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보컬·키보드·기타 차효선, 베이스·서브보컬 정다영, 기타·서브보컬 김나은. 사진 파스텔뮤직
노래 만드는 여자 ⑧ 신스팝 밴드 ‘트램폴린’
“테니스 칠 때 공과 호흡하며 밟은 스텝의 리듬.”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표현처럼,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스페이스 공감’에서의 공연도 어김없었다.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어깨가 실룩거렸다. 가끔씩 차효선이 키보드를 치다가 앞으로 나와서 춤을 추는 것도 흥에 겨워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신스팝 밴드 ‘트램폴린’의 음악은 여느 댄스곡의 효과와는 차이가 있다. 관객이 하나의 리듬으로 뛰기보다는 모두 각자의 템포로 춤을 췄다. 트램폴린의 주문이 그렇다. ‘제멋에 취할 것,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의 템포를 지킬 것, 어찌하든 즐길 것.’
‘작곡가가 있는 밴드’로 꾸준히 진화
‘깃발’을 들듯 자기완성을 위한 여정 느리긴 하지만 트램폴린은 꾸준히 세졌다. 1집은 한 명이, 2집은 두 명이, 3집은 세 명이 만들었다. 20대 후반 뒤늦게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차효선은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첫 데뷔앨범 <트램폴린>(Trampauline, 2008년)을 냈다. 라이브를 위해 도와주던 기타 치는 김나은을 팀으로 끌어들인 뒤 2집 <디스 이즈 와이 위 아 폴링 포 이치 어더>(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2011)를 만들었다. 베이스로 정다영을 섭외하면서 밴드는 3인 체제로 꼴을 갖추고 3집 앨범 <마지널>(Marginal)을 지난해 10월 냈다. 세월을 거치며 더 정교해지고 더 리드미컬해지고 철학적으로 변했다. 차효선이 주로 곡을 쓰지만 ‘잼’을 통해 완성한다. 어떤 때는 곡의 중간이 통째로 비어 있고 질문만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아르앤비를 하면 어떨까.’ 수수께끼 풀듯 김나은과 정다영이 낑낑대며 채워넣는다. 어차피 해답은 없고 나온 곡들은 스텝에 신경 쓰지 않는 춤처럼 흥겹다. 그런데 갑자기 춤을 멈추고 당신이 흥얼거리고 있는 가사를 되뇌어보라. ‘경계의’ ‘변경의’라는 뜻을 내세운 <마지널>앨범은 아웃사이더를 소재로 끌고 왔다. 지난 1월 타계한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앨범과 똑같은 제목의 ‘블랙스타’는 보위의 것처럼 신비한 노래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데 자기들 상태에 도취돼서 서로를 바라보는 상황, 어둡고 다크한 것에 매혹된 순간”을 노래했다. 장 주네의 <도둑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후렴구에 ‘두만강, 연변, 윈난, 라오스’를 반복하는 ‘선무’는 한 탈북화가의 여정을 그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이 끊임없이 걸었던 길을 상기시킨다. “후렴구가 ‘만트라’(영적 또는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 발음, 음절, 낱말 또는 구절)처럼 들렸으면 했다.” ‘서치 어 크라운’은 심각한 상황을 그저 우습게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을 노래한다. 한 레즈비언 팬은 “꼭 내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폴리가미’는 ‘일부일처제’의 신화에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노래다.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폴리가미’가 살랑거리며 귀에 속삭이는 건 생경한 경험이다. ‘복서스 와이프’는 누군가가 드러눕기를 바라는 청중을 향한 권투선수 아내의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머신스 아 휴먼’은 독일의 신스팝 밴드 랄리 푸나와의 공동 공연을 위해 만든 곡이다. 기계는 또 하나의 인간이라는 메시지는 그들 현재 음악의 위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인간적인 복잡한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전자음’으로 불리는 일렉트로닉팝이자 합성된 소리의 나열인 신스팝이다. 트램폴린의 음악은 마지널하면서 쿨한 여성들의 자기완성을 향한 여정이다. “이 말은 아이의 매력은 지녔지만 남자보다는 못한 존재,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가리킵니다. 수전 손택(미국의 사진가·문화비평가)이 인터뷰에서 한 말에서 따왔습니다. 사회에서 ‘마지널’한 세 명의 한국 여자들이, 이 세상에 공평하게 존재하는 에너지를 가져다 만든 곡이고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공연에서 차효선은 ‘베터 댄 어 차일드, 레스 댄 어 맨’(Better than a child, less than a man)을 이렇게 소개했다. 원래 가사 없는 연주곡이었다. “되게 쉽게 나온 곡인데 보통의 우리 밴드 곡과 달리 에너지가 끓는다. 그래서 ‘우먼 파워’를 느껴보라고 하는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깃발을 한번 들고 싶었던 것 같다.” <끝>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깃발’을 들듯 자기완성을 위한 여정 느리긴 하지만 트램폴린은 꾸준히 세졌다. 1집은 한 명이, 2집은 두 명이, 3집은 세 명이 만들었다. 20대 후반 뒤늦게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차효선은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첫 데뷔앨범 <트램폴린>(Trampauline, 2008년)을 냈다. 라이브를 위해 도와주던 기타 치는 김나은을 팀으로 끌어들인 뒤 2집 <디스 이즈 와이 위 아 폴링 포 이치 어더>(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2011)를 만들었다. 베이스로 정다영을 섭외하면서 밴드는 3인 체제로 꼴을 갖추고 3집 앨범 <마지널>(Marginal)을 지난해 10월 냈다. 세월을 거치며 더 정교해지고 더 리드미컬해지고 철학적으로 변했다. 차효선이 주로 곡을 쓰지만 ‘잼’을 통해 완성한다. 어떤 때는 곡의 중간이 통째로 비어 있고 질문만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아르앤비를 하면 어떨까.’ 수수께끼 풀듯 김나은과 정다영이 낑낑대며 채워넣는다. 어차피 해답은 없고 나온 곡들은 스텝에 신경 쓰지 않는 춤처럼 흥겹다. 그런데 갑자기 춤을 멈추고 당신이 흥얼거리고 있는 가사를 되뇌어보라. ‘경계의’ ‘변경의’라는 뜻을 내세운 <마지널>앨범은 아웃사이더를 소재로 끌고 왔다. 지난 1월 타계한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앨범과 똑같은 제목의 ‘블랙스타’는 보위의 것처럼 신비한 노래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데 자기들 상태에 도취돼서 서로를 바라보는 상황, 어둡고 다크한 것에 매혹된 순간”을 노래했다. 장 주네의 <도둑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후렴구에 ‘두만강, 연변, 윈난, 라오스’를 반복하는 ‘선무’는 한 탈북화가의 여정을 그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이 끊임없이 걸었던 길을 상기시킨다. “후렴구가 ‘만트라’(영적 또는 물리적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 발음, 음절, 낱말 또는 구절)처럼 들렸으면 했다.” ‘서치 어 크라운’은 심각한 상황을 그저 우습게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을 노래한다. 한 레즈비언 팬은 “꼭 내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폴리가미’는 ‘일부일처제’의 신화에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노래다.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폴리가미’가 살랑거리며 귀에 속삭이는 건 생경한 경험이다. ‘복서스 와이프’는 누군가가 드러눕기를 바라는 청중을 향한 권투선수 아내의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머신스 아 휴먼’은 독일의 신스팝 밴드 랄리 푸나와의 공동 공연을 위해 만든 곡이다. 기계는 또 하나의 인간이라는 메시지는 그들 현재 음악의 위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인간적인 복잡한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전자음’으로 불리는 일렉트로닉팝이자 합성된 소리의 나열인 신스팝이다. 트램폴린의 음악은 마지널하면서 쿨한 여성들의 자기완성을 향한 여정이다. “이 말은 아이의 매력은 지녔지만 남자보다는 못한 존재,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가리킵니다. 수전 손택(미국의 사진가·문화비평가)이 인터뷰에서 한 말에서 따왔습니다. 사회에서 ‘마지널’한 세 명의 한국 여자들이, 이 세상에 공평하게 존재하는 에너지를 가져다 만든 곡이고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공연에서 차효선은 ‘베터 댄 어 차일드, 레스 댄 어 맨’(Better than a child, less than a man)을 이렇게 소개했다. 원래 가사 없는 연주곡이었다. “되게 쉽게 나온 곡인데 보통의 우리 밴드 곡과 달리 에너지가 끓는다. 그래서 ‘우먼 파워’를 느껴보라고 하는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깃발을 한번 들고 싶었던 것 같다.” <끝>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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