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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독심술 지닌듯 ‘구체적 노랫말’…여심 대변하네!

등록 2016-01-26 21:02

팝밴드 ‘빨간의자’ 수경
팝밴드 ‘빨간의자’ 수경
노래 만드는 여자 ④ 팝밴드 ‘빨간의자’ 수경
유진이는 ‘나쁜 년’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을 했는데, 정작 술에 취한 그는 나 아닌 유진이의 이름을 외쳐 부른다. “나는 왜 안 되냐고.”(‘유진이를 좋아하는 너’) 고백하는 사람과 고백받는 사람에게 똑같이 메아리치는 청춘들의 슬픈 사랑은 ‘유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깜짝 놀랄 구체성을 갖춘다. 유진은 어쿠스틱 팝밴드 ‘빨간의자’의 수경이 친구 이야기를 각색하며 갖다붙인 이름이다. 2월에 나오는 싱글 ‘더러운 색이야’에서도 유진이는 다시 등장한다. 남자친구는 유진이와 바람을 피웠다. ‘색이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셈이다. 두 곡을 연결해보면 아팠던 남자는 ‘유진’을 만나게 되어 행복해진 걸까. 그런데 그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는 어떡하지.

2010년 ‘유재하 음악대회’ 입상
이듬해 밴드 만들어 본격 활동
김광석이 부른 ‘잊혀지는 것’에
여자입장 랩 덧붙여 상 받기도
“진심 담으면 언제든 통하겠죠”

구체성은 수경 노래의 힘이다. “30분 차를 타려고 맘을 먹고 매몰차게 뒤돌아서려 했었는데 29분이 되어보니 또 맘은 변하고 40분 차를 타려고 되돌아서… 그다음 차를 타도 우리의 헤어짐은 변하질 않아.” 수경이 만든 이승철 11집 <마이 러브>‘40분 차를 타야 해’에서도 구체적인 시간에 따른 마음의 변화를 추적한다.

구체성은 상황 속으로 감정이입을 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고3 가을에 시작해서 늦었구나 싶었던 작곡과 입학 시험에서도, 2014년 ‘김광석 따라 부르기’ 경연에서 ‘잊혀지는 것’을 편곡해서 부를 때도 그랬다. 입학시험 때 메인 소절을 만들고 평소 흥얼거리는 대로 가사를 만들어 넣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여자’라는 주제의 가사였다. 나중에 듣자 하니 이전까지 입학시험에서 가사까지 쓴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결과는 수석 합격. ‘김광석 따라 부르기’에선 김광석이 부른 ‘잊혀지는 것’을 택했다. 기타의 주선율에 카혼(상자로 된 타악기)과 멜로디언을 넣어서 노래색을 바꾸었다. 그리고 중간 부분을 뚝 잘라 랩을 집어넣었다. ‘어느새 무뎌졌지만 아직 내 가슴속에 니가 남아 있다며 꿈으로 번진 너를 향한 그리움마저 이제는 전할 수 없는 소식이 되었고.’ “자존심 있는 여자들 있잖아요. 그런 여자들의 마음을 상상해보았죠.” 사랑했던 감정도 잊혀진다는 원곡의 가사에 상대방 여자 입장이 되어서 랩을 덧붙인 것이다. 결과는 ‘김광석상’ 수상. 이전 1회와 2회는 모두 남성이 수상했었다.

수경은 대학 3학년 때인 2010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데뷔했다. 2011년 피아노 강주은, 드럼 정재훈과 함께 밴드 ‘빨간의자’를 만들었다. 멜로디데이에게 ‘혼자 하는 사랑’ 등의 곡을 주고 한국방송 일일드라마 <가족의 탄생>오에스티 작업을 했다. 2014년 ‘새벽 이야기’ ‘니나노 나노니’ 등이 들어 있는 정규 1집 <존재의 온도>를 냈다. ‘설레여라’ ‘사직서를 써놨다’ 등의 싱글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한국방송 <불후의 명곡>(1월23일 방송) ‘김광석 편’ 무대에도 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른 유리상자 이세준의 코러스로서다.

음악을 시작한 지 6년, 아직까지 확 떴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활동을 하며 알게 된 가수 박학기는 “수경아 잘하고 있어. 가요계에서는 버텨야 해. 힘들더라도 일단 버텨라”라고 말해준다. 같이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력은 헛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상황이 걱정스럽긴 한가보다. 하지만 수경은 여전히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면 통한다”고 믿는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돌아보면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시대를 건너 마음속을 드나들듯 공연을 할 때도 수경의 ‘독심술’ 버릇이 나온다. “노래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 사람 한 명 한 명을 보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왔구나, 눈도장을 찍어요. 즐거운 표정이면 나도 즐겁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힘든 일이 있으셨나 생각하죠. 나의 즐거운 감정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감정이 더 강해져요. 그렇게 감정을 공유하는 공연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봄에는 공연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1989년생 노래 만드는 여자 수경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들락거리며 크고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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