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사지 않는 세대 위한 팬서비스
음원시대가 되면서 앨범을 손으로 만져본 게 언제인지조차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앨범 이미지가 정사각형인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물질’ 때문이었다. 앨범 커버에서 나온 동그란 LP와 동그란 CD는 빙빙 돌아가며 음악을 들려주었다. 동그란 걸 담으려니 상자는 정사각형이 되었다. 올해 나온 앨범을 중심으로, 뮤지션들이 앨범 커버를 통해 보여주는 또하나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 충만한 예술 지난해 미니앨범 <20>, 올해 <22>를 낸 밴드 혁오의 앨범 커버는 옆으로 긴 그림이다. 작업을 한 노상호 작가는 밴드 혁오가 겪고 앨범에 담은 모든 느낌을 표현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노 작가가 그린 <20>과 <22>의 그림 두 장은 흐르는 물처럼 연결된다.
옥상달빛이 올해 내놓은 두 미니앨범 <희한한 시대><달리기>는 단순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내세웠다. <희한한 시대>는 초록색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희한한 그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가사가 ‘희한하게 한가로운’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달리기>에는 순위를 매긴 표적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음반기획사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강동훈 아트팀장은 “앨범 아트워크가 단순한 포장재로 소비되기보다 뮤지션의 작업물에 이질감 없이 스며들어 완성된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여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선결의 앨범 <급진은 상대적 개념>의 노동자를 담은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라고 추천한다. KT&G 상상마당의 레이블 마켓 운영팀은 우효의 앨범 <어드벤처>가 “상큼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그의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음반 재킷이었다”고 평한다.
■ 책이 된 앨범 패닉스위치의 <빡센 인생>앨범 아트워크도 특이하다. ‘오빠’라 쓰인 셔츠를 입은 남자와 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온몸에서 ‘물기’를 분출하고 있다. 겨드랑이 땀 흥건하고 침이 분출한다. 밴드의 보컬 홍종훈이 그린 그림이다. “타이틀 제목이 ‘하드 라이프’인데 ‘힘들게 태어나서 힘들게 산다’는 노래 메시지가 잘 드러나도록 했다.”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가 앨범 커버를 만드는 원칙은 ‘메시지’를 엽기적 혹은 창의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패닉스위치는 두 번째 미니앨범에서 잡지 형식의 앨범 재킷을 만들기도 했다. 수록곡 가사와 밴드의 지난 역사, 수상목록 등을 곁들여 홍보지 역할도 한다. 11월 ‘돈춘호와 가당찮’의 정규앨범 <처음 뱉겠습니다>도 잡지 형식을 시도했다. ‘돈춘호…’는‘훈민정음’등의 랩으로 유명한 서울방송(SBS) 도준우 PD가 결성한 밴드다. ‘주옥 같은 가사’를 잡지 형식의 가사집으로 담은 것이다.
앞의 두 앨범이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나는 ‘인디 잡지’ 느낌이라면 지난해 B1A4의 첫 번째 정규앨범에 곁들인 잡지는 화려하다. ‘후 엠 아이(WHO. AM. I)’ 로고 아래 5명 멤버들을 각각 표지로 내세우고 인터뷰와 사진을 144페이지에 담았다. 루시드폴의 7집 앨범에는 <푸른 연꽃>이라는 동화가 묶여 있다. 뒷 페이지에 붙은 CD는 ‘부수적’ 상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 네모로는 알 수 없는 ‘피지컬’의 세계 아이돌에게 색깔 짱짱한 화보집과 스타 카드는 없으면 섭섭하다. 조금은 특이한 시도도 있다. 빅뱅은 4장의 앨범을 모두 모으면 ‘MADE’가 되는 미니앨범을 매달 발매했고, 지코는 <갤러리>앨범을 ‘탁상형 액자’로 만들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속지의 사진 엽서를 바꿔가며 감상할 수 있다.
인디 밴드에게도 ‘호객’은 필요하다. 폰부스의 경우는 지난해 <장난>을 만들면서 ‘종이 접기 앨범’을 만들었다. 폰부스의 멤버 박한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류인 상황에서, 앨범의 소장가치를 좀더 높여보자는 의도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앨범이 단독으로 생존할 수 없는 세계에서 ‘호객’을 하는 이유는 여전히 앨범이 음악하는 이들의 중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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