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남씨는 어린 시절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으나 학업과 생업이 더 중요했다. 여유가 생길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마흔 아홉에야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2003년 부산흑백사진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회원들과 부산을 찍으려 산복도로도 가보고 바닷가도 가봤지만 너무 흔한 풍경이었다. 뭔가 다르게 찍고 싶었던 그는 궁리 끝에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 옆의 풍경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약간씩 비껴난 공간이다. 그래서 ‘주변인들’이 보인다. 이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서민들의 삶의 공간인 도시의 변두리나 산꼭대기는 대형버스나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곳까지 ‘핏줄이 통하게’ 해주는 것이 마을버스다. 그는 마을버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시청의 담당자부터 만났다. 부산의 버스 노선이 담긴 책을 받아왔고, ‘이거 다 한 번 돌아보자’고 마음 먹었다. 부산엔 지난 5월 현재 137개의 마을버스 노선이 있는데, 그는 지금까지 110여개 노선을 답사했다.

부산은 산동네가 특히 많다. 이 도시와 마을버스는 각별한 연결점이 있다. “최근에는 부산 마을버스 ‘남구 3번’을 자주 탔는데 이건 문현동·장고개를 지나 자유시장까지 간다. 예전에 포병부대가 있어서 그런지 문현동엔 포부대라는 동네가 있다. 거기 가면 감천마을을 닮은 곳도 있다.” 남씨는 종점에서 내리면 할머니들과 농담도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어릴적부터 꿈꾸던 사진작가
49살에야 늦깎이 공부 시작
‘최민식사진상’ 장려상도 받아

10년째 ‘부산 다르게 찍기’ 시도
매주 1~3회…110개 노선 답사
첫 사진전 ‘주변인들’ 열어

사진은 글보다 더 감성적으로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 사진가에 따라, 사진가의 표현방법에 따라 이야기를 꾸미는 방식이 다르다. 그의 사진에 찍힌 ‘주변인들’은 사진을 보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이야길 주고 받거나, 혹은 혼잣말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씨의 사진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읽어낼 장치는 사진 속 거리 배경에 잔뜩 들어있다. 몇몇 작품에선 렌즈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아주 빨리 찍는 편이다. 열쇠를 든 아저씨가 순간 나와 사진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모르는 사람인데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만나면 사진을 주고 싶은데 만날 길이 없다. 그 다음날 같은 시간에 그 사람이 나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버스는 움직이고 사람도 움직인다.”

때문에 그의 카메라에 잡힌 거리의 사람들에게 (촬영과 관련해) 허락을 받기는 힘든 노릇이다. 초상권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버스가 움직이니 양해를 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사진에 사람이 있지만 한두 사람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주제다. 그 사람들의 수치심을 자극할 만한 장면은 찍지 않는다. 영리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 간혹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화로 푼다. 하지만 설득이 여의치 않으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는 또 온다. 다행히 지금껏지 사진 찍다가 다툰 적은 없었다.

버스는 늘 움직이는 탓에 안에서 때를 놓치는 장면도 많다다. 하지만 그것 또한 마을버스 사진의 묘미다.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마을버스가 가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언제 서고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으니 자주 놓친다. 처음엔 ‘아이구 저거 찍었어야 되는데’ 라고 아쉬워했지만 이젠 그런 감정도 없다. ‘저건 내 몫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버스는 또 타면 되니까.”

남씨를 알아보는 마을버스 기사들도 제법 있다. 그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살짝 차량 운행 속도를 늦춰주는 배려도 해준다. 어떤 기사는 그에게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동안 10여 명의 기사에게 사진을 인화해 선물했단다.

전시 준비 때문에 최근에 마을버스 타는 일이 조금 뜸했다는 남씨는 전시가 끝나는데로 또 아무 버스나 타고 주변인들을 살피러 다닐 것이다. 137개의 마을버스 행선지는 남씨에게 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하는 화수분인 셈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