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씨
가곡 독주회 여는 연광철씨
세계 오페라 최정상급 실력
‘사월의 노래’등 한국가곡 준비
최근 오페라 실황 영상 선봬 시골 출신의 늦깎이 음악학도에서 세계 오페라 무대의 최정상급 베이스 가수로 성장한 연광철(46·사진)씨. 해외 무대에서의 활약 소식은 종종 국내에 전해졌지만, 국내 팬들에게 그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특히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그가 올봄, 가곡과 오페라로 연달아 국내 팬들을 만난다. 오는 26일과 28일 호암아트홀 독창회에서는 가곡 가수의 면모를, 다음달 4~6일 같은 장소에서 영상으로 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온 스크린’ 시리즈에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통해 오페라 가수의 면모를 보여준다. 1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난달 독일 함부르크와 뮌헨에서 바그너 오페라 <파르치팔>에 출연한 뒤 한국에 들어왔다”며 “현재 재직중인 서울대 강의를 비롯해 독주회, 각종 행사, 차기작 준비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열리는 가곡 독창회에서 그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더불어 ‘강 건너 봄 오듯이’, ‘사월의 노래’ 등의 한국 가곡,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베이스로 듣는 한국 가곡의 맛이 색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라이브 공연이 아닌 영상 공연이지만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2010~2011 시즌 때 그가 부른 ‘따끈따끈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는 “지금의 이런 삶을 상상해본 적 있냐”는 질문에 “그저 음악이 아름다워서 따라가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어릴 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가정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었어요. 노래를 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로 일하거나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출발은 다른 성악과들과 많이 달랐다. 1970년대 초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충북 청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살면서 왕복 3시간 등하굣길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 걷기가 적적하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곳을 지날 땐 무서웠거든요. 레퍼토리는 주로 새마을운동 노래를 비롯한 ‘건전 가요’였죠.” 그는 “그때 처음으로 노래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빨리 취업할 요량으로 공고에 다니다 건축설계사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이 원했던 성악 공부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대로 된 레슨도 못 받은 채 청주대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입학했다. “단지 노래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콩쿠르에서 우승하겠다거나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그는 1990년 미국이나 서유럽에 비해 비교적 경제적인 부담이 적은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음악원에 입학했고,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레자 콜레바 교수가 다시 독일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으로 보냈다. 그는 베를린 국립예술대학 재학 당시 대체 진출자로 출전한 제1회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비로소 성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3년 연광철은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오디션장에서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당시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10년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극장,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무대에 번갈아 오르는 최정상급 베이스 가수로 성장했다. 96년부터는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에 100회 넘게 출연하며, 유럽 음악 팬들에게 ‘바그너 가수’로도 각인됐다. “서양 베이스 가수 대부분이 190㎝가 넘는 장신에 어둡고 무거운 목소리가 주류인데, 저는 171㎝로 키도 작고 목소리가 따뜻하고 감미롭다고 해요. 그들 눈에 독특한 베이스 가수였던 거죠.” 과연 국내에서 그의 오페라를 라이브로 감상할 날은 언제쯤 올까. 그는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레퍼토리가 제한적이어서 베이스가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며 “이번에는 영상으로 만나 아쉽지만, 언젠가 국내에서도 바그너를 비롯한 다양한 작곡가의 오페라를 라이브로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민/음악·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월의 노래’등 한국가곡 준비
최근 오페라 실황 영상 선봬 시골 출신의 늦깎이 음악학도에서 세계 오페라 무대의 최정상급 베이스 가수로 성장한 연광철(46·사진)씨. 해외 무대에서의 활약 소식은 종종 국내에 전해졌지만, 국내 팬들에게 그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특히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그가 올봄, 가곡과 오페라로 연달아 국내 팬들을 만난다. 오는 26일과 28일 호암아트홀 독창회에서는 가곡 가수의 면모를, 다음달 4~6일 같은 장소에서 영상으로 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온 스크린’ 시리즈에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통해 오페라 가수의 면모를 보여준다. 1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지난달 독일 함부르크와 뮌헨에서 바그너 오페라 <파르치팔>에 출연한 뒤 한국에 들어왔다”며 “현재 재직중인 서울대 강의를 비롯해 독주회, 각종 행사, 차기작 준비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열리는 가곡 독창회에서 그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과 더불어 ‘강 건너 봄 오듯이’, ‘사월의 노래’ 등의 한국 가곡,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베이스로 듣는 한국 가곡의 맛이 색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라이브 공연이 아닌 영상 공연이지만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2010~2011 시즌 때 그가 부른 ‘따끈따끈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는 “지금의 이런 삶을 상상해본 적 있냐”는 질문에 “그저 음악이 아름다워서 따라가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어릴 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가정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었어요. 노래를 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로 일하거나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출발은 다른 성악과들과 많이 달랐다. 1970년대 초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충북 청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살면서 왕복 3시간 등하굣길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 걷기가 적적하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곳을 지날 땐 무서웠거든요. 레퍼토리는 주로 새마을운동 노래를 비롯한 ‘건전 가요’였죠.” 그는 “그때 처음으로 노래의 즐거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빨리 취업할 요량으로 공고에 다니다 건축설계사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 뒤 비로소 자신이 원했던 성악 공부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제대로 된 레슨도 못 받은 채 청주대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입학했다. “단지 노래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콩쿠르에서 우승하겠다거나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그는 1990년 미국이나 서유럽에 비해 비교적 경제적인 부담이 적은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음악원에 입학했고,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레자 콜레바 교수가 다시 독일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으로 보냈다. 그는 베를린 국립예술대학 재학 당시 대체 진출자로 출전한 제1회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비로소 성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3년 연광철은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오디션장에서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당시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10년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극장,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무대에 번갈아 오르는 최정상급 베이스 가수로 성장했다. 96년부터는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에 100회 넘게 출연하며, 유럽 음악 팬들에게 ‘바그너 가수’로도 각인됐다. “서양 베이스 가수 대부분이 190㎝가 넘는 장신에 어둡고 무거운 목소리가 주류인데, 저는 171㎝로 키도 작고 목소리가 따뜻하고 감미롭다고 해요. 그들 눈에 독특한 베이스 가수였던 거죠.” 과연 국내에서 그의 오페라를 라이브로 감상할 날은 언제쯤 올까. 그는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레퍼토리가 제한적이어서 베이스가 돋보일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며 “이번에는 영상으로 만나 아쉽지만, 언젠가 국내에서도 바그너를 비롯한 다양한 작곡가의 오페라를 라이브로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민/음악·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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