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30주기 맞아 추모곡 만든 박종철 열사의 친구들
‘그대 멀리 간 길을 따라가다 길을 놓치고 말았네. 아무리 소리쳐 영혼을 불러도 그대는 대답이 없네./ 그대가 물속에 심어놓은 씨앗이 봄에 꽃을 피웠네. 꽃 필수록 아픈 세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건너가네.’(‘타인의 고통’)
6월항쟁 30돌을 맞아 ‘박종철 열사 추모곡’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1987년 1월 터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은 5월 들어 경찰의 은폐·조작 사실이 드러나 시위를 발화시켰고 6월9일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 사건에 이르러 항쟁으로 폭발했다.
“올 1월14일 박종철 30주기 때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시민들과 추모 사진전을 열었어요. 촛불 광장에서 수많은 노래들이 울려 퍼졌는데 문득 종철이를 추모하는 노래 하나 없다는 생각에 슬프더군요. 그래서 평소 인연이 있는 민중가요 작곡가 이성지님에게 불쑥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죠.”
박 열사와 서울대 입학 동기(84학번)로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찬휘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박종철 추모곡 프로젝트’는 80년대 민중가요의 전설들이 속속 합류하며 이어달리기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올초 촛불광장 ‘박종철 사진전’ 계기
서울대 입학 동기 김찬휘씨 첫 제안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만든 이성지씨
“그 이름에 빚진 마음으로 받아들여” 열사의 고교 선배 이산하 시인 ‘작시’
민중가수 김영남씨 ‘타인의 고통’ 녹음
10일 ‘열사 동판 제막식’에서 발표 첫 주자인 이성지(본명 이창학)씨는 바로 86년 4월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가 ‘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작사·작곡자다. 김세진·이재호 열사는 ‘녹화사업’과 더불어 전두환 정권의 대학생 대상 강제 군사훈련의 하나였던 전방입소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서울대 자연대(원자핵공학 81학번) 시절 노래동아리 ‘메아리’에서 활동한 이씨는 졸업 뒤 문화운동에 뛰어들어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래 분과 ‘새벽’에서 창작과 공연 활동중이었다. “얼굴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후배들이었지만, 그 절박감과 분노와 격정을 떠올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딘가에서 다음날의 시위의 결의를 다지고 있을 재호, 세진이가 되어 가사를 쓰고 오선지를 그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노래가 완성됐다.” 두 열사 20주기였던 2006년 이씨가 직접 쓴 ‘벗이여~’ 탄생기의 한 구절이다. 그 시절 민중가수의 스타였던 윤선애(84학번·‘메아리’)씨가 부른 ‘벗이여~’는 지금껏 추모곡의 대표곡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씨는 페이스북에 공개한 ‘타인의 고통’ 제작기에서 처음엔 망설였다고 했다. “‘벗이여~’는 제게 큰 짐이기도 했거든요.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시절 일천한 음악 실력으로 어찌 만들었을까, 지금 돌이켜봐도 이해가 안 되는, 저를 넘어서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씨는 “욕심나는 작업이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사양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듭된 요청에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자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어떤 노래를 써야 할까 한달을 고민했지만 전혀 방향을 잡을 수도 없었죠. 30년 전의 격정과 애통함과 분노를 표현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30년 뒤의 후일담과 같은 추모도 아닌 듯했거든요.” 이씨의 고민을 풀어준 두번째 주자는 박종철의 부산 혜광고 선배이기도 한 이산하 시인이다. “제가 이 선생님의 시 ‘한라산’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든 인연도 있고 ‘페친’이기도 해서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승락해주셨어요.” 지난 4월 이 시인이 보내온 시의 제목은 ‘타인의 고통’이었다. “지금 우리가 박종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그리움과 슬픔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글을 며칠새 읽고 읽고 또 읽었죠. 시어의 운율과 리듬만을 따라가도 노래가 머릿속에 막 흘러갔어요.”
세번째 주자는 역시 80~90년대 민중가수 김영남씨였다. 고려대 노래패 ‘노래얼’ 출신인 김씨는 특히 전대협 통일노래한마당에서 ‘진혼곡’을 불러 감동을 안겨준 스타였다. 김씨 역시 악보를 보여주자 주저없이 음원을 녹음해 주었다.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동안 노래 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음색이 맑고 넉넉하면서도 날카로운 금속성까지 깃들어 추모의 울림에 딱 맞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네번째는 현재 국립합창단 상임작곡가로 활동 중인 전경숙씨로, 바이올린 편곡을 맡아주었다. 바이올린 연주는 최성은(신나는 섬)씨가 해줬다. 그 다음 바통은 국내 최고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이자 부산 노래패 ‘노래여 나오너라’ 출신의 정재영씨에게 넘어가 기타와 편곡, 전체 프로듀싱을 해주었다. 데모 녹음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의 손방일씨, 건반은 김은옥씨가 합류해서 채워줬다. 코러스 역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의 가수 신지아씨가 도와주었다. 마무리 주자는 콘텐츠 무상공유 사이트(celsus.org)를 운영하고 있는 동영상 제작자 김형진씨였다.
“제가 일하는 학원에서 휴대폰으로 데모 녹음을 해봤어요. 빈 강의실에서 그냥 부르는데 눈물이 울컥하고 등에선 소름이 돋더군요.” 이씨는 민주시민들이 최종 주자가 되어 ‘타인의 고통’도 ‘벗이여~’처럼 널리 불러 퍼트려줄 것을 기대했다.
지난 7일 유튜브(youtu.be/XF2nUEsHBPQ)통해 음원으로 먼저 공개된 ‘타인의 고통’은 9~10일 서울광장 북단에서 열리는 ‘민주열사 박종철 30주기 2차 기념전시회’에서 동영상과 함께 첫선을 보인다. 이어 10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청 주최로 행복나무에서 열리는 ‘박종철 열사 기념동판 제막식’에서도 동영상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제공
박종철 추모곡 ‘타인의 고통’을 만든 사람들. 왼쪽 동영상 제작 김형진, 기획·제안자 김찬휘, 작사 이산하, 작곡가 이성지씨.
서울대 입학 동기 김찬휘씨 첫 제안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만든 이성지씨
“그 이름에 빚진 마음으로 받아들여” 열사의 고교 선배 이산하 시인 ‘작시’
민중가수 김영남씨 ‘타인의 고통’ 녹음
10일 ‘열사 동판 제막식’에서 발표 첫 주자인 이성지(본명 이창학)씨는 바로 86년 4월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가 ‘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작사·작곡자다. 김세진·이재호 열사는 ‘녹화사업’과 더불어 전두환 정권의 대학생 대상 강제 군사훈련의 하나였던 전방입소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서울대 자연대(원자핵공학 81학번) 시절 노래동아리 ‘메아리’에서 활동한 이씨는 졸업 뒤 문화운동에 뛰어들어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래 분과 ‘새벽’에서 창작과 공연 활동중이었다. “얼굴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후배들이었지만, 그 절박감과 분노와 격정을 떠올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딘가에서 다음날의 시위의 결의를 다지고 있을 재호, 세진이가 되어 가사를 쓰고 오선지를 그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노래가 완성됐다.” 두 열사 20주기였던 2006년 이씨가 직접 쓴 ‘벗이여~’ 탄생기의 한 구절이다. 그 시절 민중가수의 스타였던 윤선애(84학번·‘메아리’)씨가 부른 ‘벗이여~’는 지금껏 추모곡의 대표곡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씨는 페이스북에 공개한 ‘타인의 고통’ 제작기에서 처음엔 망설였다고 했다. “‘벗이여~’는 제게 큰 짐이기도 했거든요.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시절 일천한 음악 실력으로 어찌 만들었을까, 지금 돌이켜봐도 이해가 안 되는, 저를 넘어서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씨는 “욕심나는 작업이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사양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듭된 요청에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자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어떤 노래를 써야 할까 한달을 고민했지만 전혀 방향을 잡을 수도 없었죠. 30년 전의 격정과 애통함과 분노를 표현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30년 뒤의 후일담과 같은 추모도 아닌 듯했거든요.” 이씨의 고민을 풀어준 두번째 주자는 박종철의 부산 혜광고 선배이기도 한 이산하 시인이다. “제가 이 선생님의 시 ‘한라산’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든 인연도 있고 ‘페친’이기도 해서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승락해주셨어요.” 지난 4월 이 시인이 보내온 시의 제목은 ‘타인의 고통’이었다. “지금 우리가 박종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어요. 그리움과 슬픔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글을 며칠새 읽고 읽고 또 읽었죠. 시어의 운율과 리듬만을 따라가도 노래가 머릿속에 막 흘러갔어요.”
‘타인의 고통’을 가장 먼저 불러준 민중가수 김영남씨.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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