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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마음까지 쓸어줄 ‘청정 빗자루’ 청와대에도 보내고 싶다”

등록 2016-11-10 20:19수정 2016-11-10 23:52

‘세심비’ 빗자루 전시회 여는 변동해씨

“그날 오두막집 마당 한 귀퉁이에서 빗자루를 보는 순간, 마치 죽비로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생전엔 한번도 뵐 인연이 없었지만, 마치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 정신’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그 작은 대나무 빗자루를 가슴에 품고 돌아온 그는 그날부터 전남 장성 세심원 옆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가지를 자르고 다듬어 직접 빗자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선비의 맑은 기운이 깃든 전국의 고택을 찾아다니며 댓살을 구해 와, 인근에 사는 짚풀공예 장인 이연숙 선생과 함께 한자루 한자루 엮어 ‘세심비’ 이름표를 붙였다. 그로부터 3년, 세심비는 350여개나 모였다.

“이 존 것을 혼차만 갖고 있으면 쓰겄소.”

세심원지기 변동해(62·사진)씨가 11일부터 새달 1일까지 서울 효자동 갤러리 우물에서 ‘세심비 전―마음을 닦는 행의 시작이 빗자루입니다’를 열게 된 이유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법정 스님의 오대산 오두막에 있던 빗자루도 전시한다.
법정 스님의 오대산 오두막에 있던 빗자루도 전시한다.

법정스님 오두막 빗자루 보고 ‘깨달음’

전국 선비고택 돌며 대나무살 구해

3년간 350여자루 엮어 ‘세심비’ 전시

11일 오전 11시11분 효자동서 개막

장성 축령산자락 ‘세심원’ 개방해 유명

“탐욕 이겨낼 ‘무소유 정신’ 죽비로 삼아”

“서너해 전 강원도 속초로 통나무집 짓는 법을 배우러 가는 길에 법정 스님의 오두막이 떠올라 오대산 쓰데기골 물어물어 찾아갔어요. 가는 댓살 한줌을 묶어 놓은 흔한 빗자루였는데, 스님께서 생전에 늘 손에 들고 쓰신 게 아닐까 싶으니 예사로워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파트촌에서만 나고 자란 이들에겐 빗자루 자체도 본 적이 드문 요즘이지만, 값싼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집마다 댓살이나 싸리나무 가지로 만든 빗자루를 쓰는 게 당연했다. 그만큼 일상 필수품이어서 빗자루 손잡이에는 번들번들 주인의 손때가 묻어 있곤 했다. 그 역시 지금껏 손수 갖가지 빗자루를 만들어 써왔다. 하지만 새삼 빗자루에서 ‘무욕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처럼 전시까지 하게 된 데는 그 자신 손수 지은 오두막 세심원을 20년 가까이 개방해온 뜻과 무관하지 않다.

‘황주 변씨’ 고을인 장성의 토박이인 그는 일찍이 선산지기를 자임하고 농고를 나와 1980년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30년을 봉직했다. 생활민원을 담당한 덕분에 장성은 물론 남도 구석구석을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던 그는 편백숲으로 이름난 축령산 자락 금곡마을 꼭대기에 버려진 잠실(누에 치던 움막)을 10여년에 걸쳐 손수 개축해 99년 명예퇴직 뒤 개방했다. 벌채한 편백나무와 황토와 참나무숯으로 거듭난 이 집을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이라 이름짓고 조용한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열쇠를 나눠준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수만명이 세심원의 기운과 뜻을 나눠 갔다. ‘무소유의 철학과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빈손으로 떠난 법정 스님의 오두막 빗자루 이름을 마음속 탐욕까지 쓸어낼 ‘세심비’로 지은 건 그에겐 자연스러운 셈이다.

“세심원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고 축령산 휴양림과 맞물려 관광유흥객들이 몰려오면서 숙박 요청이 많아 2009년 인근에 편백통나무 펜션 휴림을 지어 운영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세심원의 초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이 되더라고요.”

그가 마을 지천에 자라는 대나무를 두고, 부러 발품을 들여 전국 곳곳의 선비 고택을 찾아다니며 댓살을 구해온 까닭은 이처럼 스스로 청정한 마음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서 김인후의 필암서원, 고봉 기대승의 월봉서원, 망암 변이중의 봉암서원, 노사 기정진의 고산서원, 청백리 아곡 박수량의 백비와 생가 터, 정약용 유배지 다산초당, 정암 조광조의 죽수서원, 소쇄 양산보의 소쇄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 남명 조식의 남명기념관,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의 강릉 오죽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 추사 김정희 유배지 등 전라도·경상도·강원도·충청도·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의 세심비 하나하나에는 출처를 알리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마침 권력과 탐욕이 결탁한 국정농단으로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우연히 전시 장소가 청와대 인근이다 보니, 지인들이 전시만 할 게 아니라 빗자루를 들고 청와대 앞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들, 농담처럼 권합디다.” “정말 기회만 된다면, 세심비 한 자루 선물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그는 전시 기간 동안 빗자루를 판매한 수익금은 아름다운재단 등에 기부해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탤 작정이다. 갤러리 우물 (02)02-739-6014.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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