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6월 초 열린 혁오의 콘서트에는 “오늘 우리 떼창 공연에 피처링 와줘서 고마워!”라는 팬들의 ‘농담’이 적힌 화환이 등장했다. 공연의 주인공은 객석에서 떼창을 하는 관객들이고, 혁오는 관객 노래에 피처링을 맡았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 농담만은 아니다. 가요계에서는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 누가 피처링에 참여했느냐가 곧잘 화제가 된다. 꼬리가 개를 흔들 듯 ‘피처링’이 가수를 흔드는 것이다. 이제 피처링은 다양한 문화장르의 협업과 융합의 상징이 돼 가요시장을 흔들고 있다.
■ 피처링, 지디를 캐스팅한 드라마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지니의 5월 월간차트에서 1위를 한 아이유의 ‘팔레트’는 지드래곤이 피처링한 곡이다. 지드래곤은 올해 활발하게 피처링에 참여했다. 2월 자이언티의 앨범에서 ‘콤플렉스’를, 4월 아이유의 <팔레트> 앨범에서 ‘팔레트’를, 5월 싸이 앨범 <4×2=8>에서 ‘팩트 폭행’을 피처링했다. 제각각 한국 최고의 음원 강자라고 할 수 있는 가수들이다. 이 노래들에서 지드래곤은 “해솔아 형은 콤플렉스가 없어 미안 키 작고 말라도 괜찮아 뭐 나니까”(‘콤플렉스’. 해솔은 자이언티의 본명)라고 말하고, “지은아 오빠는 말이야 지금 막 서른인데, 나는 절대로 아니야 근데 막 어른이 돼”(‘팔레트’. 지은은 아이유의 본명)라고 랩을 한다. 지난 8일 앨범 <권지용>을 내기 전부터 이미 지드래곤은 다른 가수의 앨범 속에서 ‘권지용’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싸이의 노래에서는 “내가 언제 틀린 말 해? 발음이 새 틀린다 해 난 그대의 연예인들의 연예인 중의 연예인 난 모두의 연예인”이라고 ‘팩트 폭행’한다. 아이돌팝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묘는 이런 피처링이 “지디의 랩 스킬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디를 캐스팅한 드라마, ‘지디가 이런 말을 합니다’라는 장면의 카메오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활발한 피처링 참여와는 정반대로, 사실 지드래곤은 자기 앨범에 피처링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지난 8일 발표한 <권지용> 앨범에도 피처링 참여 가수가 없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에 참여해 듀엣곡을 부른 것 외에 함께 부르는 곡도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이성수 본부장은 “지금은 ‘셀러브리티(유명인사)의 세상’이다. 셀러브리티가 시도하는 패션·화장품·오락 콘텐츠 등이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어간다”고 진단한다. 말하자면 지드래곤은 그 확장성의 가장 중심에 있는, 셀러브리티의 셀러브리티로 ‘피처링’의 도움이 필요 없는 콘텐츠라는 얘기다.
■ 싸이의 ‘얼굴 피처링’ 싸이는 2015년 영국 아르앤비 가수 에드 시런을 앨범 <칠집싸이다> 피처링에 참여시킨 ‘저력’을 보였다. 이 앨범에선 자이언티, 김준수, 개코, 씨엘 등이 장르를 망라해 피처링에 참여했다. 싸이는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2002년) 쿨의 이재훈이 ‘낙원’을 피처링한 후로 중요성을 실감했다. 어떤 곡을 표현하는 데 저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때는 피처링을 부탁해 곡의 감정선을 잘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올해 나온 <4×2=8> 앨범에는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소속 가수들에게 주로 피처링을 맡겼다. 아이콘의 비아이·바비와 작업하면서 “정말 젊은 피의 수혈이 절실했다. 그 친구들과 작업하면서 ‘이런 거다’라는 생각에 숨통이 트였다. 이후로 곡들이 샘솟듯이 나오더라”고 피처링이 앨범 제작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싸이는 다른 앨범에는 피처링을 별로 하지 않는다. 8집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아이 러브 잇’과 ‘뉴 페이스’에는 피처링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신 싸이는 ‘아이 러브 잇’ 뮤직비디오에 이병헌을,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을 ‘뉴 페이스’ 뮤직비디오에 참여시키며 ‘화면 피처링’을 했다. 이상협 케이티뮤직 본부장은 “(다양한 유닛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룹이 아닌) 혼자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피처링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싸이의 뮤직비디오도 그 한 방법”이라고 진단한다.
이성수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본부장은 “셀러브리티와 콘텐츠,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간격이 좁아져가고 있”는 데서 피처링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콘텐츠들에서 선보이는 스토리텔링과 셀러브리티를 잘 이용하는 것으로 노래의 역할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부터 에스엠엔터테인먼트는 에스엠스테이션을 통해 한 주에 노래 한 곡을 발표하는데, 노래 실력과는 무관한 의외의 조합을 선보여 화제가 되곤 한다. 제이티비시의 오락 프로그램 <님과 함께>에서 커플로 출연한 김숙과 윤정수가 함께 부른 ‘너만 잘났냐’가 대표적이다. 노래 자체가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생겨난 유명인사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노래에 피처링될 때 폭발력을 가진다는 건 여러 음원차트 순위가 증명해준다. 한국방송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결성된 ‘언니쓰’의 노래가 인기를 끌고,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에 나온 노래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 아이돌·힙합·인디뮤직의 융합 서정민갑 평론가는 잘된 피처링곡으로 언니네 이발관의 ‘누구나 아는 비밀’을 꼽는다. “피처링이 음악이라기보다는 이벤트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리스펙트의 의미’를 더했다. 음악을 많이 듣기로 유명한 아이유의 안목을 증명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아이유는 이전 <꽃갈피> 앨범에서 리메이크한 노래에 원곡자 김창완, 클론을 피처링으로 참여시켜 ‘리스펙트’의 의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실력파 가수 수란은 자신의 목소리를 피처링을 통해 알렸다. 2014년 데뷔 때부터 피처링을 한 노래가 16곡에 이른다. 수란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는 한편에서 새로운 형식의 협업도 진행했다.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마네퀸’에서 피처링뿐만 아니라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다. 수란은 첫번째 미니앨범 <워킨>의 선공개곡 ‘오늘 취하면’에서 신진 래퍼 창모를 피처링으로 참여시켰다. ‘오늘 취하면’은 5월 월간차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 앨범에는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매드클라운의 ‘우리 집을 못 찾겠군요’(피처링 볼빨간 사춘기), 정은지의 ‘너란 봄’(피처링 하림), 청하의 ‘와이 돈트 유 노’(피처링 넉살), 백아연의 ‘달콤한 빈말’(피처링 바버렛츠)은 모두 장르를 넘어선 색다른 조합이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스테이션에는 프로듀서 켄지와 가수 김범수가, 가수 차지현이 이디엠그룹 런던보이스와 협업을 했다. 씨제이이앤엠의 ‘스토리 어바웃: 썸, 한달’ 프로젝트에는 구구단, 박보람, 홍대광과 함께 인디록밴드 카더가든이 참여한다. 미묘 편집장은 “콜라보 등을 통해 장르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니 기획사, 장르 등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종류의 융합 시도가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