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진행된 24회 아시테지 여름축제에서 무용극단 지브라단스가 어린이전용 극장 아이들극장에서 작품 ‘깡통 하나’를 공연한 뒤 아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하는 모습이다. 이 극장은 아이의 신체에 최적화된 객석을 갖추고 있으며, 예술감독을 임명해 우수한 작품만을 골라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아시테지 한국본부 제공
6살, 3살 두 아이를 키우는 김정민(39)씨는 최근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려고 공연 예매 사이트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예매 1~10위 안에 있는 공연의 상당수가 캐릭터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카봇구조대, 소피루비, 시크릿쥬쥬, 뿡뿡이, 파이어로봇, 번개맨 등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캐릭터가 주인공인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친근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은 아이가 이해하기도 쉽고 재밌겠지만, 과연 작품성이 있을지 또 교육적 효과는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린이 공연 시장에서 캐릭터를 내세운 공연이 강세다. 한국 현대문화의 요람이자 창작극의 산실인 세실극장의 김민섭 대표는 “캐릭터 공연은 마케팅 비용도 덜 들고 위험 부담도 적어 수익을 잘 낼 수 있다”며 “제작자들이 너도나도 어린이 캐릭터 공연 제작에 뛰어들어 수년째 강세”라고 전했다.
공연 제작자들이 뛰어든다고 무조건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공연을 볼 수요자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릭터 공연의 인기에는 부모들의 공연 소비 문화 패턴도 한몫한다. 저출산으로 자녀가 하나인 가정이 늘면서 부모가 아이를 위해 쓰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공연 홍보마케팅사 아츠의 조의정 팀장은 “어린이 공연 구매자는 부모인데, 부모는 아이가 잘 아는 공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터닝메카드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터닝메카드, 카봇, 미니특공대와 같은 로봇 뮤지컬이 주로 부모의 선택지에 올랐다면, 올해에는 쥬쥬나 소피루비 등과 같은 여아들 대상 공연이 부모들의 관심 대상이다.
책 한 권 고르듯 신중하게
어린이 공연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가고 있는데도 어린이 공연 정보만을 잘 갈무리한 공공 플랫폼이 없는 것도 캐릭터 공연 강세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김태희 바라예술성장연구소 소장은 “아동청소년극은 모든 연극의 40~50%를 차지할 만큼 시장이 적지 않은데, 민간 운영 예매 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 정보는 캐릭터 뮤지컬 위주로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문화재단 및 관련 협회에서 공연 정보를 수집하지만 사용자 경험(UX)이 불편해서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캐릭터 공연 강세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캐릭터 공연이 부모와 아이의 흥미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어린이 공연 시장 성장세를 추동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캐릭터 공연에서는 일반 작은 공연에서 쓸 수 없는 화력, 조명, 음향, 와이어 등을 사용해 현란한 장관 혹은 볼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하면서 공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예술성이나 작품성, 교육적 측면보다는 지나치게 캐릭터에만 의존하고 스토리는 부실한 일부 캐릭터 공연 때문에 어린이 공연계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공연기획자인 이성모 프로듀서는 “캐릭터 공연은 티브이 속 인물이 아이 앞에서 움직이면서 어린이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도 하고, 일부 캐릭터 공연은 여자는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선입견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들이 그저 한 번 아이와 나들이한다는 개념으로 달콤한 공연만 선택하지 말고, 책 한 권을 고르듯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공연도 신중하게 선택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캐릭터 공연이라고 무조건 상업적이라거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도 있다. 최근 ‘또보’라는 캐릭터를 소재로 뮤지컬을 제작한 송승연 채널 봄 대표는 “단순히 인기 캐릭터인 또보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해외 유명 동화 작가인 오드리 우드의 저작권을 어렵게 풀어 공연과 결합했고, 아이 눈높이에서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캐릭터 공연이라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 또한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공연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캐릭터 유무가 아니라 공연이 메시지가 있는지, 어떤 제작자들이 참여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정의 달이자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다면, 좋은 공연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행복한 인재로 키우는 예술의 힘>의 저자이기도 한 김태희 소장과 김민섭 세실극장 대표의 조언을 토대로 알아보자.
아이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눠야
첫째, 후기를 꼼꼼히 살펴라. 단순히 포스터만 보고, 아이가 보자고 하니까 선택하지 말자. 인터넷을 찾아보면 공연을 다녀온 부모들의 후기가 있기 마련이다. 후기를 여러 개 읽어보고 판단하라.
둘째, 국공립 기관에서 기획한 공연은 믿을 만하다. 세종문화회관, 충무아트홀, 성남아트센터 등 국공립 기관에서 대관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기획자들이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공연은 대체로 질이 보장된다. 국공립 기관 누리집, 우리 마을에 있는 문화재단 누리집을 적극 활용해 공연 정보를 찾자.
셋째, 믿을 만한 극단의 공연인지 살펴보라.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아시테지(ASSITEJ)는 세계 80여곳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비정부 국제기구다. 아시테지는 아동청소년 연극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의 발전을 위해 국경을 초월해 정보 교환 및 공연 교류를 펼친다. 아시테지 한국본부 누리집에 가면 이 본부에 등록한 극단을 알 수 있으니 참고하자.
넷째, 상업적 공간인 마트 등에서 매우 저렴하게 하는 공연은 피하라. 너무 값이 싼 공연은 배우의 자격 등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 단순히 마케팅이나 시간 때우기를 위한 공연일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어린이 전용 극장을 즐겨라. 어린이 전용 극장은 무대에 올리는 작품 선정에서 좌석까지도 아이들을 고려해 제작됐다. 지자체 최초의 어린이 전용 극장인 종로 아이들극장, 라트어린이극장, 예림당아트홀 등은 대표적인 어린이 전용 극장이다.
여섯째, 부모와 아이 함께 공연을 즐기고 공연 후 대화를 많이 나눠라. 아이만 공연장에 들여보내는 일부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연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공연 뒤에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다. 공연도 아이와의 소통에 있어 중요한 도구임을 잊지 말자.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