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에밀 타케 신부님을 만나다’ 초대전 여는 정미연 화가
“부끄럽게도 에밀 타케 신부님의 존재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어요. 우리 식물을 누구보다 사랑해 세계에 널리 알렸고, 제 고향 대구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었어요. 뒤늦게 그림으로나마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영광이지요.”
가톨릭 성화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화가 정미연(62·아기 예수의 데레사)씨가 오는 22일~새해 1월12일 대구 범어동성당 드망즈 갤러리에서 ‘에밀 타케 신부님을 만나다’ 주제로 그림전을 연다. 2014년 9월 이육사 탄생 110돌 기념으로 시와 시인을 그림으로 재현한 데 이어 옛 인물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타케 신부님은 118년 전인 1898년 선교사로 한국에 와 1952년 소천한 뒤 지금도 한국 이름 엄택기란 이름으로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잠들어 계십니다. 하지만 낡은 흑백 얼굴사진밖에는 남긴 기록이나 자료가 워낙 없어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땅의 식물 한 포기까지 사랑한 그 아름다운 마음을 상상하면서 그렸지요.”
120년 전 한국에 온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의 삶 그림으로 재현
우리 식물 1만여개 채집 학계 보고
제주 한라산 ‘왕벚나무’ 발견 ‘한국특산’ 입증 지난해 대구대교구청에서 왕벚나무 ‘확인’
범어 대성당 봉헌 기념해 포럼·전시회
“문화재 지정·박물관 등 이어졌으면”
에밀 타케 신부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897년 24살 때 사제 서품을 받고 몇달 뒤인 이듬해 초 교황의 명을 받아 서울에 첫발을 디딘 뒤 50여년 동안 제주도와 대구를 비롯해 밀양 김해 진주 마산 목포 나주 진도 장성 함평 해남 완도 등 주로 남부지역에서 사목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식물의 표본을 채집해 학명을 짓고 유럽 학계에 알림으로써 한국 식물분류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08년 제주 관음사 경내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유럽 학계에 그 표본을 보고함으로써, 일본으로 잘못 알려진 왕벚나무 원산지가 한국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됐다. 그는 1911년 일본 아오모리에 주재하던 프랑스 출신 포리 신부로부터 ‘온주밀감’ 묘목 10여 그루를 들여와 옛 서홍성당 자리 등에 심었고, 이로써 제주도를 감귤 산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인기 있는 한국특산 구상나무도 가장 먼저 유럽에 전한 게 그였다.
타케 신부의 이런 선구적 행적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정홍규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대구대교구청 등에서 타케 신부가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왕벚나무 두 그루를 발견하면서였다.
영남대 박선주 교수(생명과학과)는 지난 4월 대구가톨릭대에서 열린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통합생태론 콘퍼런스’에서 “1월 대구대교구청과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의 왕벚나무 두 그루의 잎에서 유전자(DNA)를 뽑아 분석한 결과, 제주 봉개동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9호)의 유전자와 똑같았다”고 발표했다. 이어 제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대구대교구청의 왕벚나무는 타케 신부가 1922년부터 20여년 넘게 봉직했던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의 교장 시절인 30년대에 심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확인했다.
대구대교구 차원에서 에밀 타케 통합기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초대전을 주최한 정홍규 신부는 “왕벚나무는 이제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상징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정 작가의 성화 초대전을 통해 타케 신부의 열정이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 타케 신부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유스티노신학교에 상징적인 식물 표본을 소개할 작은 박물관도 준비하고 있고, 제주교구 서귀포 본당을 중심으로 타케 신부 기념사업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초대전과 함께 열리는 생태포럼에서 ‘왕벚나무가 세계로 가는 길’ 주제발표를 맡은 강원대 정은주 교수(산림과학부)는 “타케 신부는 1908~10년 3년 동안 일본 포리 신부와 1만점이 넘는 제주도 식물 표본을 채집해 유럽으로 보냈다. 특히 프랑스 식물학자 레베예는 두 사람이 한국에서 보낸 표본으로 무려 250여개의 신종을 명명해 학계에 등록했다. 레베예의 표본 대부분은 지금도 영국의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이동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미국의 하버드대학 표본관에도 있다”고 소개했다. 전북대 선병윤 교수는 한국 식물분류사를 정리한 저서에서 "타케가 처음 채집해 신종으로 명명된 식물들 중에는 섬잔대, 한라부추, 왕밀사초, 두메담배풀, 섬잔고사리, 반들고사리, 갯취, 좀갈매나무, 제주가시나무, 사슨딸기, 해변취, 한라꿩의다리, 뽕잎피나무 등 제주도 특산이 많다. 특히 섬잔대(Adenophora taquetii Leveille), 뽕잎피나무(Tilia taquetii Schneider), 사슨딸기(Rubus parvifolius var. taquetii)처럼 학명에 타케가 들어간 식물도 13종이 된다”고 기록했다.
가톨릭재단인 대구 효성여대 회화과를 나온 정 작가는 “올해 한국 가톨릭의 상징적인 역사인 대구 범어 대성당 봉헌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고 있는 전시여서 뜻이 깊다”며 왕벚나무의 문화재 지정과 타케 신부의 삶을 알리는 스토리텔링 개발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정미연 화가.
에밀 타케 신부의 삶 그림으로 재현
우리 식물 1만여개 채집 학계 보고
제주 한라산 ‘왕벚나무’ 발견 ‘한국특산’ 입증 지난해 대구대교구청에서 왕벚나무 ‘확인’
범어 대성당 봉헌 기념해 포럼·전시회
“문화재 지정·박물관 등 이어졌으면”
1900년대 초 제주도 홍로성당 재임 시절의 에밀 타케 신부. 사진 가톨릭출판사 제공
1911년 제주에 처음 들여온 온주 밀감을 들고 있는 에밀 타케 신부. 정미연 화가 작품.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