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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팬들이 저를 음악판으로 불러냈어요”

등록 2017-05-04 18:22

유재하음악경연대회로 데뷔했다 바람처럼 숨어버린 가수 정혜선
기획사 재정난·결혼 등으로 활동 접었다 지난달 미니앨범 발표
‘꿈속의 꿈’ 등 일렉트로닉 사운드 강화…가을엔 신곡도 낼 예정
가수 정혜선씨가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녹음실에서 자신의 노래 <꿈속의 꿈>을 부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가수 정혜선씨가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녹음실에서 자신의 노래 <꿈속의 꿈>을 부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음원 나눠주실 분 기다립니다.” “정말 시디를 구할 수 없나요? 엠피스리라도 구할 수 없나요?” “저주받은 명반. 독특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암튼 요새 가수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절대 추천.”

음원사이트에서 음원이 제공되지 않는 정혜선(50)의 1·2집 곡 목록 아래 붙은 댓글들이다. 1989년 1회 유재하 음악경연 대회에서 <나의 하늘>로 은상을 수상한 정혜선은 1992년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이어, 1995년 2집 앨범 녹음까지 마쳤으나 기획사의 재정 문제로 발매하진 못했다. 그러고는 소식이 끊겼다. 홍보용으로 돌린 2집의 노래를 들은 이들은 타이틀곡 <꿈속의 꿈>을 ‘죽기 전에 들어야 할 가요 100곡’(천리안 음악 동아리 ‘두레마을’ 선정)에 꼽거나, 유튜브에 음원을 올리거나, 에스엔에스(SNS)에 그리움을 표하며 그를 기다렸다.

정혜선의 2집 리메이크 앨범 <꿈속의 꿈>. 푸른곰팡이 제공
정혜선의 2집 리메이크 앨범 <꿈속의 꿈>. 푸른곰팡이 제공
지난달 25일 서울 신사동 ‘푸른곰팡이’ 녹음실에서 만난 정혜선은 바로 이들이, 자신이 다시 음악을 하도록 등을 떠밀었다고 했다. “황학동 시장에서 샀네, 경매에서 샀네, 팬들이 글을 올리는데 내가 뭔데 싶었다. 싸게 구입을 해서 듣게 해드려야 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3개월 동안 준비해 지난달 15일, 2집 앨범 수록곡 가운데 4곡을 추려 미니앨범으로 냈다. 발매 소식이 들리자, 음반판매 사이트 향뮤직에서는 이 앨범이 아이유, 혁오, 버스커버스커, 박효신에 이어 예약음반 5위에 올랐다.

곡들은 정혜선이 발굴한 젊은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큐리어스와 부스터의 손을 거쳐 새로워졌다. 큐리어스는 <꿈속의 꿈>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강화했다. 부스터는 <사랑할 수 있다면>, <4가지 방법>을 좀더 사이키델릭한 느낌으로 편곡했다. <아침신문>의 타자기 소리는 키보드 소리로 바뀌었고, 읊조리는 목소리는 좀더 은밀해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여자 전인권’ 혹은 ‘한영애’를 연상시키는 그의 목소리다. <꿈속의 꿈>에서 “우후”가 반복되는 부분은 잊히질 않는다. “젊은 시절 카리스마 있는 록 창법을 좋아했다. 다시 들으신 분들이 목소리는 더 좋아졌다고 하시더라.” “우후” 부분의 창법은 스스로 ‘플라잉 창법’이라고 이름붙였다.

이토록 목말랐는데 그동안 어떻게 음악과 떨어져 살았을까. “‘푸른곰팡이’(1980년대 조동진·조동익 형제의 포크 명가 하나음악의 후신)와 교류는 계속했”지만 음악 작업과는 멀어졌다. 1999년 로커 김사랑의 1집 <나는 18살이다> 앨범의 유일한 외부 작사가로 참여한 게 전부다. “노래방도 가지 않았다. 저한테 음악은 경이로운 영역이라서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에 녹음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는데 엊그제 같은 느낌이 들더라.” 1998년 결혼 뒤 아이를 “성실하게” 키웠고, 이제 아이가 크니까 음악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정혜선의 카리스마 넘치는 20대 시절. 푸른곰팡이 제공
정혜선의 카리스마 넘치는 20대 시절. 푸른곰팡이 제공
앞으로 어떤 음악이 나올지는 그도 모른다. “특별한 개성이 있는 요리를 내는 셰프처럼 청자가 희열을 느끼는, 진정성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뿐이다. 데뷔 때 정혜선에게 음악은 유유히 흐르기보다 폭포처럼 쏟아졌다. 유재하 음악경연 포스터를 본 뒤 기타를 사서 책을 보고 코드를 짚으며 <나의 하늘>을 작곡했다. 음악경연 심사위원이었던 조동진이 앨범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도 순식간에 1집 앨범의 10곡 전곡을 작사·작곡했다. 활동이 뜸하다가 사진가 김중만씨가 2집 앨범을 제안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전곡을 쏟아냈다.

앨범의 에필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더 겸손하게 진지하게 멋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정혜선은 가을까지 2집 앨범의 나머지 곡을 리메이크하고 신곡도 발표한 뒤, 공연을 열 예정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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