 세월호 집회 등
현장에서 느낀대로 만든 노래들
페미니스트 가수는 여성 위로
젊은 래퍼는 청년들의 아픔 읊어
“자주·해방·통일 등 관념어를 버린
개인 전략을 담은 새 민중가요”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대표적인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되었다. 9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 시작된 광장의 노래들도 무르익고 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를 즈음해 창작력을 폭발시키고 광화문 무대에 섰던 래퍼 디템포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읊는 힙합곡을 만들고 있다. 오랫동안 집회 현장에서 노래를 불러온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은 15년 만에 2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경북 성주 사드 반대 투쟁 현장을 다녀온 젊은 음악가들은 현장에서 만든 노래를 모아 앨범을 녹음하면서 <새 민중음악 선곡집-소성리의 노래들>이라 이름 붙였다. 새로운 시대를 안은 ‘새로운 민중가요’가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직접 와서 보니 노래가 ‘뚝딱’ 원래는 노래를 만들려고 간 게 아니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황경하 운영위원과 예람, 이형주, 오재환은 6월27일부터 5박6일간 경북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현장에 일을 돕고 공연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일찍 시작된 여름이 들판을 뜨겁게 달궜다. 같은 시기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는 성주에서 사드 배치 찬성 집회를 열었다. 반대 집회 현장은 허리가 휜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노인들은 집회를 하고 보초를 서는 일을 매일, 1년을 해왔다. 하늘에 뜬 헬리콥터는 불길하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실어나르고 있었다.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1집 앨범을 발표한 예람은 그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만들었다. “예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에 많이 놀랐다. 지키고 싶고, 지키려고 하는 부분을 망가뜨리는 것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나가주오’, ‘그림을 그린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황경하는 선산이 부지 예정지에 포함된 여든네살 ‘봉평 할배’와의 대화를 통해 ‘별고을’이라는 노래를 완성했다. 예정지에 성지가 포함된 원불교 스님들도 집회 현장을 지켰다. 이형주는 ‘영가’라는 노래에 원불교 스님들이 외우는 불경을 노랫말로 가져왔다. 이렇게 짧은 기간 창작력을 불태웠던 노래는 7월1일 공연을 통해 성주 어른신들에게 들려줬다. 이전에 서울의 재개발 투쟁에 참여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프로듀싱했던 황경하는 프로듀서가 되어 녹음을 마무리하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앨범 <새 민중음악 선곡집?소성리의 노래들>을 발매할 예정이다. 곡들은 어디든지 쓸 수 있도록 카피 레프트로 배포된다.
■ ‘나의 정원’으로 오세요 가수 지현은 1997년 활동 시작 때부터 ‘페미니스트’라는 설명을 이름 앞에 내걸었다. 2002년 1집 이후 15년 만에 내는 2집 앨범 <나의 정원으로>는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해 9월초 발매된다. “버스를 탔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가고 있더라. 공간과 시간을 나누면서도 서로 외로워야 하나, 우리 집으로는 그렇지만 ‘나의 정원’ 정도는 열어서 들어올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제목이 되었다.
지현이 “온몸을 열어 타인을 보고 받아들이기 시작해 다시 노래를 만들 준비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통해 여성들의 자각을 보면서 20대 때 자신도 떠올랐다. 지금의 자신은 20대 ‘쌈닭’ 시절 언쟁하던 40대 언니들의 ‘상생관’을 닮았다. 그래서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박혜리가 연주하는 그랜드피아노 등이 곁들여진 “기운을 불어넣는 단순하고 어쿠스틱한” 노래를 만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 모유진은 지난해 곁을 떠난 새끼고양이 등을 앨범용으로 그려주었다. “일과 삶, 특히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일들을 존중하려 했다. 사람들이 들으면서 쉬어갈 수 있기를, 기운을 받고 가기를 바란다.” 정원이 가장 아름다울 9월초 앨범이 나온 뒤 9월22일에는 리펀딩 음악감상회를 연다.
■ 자립을 묻고 100일을 기도하다 탄핵 국면에서 ‘새타령’과 ‘우주의 기운’을 부른 디템포 역시 ‘개인’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 디템포의 최근 곡 ‘요새 젊은것들’은 “충고를 할 거면 돈으로 주세요/ 위로하고 싶다면 고기를 사줄래요”라는 젊은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담았다. 첫 앨범인 <반골>에만 수록될 보너스 트랙 ‘징징’에는 “팬들에겐 여전히 용감한 래퍼 남몰래 불안에 떨어 어린애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왜 안 하겠어”라는 속내를 담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디템포 치킨값 마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치킨값 프로젝트’는 “사실 치킨값 좀 벌어보고자 벌인 본격 생계형 사리사욕 프로젝트”이지만 “한달 음원수익으로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으면 성공이라며 웃는 현실 속에서 인디 아티스트들의 자립 가능성”을 묻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디템포는 프로젝트가 “아티스트로 어떻게 길게 해나갈 것인가 확인받는 자리”라고 말한다. 프로젝트 소개글에는 “저는 대단한 선구자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이 한 걸음이 작게나마 변화를 불러오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걸어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역시 지난해 광화문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 아이리시밴드 바드의 루빈(김정환)은 세월호 참사 3주기였던 올해 4월16일부터 매일 페이스북 라이브로 ‘100일 기도’를 올렸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고민하다가 100일 기도를 하듯이 노래를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100일이 된 7월25일에는 ‘100일 노래’(가제)를 완성했다. “함께했던 노래들을 기억해요 함께 나눈 이야기들 모두 외롭던 나의 밤들의 빛이 돼준 나의 곁의 그대가 고마워요”라는 노랫말을 여러 번 지운 끝에 완성했다.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새 민중음악 선곡집?소성리의 노래들>에 참여한 예람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민중음악’을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는 세대다. 김학선 음악평론가는 “옛 민중가요와 새 민중가요에 뮤지션의 연속성은 없다”고 말한다. “대의를 가지고 투쟁 현장으로 가기보다는, 투쟁 현장을 보고 느끼는 대로 노래하는 것” 역시 달라진 방식이다. 새 민중가요는 좀더 작고 소소한 것들에 집중한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옛날 민중가요들이 자주·해방·통일 등의 관념어를 썼다면 새 민중가요는 전통적인 메시지를 자신에 맞게 소화”한다고 말한다. 이전이 정치적 전략과 전술을 노래에 담았다면 새 민중가요 음악인들은 ‘자신의 전략’을 담는 셈이다.
변화는 광장을 통해 폭발했지만 이미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2012년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 범국민행동의 날 무대에서 가수 지현의 경험이 역사의 진행을 보여준다. 그날 지현은 무대에서 ‘마스터베이션’을 불렀다. 2002년에 낸 1집 앨범 <후: 만나다>에 수록된 곡으로 “내 손끝이 내 온몸을 부드럽게 따스하게”라는 노랫말과 신음소리도 들어가는 적나라한 곡이다. “무대 뒤에서 끝까지 고민을 했다. 이 공연에 온 이유는 뭘까 반문하니, 내가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러서 투쟁으로 피곤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전이라면 안 불렀을 것이다. 나의 이런 개인적인 노래를 그들이 이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참가자들도 나중에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때 나의 노래가 일종의 민중가요로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에 다같이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지현은 ‘새 민중음악’은 “다른 개개인의 생각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새로 만든 곡을 들은 녹음기사로부터 “노래가 몇 달 사이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은 예람은 “민중음악이라는 말이 삶에 와닿은 적은 없다. 앨범 제목인 ‘새 민중음악’에서 ‘새’라는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활동들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그런 게 존중되는 것이 새 민중음악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7월1일 경북 성주 소성리 사드배치 반대 투쟁 현장에서 예람, 이형주, 오재환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짧은 기간 완성한 노래를 이 무대에서 불렀다. 황경하 제공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의 15년 만의 2집 앨범 <나의 정원으로>. 지현 제공
디템포의 ‘치킨값 마련 프로젝트’는 인디 뮤지션의 자립을 묻는 프로젝트다. 크라우드펀딩 이미지
루빈이 4월16일부터 100일간 페이스북 라이브를 한 뒤 완성한 ‘100일의 노래’(가제). 루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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