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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반려견과 유기견의 차이는 눈빛밖에 없어요”

등록 2017-07-06 20:27수정 2017-07-07 11:27

유기견만 그리는 화가 조민영씨

7일부터 ‘검은개 그리기’ 퍼포먼스
프랑스 유학 19년만에 귀국뒤 발병
“유기견 보면 낮은 세상 볼 수 있어”
쉽게 사고 버리는 반려견 문화 풍자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함께 ‘검은 개 그리기 퍼포먼스’를 하는 조민영 작가.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함께 ‘검은 개 그리기 퍼포먼스’를 하는 조민영 작가.
“굳이 왜 유기견을 그리느냐고들 했죠. 돈 되는 것도 아닌데. ”

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조민영(51·사진) 작가는 3~4년 전부터 유기견만 그린다. 초기에는 유기견이 느낄 절망이나 고독함을 드러내려고 파란색으로만 그렸고, 이후에는 다른 색을 함께 쓰되 유기견의 슬픔이 느껴지도록 눈빛을 더욱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눈 주변 근육을 더 세밀하게 묘사하는 식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고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 괴로움을 머금은 눈빛이다. 동물 그림이라 귀엽고 예쁠 걸로 기대한 사람들은 기쁘지 않은 유기견의 표정을 보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조 작가는 “마음이 불편해도 존재하는 사실이고 잊지 말아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민영 작가가 그린 유기견.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 푸른빛으로 그렸다. 조 작가는 이 강아지가 프랑스에서 키웠던 강아지 ‘뽀삐’를 닮았다고 했다.
조민영 작가가 그린 유기견.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 푸른빛으로 그렸다. 조 작가는 이 강아지가 프랑스에서 키웠던 강아지 ‘뽀삐’를 닮았다고 했다.

유기견의 눈에서 공포심, 간절함 등이 느껴진다. 조민영 작가의 화집 ‘잃어버린 산책’ 표지 그림이기도 하다.
유기견의 눈에서 공포심, 간절함 등이 느껴진다. 조민영 작가의 화집 ‘잃어버린 산책’ 표지 그림이기도 하다.
조 작가는 유기견을 그리기 위해 유기견보호센터에서 약 50마리의 유기견을 만났다. 또 국내외 유기견 사진을 구해서 그림을 그렸다.

“만나보면 개들은 눈치가 굉장히 빨라요. 직관적이라고 할까. 주인이 자신을 버리기 전부터 버려질 것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기견을 보면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고 불안한 표정이 사람보다 더 선명해요. ”

조 작가가 유기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다. 홍익대 동양화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생떼띠엔 보자르대학(St-Etienne beaux-Arts)에서 유학 후 작품활동을 하다 19년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계속 치료 중이다.

조 작가는 “내 몸과 마음을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 유기견보호소 자원봉사팀 ‘가까이’를 통해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들과 유기견의 참담함과 슬픔을 비슷하게 느꼈다. 프랑스 리옹에서 살 때는 반려견이던 똥개 ‘뽀삐’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지만, 유기견 문제를 알아갈수록 뽀삐에게 잘못한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매번 봉사를 갈 수 없게 되자 대신 유기견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반려견 사진과 유기견 사진을 보면 다른 게 눈빛밖에 없어요. 처한 환경과 감정상태의 차이만 있을 뿐 유기견과 반려견이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키우던 반려견이 버려지면 하루아침에 유기견이 되는 거뿐인데요. “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유기견도 있었다.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유기견도 있었다.

유기견 검은 개.
유기견 검은 개.

조 작가는 반려견과 유기견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느 순간부터 반려견을 보면서도 유기견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린 유기견 그림을 묶어 지난 2월 <잃어버린 산책>(La Promenade Perdue)이라는 화집을 냈다. 조 작가는 강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유기견 그림책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 유기견은 24시간 산책을 하는 셈이니까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강아지가 혼자가 아닌 주인과 함께 하는 산책을 가장 바랄 거라고 믿는다.

그는 앞으로는 화려하게 치장한 유기견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유기견에게 중세 귀족 같은 화려한 옷을 입혀 현실을 풍자하려 한다. 유기견이 사람들에게 ‘너희 반려견만 사랑하지 말고, 나도 사랑해줘’ 이런 말을 하는 느낌으로.

“유기견을 그리면서 고민했던 지점이 유기견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사람들에게도 유기견의 슬픔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또다른 폭력은 아닐까, 그것만이 답일까 이런 점이었어요. 이번에는 무표정한 유기견을 그려보고 싶어요. ”

유기견의 슬픔과 좌절을 극대화해 표현하기 위해 눈을 자세히 표현했다.
유기견의 슬픔과 좌절을 극대화해 표현하기 위해 눈을 자세히 표현했다.
조 작가는 오는 10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서울 인터파크창동씨어터에서 ‘잃어버린 산책’ 화집 전시를 하면서, 세태를 풍자한 유기견 그림도 일부 선보일 예정이다.

“몸이 아프면 겸손해져요. 세상에 존재하던 아픔을 그제야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유기견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유기견을 보면서 나를 낮추고, 세상의 낮은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

조 작가는 7일부터 12일까지 서울 대학로 혜화아트센터에서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검은개프로젝트’에서 검은 개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케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키우겠다고 입양한 유기견 ‘토리’를 소개한 단체다. ‘검은개프로젝트’는 검은개, 잡종, 유기견 등 한국에서 여러 이유로 입양 가기 힘든 동물을 소개하고 한 해 평균 8만여 마리의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 입양을 권장하는 프로젝트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그림 제공 조민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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