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어름산이’ 박지나가 타령장단에 맞춰 엉덩이로 외줄을 튕기며 뛰어오르고 있다. 5m 남짓의 줄을 건너며 새로운 장기를 보일 때마다 관객은 즉석에서 돈을 건네기도 한다.
100℃르포 - 19세기 ‘보아’ 들이 외줄을 탄다
엉덩이로 출렁∼2m나 둥실
엉덩이로 출렁∼2m나 둥실
우리네 놀이판 멍석은 짜고 치는 한, 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사당네는 특히 그렇다. 뜬금없이 ‘매호씨’(악사 가운데 광대와 대화하며 즉석 재담을 이어가는 이)가 자신은 남자인 걸 은근히 뻐기자 ‘어름산이’ 박지나(18)가 대뜸 이렇게 받아친다. “그래도 내가 네 놈처럼 머슴 하러 태어난 건 아니라 참 다행이구나.” 관중은 자지러진다. 19세기 바우덕이도 그랬을 것이다. 바우덕이. 남사당패 유일의 여성 광대다. 우두머리인 꼭두쇠까지 올라 조선 말기를 풍미했다. ‘19세기의 보아’란 표현을 쓰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난 6일, 안성 남사당전수관에서 21세기 바우덕이를 만났다. 안성종고 2년생, 줄타기를 전문으로 하는 박지나다. 외줄타기. 2~3㎝ 굵기의 밧줄이 고무줄 같다. 위 아래, 좌우로 줄은 갈피 잡지 않고 흔들린다. 남사당 놀이의 꽃이다. 위태위태한 게 얼음 위를 걷는 꼴이라 하여 ‘어름’, 그 위에 선 줄광대를 ‘어름산이’라 불렀다. 지나는 얼음 위를 걸으며 넉살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채 하나 달랑 들고서. 21세기 바우덕이를 키우고 있는 곳은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남사당바우덕이)이다. 옛 남사당의 여섯 마당 놀이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명실공히 줄타기의 일인자인 권원태(38·남사당바우덕이 상임단원)의 제자로 서주향(14)과 함께 외줄타기의 맥을 잇고 있다. 입담이 갈수록 농익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줄에 몸을 띄웠으니 줄 탄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공중에 ‘어름’이 있다면 땅에는 살판이 있다. 박찬종과 함께 살판을 꾸민 문현준(병천고 3년)의 재주넘기가 어른의 것 못지 않다.
매일같이 줄을 타고, 매일같이 울었던 중학생 때를 지나니까 두려움이 찾아왔다. 실력이 늘자 ‘어떻게 하면 떨어진다’는 게 눈에 보인 탓이다. 그만 두지 못했다. 어차피 5m 남짓 줄에 매인 인생이다. 오른 이상 떨어지지 않고선 그냥 내려올 수가 없잖은가. 이 발랄한 여고생은 전한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기술이 늘어날 때마다 관객들이 반응을 보이거든요. 남의 시선을 끄는 것도 좋고요.” 도회지 사람들만 모른다 토요일 밤마다 어김없이 이 놀이패와 각지에서 온 500여명의 관람객이 어울려 질펀한 야외 놀이마당을 펼치고 있다는 걸. 이미 3년째다. 지금 남사당바우덕이의 상임단원들은 모두 프랑스 콩플랑 축제(18일까지)에 초대받아 갔다. 전수관 앞마당은 대신 박찬종 등 몇 남사당 바우덕이 단원과 도당청소년연희단이 메운다. 천안, 양평, 동두천 등지에서 온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일반인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연희단이다. 박찬종의 제자들이기도 하다. 무대를 여는 설장구 합주(4명이 서서 들려주는 장구합주), 살판(재주놀이), 덧뵈기(탈놀이), 버나놀이(가죽접시돌리기), 덜미(인형극), 무대를 닫는 어름(줄타기)까지 남사당의 여섯 마당에 사물놀이까지 이들 몫이다. 남사당전수관 실내연습실은 좁다 125평이 40여명의 연희단원들로 비좁다.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6시30분이 다가와도 긴장은 찾아볼 수 없다. 수다 떨기 바쁘다. 휴대폰 문자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자반 돌리기를 하지만 그도 그냥 까불대는 것에 가깝다. 여느 학교 쉬는 시간 복도를 닮았다. 모두 이미 한복으로 갈아입은 뒤다.
남사당전수관의 실내연습실에서 연희단원들이 상모를 돌리고 있다. 이날 30도가 넘는 무더위로 한시간 가량 연습을 중단하기도 했다.
“옛날 문화나 역사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풍물이거든요.” 설장구가 제법인 이윤송(18·천안 병천고 2년)이 말한다. 실제 매년 새로 들어오는 6명 가운데 2명 가량이 그만 둔다. “네가 무슨 역사를 배워?” 친구들이 골린다. 지난해엔 ‘덩’이나 겨우 칠 줄 알았다고들 난리다. “장단 기술은 늘지만 감성이나 호흡을 함께 갖추는 게 장난 아니다”며 윤송은 기가 죽지 않는다. 이들은 유명해지고 싶다 정말 보아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는 “25살이 되었을 때 어름산이 박지나를 전 국민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광훈(원광디지털대 전통타악연희과 1년)은 그랬다. “더 열심히 하면 봐달라 사정하지 않아도 절 자연스럽게 볼 겁니다.” 양 귓불에 매달린 귀고리에 자연스레 눈이 가듯. 병천고 풍물 동아리를 이끄는 교사 박종건은 “전통연희를 돈 내고 보려는 사람이 아직 많지는 않다”며 “대부분 어렵게 생활을 꾸리면서 우리 것을 지켜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이 그 현실을 모를 리 없다. 다만 그게 미래일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마당엔 멍석이, 객석 쪽엔 돗자리가 깔린다 300여명 관객으로 야외 마당이 꽉 찬다. 나들이온 가족은 물론 수녀, 비구니도 보인다. 땅거미가 배경이다. 장단에 바람이 먼저 춤을 춘다. 2.5m 높이에 줄이 설치된다.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지나의 몸놀림이 다채롭다. 한 발로도, 정강이로도 줄을 건너보고 엉덩이로 1~2m를 발 구르듯 뛰어오른다. “무슨 놈의 박수소리가 죽은 놈 방귀소리만도 못해.” 여고생의 입으로 걸게 소리 한번 질렀는데 그 다음 대사는 잊어버린다. 관객이 웃음을 멈출 겨를이 없다. “먹고 살려고 이 지랄 같은 걸 배워서… 말이지.” 도심을 피해온 관객들 모두의 속내를 대변해준다.
사물놀이를 맡은 연희단 학생들이 곱게 분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물놀이 차례 되어 들이닥친 폭우로 ‘화장발’ 위력을 맘껏 뽐내지 못했다.
친구인 최윤옥, 이기숙(38)씨는 가족을 데리고 수원에서 왔다. “좋은데요. 1시간밖에 걸리지 않더라고요. 공짜인 데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놀이 한 마당으로 스트레스 풀린다. 밤 8시30분. 줄타기가 끝나고 사물놀이가 시작하자마자 폭우가 몰아친다. 멍석이 거치고 관객들은 지붕을 찾아 야외 마당을 떠난다. 순식간이다. 언제 축제 있었나? 그리고 다시 삶이다. 안성/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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