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페스티벌 13년 가평을 가다
올해엔 사흘간 19만명 다녀가
학생·주민들 음악에 관심 커져
재즈센터엔 수강생 넘치고 직접 밴드 만들어 순회공연도
자라섬 넘어 치킨집·카센터 등
읍내 상점에 무대 설치해 공연
지역민들에겐 축제가 마케팅 기회
‘재즈 막걸리’ ‘자라섬 뱅쇼’…
“가수들 MR 틀고 노래하면 시시
주민들, 라이브 없으면 재미없대요”
10월1~3일 제13회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렸다. 인구 6만명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고의 재즈 페스티벌이다. 올해는 19만명이 다녀갔다. 자라섬에는 브라질의 가왕 카에타누 벨로주나 드러머 마누 카체 등의 세계적인 뮤지션이 찾는 것만큼 신기한 일들이 1년 내내 벌어진다. ‘축제’와 ‘음악’이 만들어낸 마법이 살아 있는 도시 가평을 찾았다.
■ 페스티벌의 무대, 미래를 보여주다 가평군청 공무원 정택원(56)씨는 ‘마음이 내켜야’ 학교를 가는 아들 혁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년 전 중3이던 혁이를 자라섬 재즈센터에 데리고 갔다. 인재진 자라섬 페스티벌 총감독이 색소폰을 전공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색소폰 수업에 집어넣었다. 혁이는 그 뒤 학교를 두 번 옮기고 결국 퇴학을 당했다. 하지만 혁이는 학교는 빠져도 재즈센터는 수업이 아닌 때도 찾아갔다. 하루 12~14시간을 불었다. 새 학기에 교과서를 받으면 음악 교과서를 쓰레기통에 바로 던져버릴 정도로 음악에 흥미가 없던 아이였다. “인정받는 게 좋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라고는 자기 아이가 학교를 들어갔는데 맞지 않게 해달라는 그런 거였죠. 음악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도 자식 잘 키웠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해요.”
혁이는 검정고시를 보고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졸업반이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그에게 무대를 보여주었고 그것이 미래가 되었다. 그는 2010년 캔디 덜퍼의 공연을 잊지 못한다. “여자 색소폰 연주자인데 공연 보고 나서는 그의 모든 곡을 다운받아 3천번 넘게 들었어요.” 이제 그의 꿈도 재즈페스티벌의 무대에 서는 것이다.
아버지 정택원씨에게도 자라섬은 ‘미래’를 보여준 곳이다. 젊은 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쳤던 정씨는 아들이 색소폰을 배우는 동안 드럼반 수업을 들었다. 젊은 시절 가락이 나오면서 곧 센터의 선생이 되었다. “이전에는 음악이 취미였다면 지금은 행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드럼반에는 남양주에 사는 사람도 있다. 비슷한 거리의 서울 대신 가평으로 오는 이유는 “선생님의 수준이 높고 활기가 넘쳐서”라고 한다.
현재 재즈센터에서는 15개 강좌에 한달에 180~200명 정도가 수업을 듣는다. 신청자가 매번 넘쳐 대기자 리스트도 있다. 가평은 인구에 비해 음악과 가까이하는 사람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선 마장초등학교 꿈의 오케스트라는 학생 4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원초등학교 위곡분교 윈드오케스트라에는 분교 학생 26명 전원이 연주를 한다. 그외 어린이 오케스트라, 교회 오케스트라 등도 있다. 재즈센터에서 지도하는 가평고등학교의 음밴드, 휘월밴드 외에도 가평 시내에는 밴드 30개가 활동 중이다. 음악을 가까이하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는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페스티벌 쪽에서 장학금을 지원한다.
■ 마을로 들어간 페스티벌 서울과 춘천 간 국도(경춘국도)가 자라섬과 읍내를 갈라놓고 있다. 페스티벌 기간이 되면 반경 30㎞ 내에 숙소가 꽉 찬다. 자라섬 페스티벌에서는 읍내로 축제를 끌어들였다. 읍사무소 앞에 대형 무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카페를 빌려 공연을 했다. ‘미드나잇 재즈 카페’는 커피점, 치킨집에 카센터까지 포함해 올해 6곳에 이른다. 1일 저녁 9시에는 경기카센터를 2인 밴드 계피자매가 찾았다. 차량 리프트를 배경으로 꾸민 간소한 무대는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한용구 사장은 페스티벌 쪽에서 장소를 빌리러 왔을 때 막걸리 4병에 흔쾌히 합의해줬다고 했다.
가평군민에게는 페스티벌 티켓값의 40%를 깎아준다. 무료 공연 무대가 15개에 이르지만 많은 가평군민이 티켓값을 내고 공연을 즐긴다. 올해 유료 입장한 가평군민 수는 지난해보다 3배가량 늘었다고 페스티벌 쪽은 추산했다.
■ 재즈 막걸리와 자라섬 뱅쇼 ‘요리사의 농원’ 목장을 운영하는 정매연씨는 공연장 안에서 치즈를 판다. ‘자라섬 재즈 피크닉 박스’는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 지나가는 말로 “내가 꿈꾸는 축제는 별 있는 밤에 돗자리 펴놓고 피크닉 박스를 놓고 음악 듣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걸 들은 재즈 가수 나윤선(인재진 총감독의 부인)이 해보자고 했다. 피크닉 박스에는 가평산 과일과 유가공품을 와인과 함께 담는다. 250명에게 선주문을 받아 판매했다.
포도를 키우는 한철호씨는 6~7년 전부터 포도주를 공연장 안 매대에 올려놓고 있다. 조청, 발효액 등 농특산물을 파는 이들은 사흘째 아침 ‘완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는 와인 페스티벌도 함께 열렸다. 페스티벌 브랜드를 단 뱅쇼를 만들기도 한다. 지역의 막걸리 공장에서는 매년 유자, 밤 등 재료를 달리하며 재즈 막걸리를 만들어낸다.
1, 2회 페스티벌을 치른 뒤인 2006년 페스티벌 스태프들은 모두 가평으로 이주했다. “주민들이 페스티벌 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서울 양아치라고 생각했죠. 기획사들에 당한 기억도 많았고요.”(계명국 페스티벌 사무국장) 이후 페스티벌 스태프가 되는 기본 조건은 이사다. 계 국장은 “축제가 성공하려면 첫째로 프로그램이 잘되어야 하고, 재즈 음악신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지역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2009년 신종플루로 페스티벌이 줄줄이 취소되는 와중에 주민 회의가 열렸다. 그때 한 주민의 말에 계 국장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단다. “다른 건 다 취소하더라도 우리 ‘재즈’는 합시다.”
10년은 무엇을 바꾸었을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우리 주민들은 가수들이 엠아르(MR) 틀어놓고 노래하면 시시하게 알죠. 라이브가 없으면 재미없어해요.”(인재진 총감독) 가평에선 막걸리도 재즈를 틀어놓고 숙성시킨다고 한다. 정매연씨는 무대를 즐기면서 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다. “웅산 팬들이 커다란 케이크를 해 왔더라고요. 저도 팬클럽 이런 거 해보고 싶더라고요.”
가평/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제공
불모의 섬에서 축제의 섬으로 개발이 전혀 안 된 점이 최적의 축제 장소로 이끌어… 올해 1만명 이상 축제 7개 개최돼
2004년 문화기획자 인재진은 문화센터에서 공연 기획 강의를 하며 자신의 페스티벌에 대한 꿈을 펼치곤 했다. 수업을 들었던 가평군 문화담당 공무원 이문교씨가 “가평군은 어떤가”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가평군을 찾아가 소방서 앞, 공원 등을 둘러보았지만 페스티벌을 할 만한 장소는 없었다. 실망하던 차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자라섬이었다.
자라섬은 비가 오면 잠기는 섬이다. 자라섬과 바로 옆의 남이섬은 1943년 청평댐이 생기면서 물이 빠져 땅이 드러난 곳이다. 섬에서 바라보이는 산이 자라 모양이라 ‘자라섬’이라 불렸는데 중국인들이 수박과 참외 농사를 지어 중국섬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더 남쪽에 있는 남이섬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춘천시, 자라섬은 경기도 가평군에 속하면서 서로의 운명도 달라졌다. 남이섬은 강변가요제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지만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무대로 쓰이면서 카페, 펜션, 식당 등이 들어서고 주요 관광지로 부상했다. 이와 달리 경기도에서는 자라섬을 ‘하천구역’으로 두고 임시시설만 설치하도록 했다. 경기도의 엄격한 개발 규제도 한몫했다. 4년 전 홍수 때 잠긴 이후로는 비가 와도 잠기는 적은 없지만 ‘하천구역’하의 관리는 여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이 자라섬을 페스티벌의 성지로 만들었다. 시설물이 없으니 섬을 통째로 가설무대로 꾸며 대규모 축제를 조성할 수 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시작되고 2년 뒤에는 중도에 캠핑장을 조성하면서 캠핑과 축제를 결합한 페스티벌 상품도 유치했다. 현재 자라섬에선 올해 19만명 이상이 찾은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이외에도 5만명 이상이 찾는 뮤지컬 페스티벌(9월), 3만명 이상이 찾는 보야지 투 자라섬(10월), 레인보우 아일랜드(6월), 멜로디포레스트 캠프(9월) 등이 개최되고 있다. 1만명 이상 대규모 축제가 7개, 3천~5천명의 소규모 축제가 10여개 진행된다. 가평군 시설관리과 정덕교 팀장은 “무대 건물을 설치할까 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축제마다 필요한 무대의 크기와 부대시설 등이 모두 달라 임시시설이 더 낫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캠핑장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에 3개의 페스티벌 유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봄·가을은 페스티벌이 꽉 찬 셈이다.
인재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은 자라섬을 보는 순간 핀란드의 포리 재즈페스티벌을 떠올렸다고 한다. 인구가 5만명에 불과한 포리에는 재즈페스티벌에 20만명이 모인다. 인구 6만명의 가평에는 재즈페스티벌에만 20만명이 모이니 자라섬은 포리를 넘어서는 ‘축제의 장소’가 되었다. 당시 가평으로 그를 이끌었던 이문교씨는 현재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가 가끔 재즈페스티벌 무렵 찾곤 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불모의 섬에서 축제의 섬으로 개발이 전혀 안 된 점이 최적의 축제 장소로 이끌어… 올해 1만명 이상 축제 7개 개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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