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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지하철 1호선은 내 꿈” 온몸 ‘끼’ 발산

등록 2007-07-26 21:02수정 2007-07-28 13:25

록뮤지컬 배우 오디션 현장
록뮤지컬 배우 오디션 현장
록뮤지컬 배우 오디션 현장
응시자들 대기실서 긴장 속 연습 땀방울
무대 올라 박자 틀리자 “다시 하겠습니다”
3~4수는 예사…“밥 만 먹여 주세요”

국내 최장기 공연물인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2007년 2차 공연팀(2007년 11월~2008년 4월)을 뽑는 3차 오디션이 있던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 23일 오후 찾아간 극장 문앞에는 젊은 남녀들이 악보를 들고 노래 연습에 한창이다. 지하 대기실로 내려가자 또 한무리가 대본을 들고 대사를 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벽 너머 오디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1차 오디션에서는 벽을 타고 흘러나오는 다른 응시자의 노래를 듣고 포기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2002년에도 봤다가 떨어졌어요. 앞 분들이 잘해서 긴장이 되네요.”(장아무개) “1차나 2차 오디션 때보다는 덜 떨리지만 그래도 긴장되죠. 중학교 때 처음 보고 예술고등학교를 가려고 마음 먹은 작품입니다. 이번에 떨어지더라도 내년에 또 도전할겁니다.”(김아무개)

오디션 현장에 들어가자 마침 무대 위로 막 한 응시자가 달려나왔다. 무대 앞 줄에는 김민기(56) 극단 학전 대표와 94년 초연 때 멤버였던 이미옥(35)씨, 그리고 이황의(38) 조연출가가 이력서를 살펴보고 있다. ‘세노야’의 작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김광희(56·명지대 초빙교수)씨도 객석에서 귀를 기울인다. 지정곡 ‘서울의 노래’ 음악반주가 나오고, 응시자가 첫 소절을 뽑는다. “서울! 하늘 아래 단 한곳….” 그러나 그만 한 박자가 빨랐다. 어쩔줄 몰라 잠시 당황하더니 응시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급히 외친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록뮤지컬 배우 오디션 현장
록뮤지컬 배우 오디션 현장
<지하철 1호선> 오디션 현장은 그야말로 배우 지망생들의 결전장이었다. 왜 <지하철 1호선>일까. “뮤지컬 하는 배우들에겐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꼭 이 작품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연극배우 응시자)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공연을 지켜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대학생) “사람 냄새 나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 지하철 1호선이 그런 공연이다.”(뮤지컬 배우)

그동안 이 뮤지컬을 거쳐간 배우며 가수들을 보면 응시자들의 선망이 이해가 된다. 지금 영화계 최고 스타인 설경구(94~98년)와 황정민(94~98년)씨, 조승우(2001년)씨가 모두 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떴다.’ 재즈가수 나윤선씨, 배우 방은진 장현성씨, 탤런트 김승욱 이두일씨, 그리고 뮤지컬 배우인 안유진 전병욱 이주원 김아선 구원영, 최재웅 김경선씨 등도 바로 이 오디션을 뚫고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다. 14년간 배우 180여명과 연주자 40여명이 <지하철 1호선>을 갈아탔다.

이번 오디션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응시자는 신동엽(27)씨. 뮤지컬 <렌트> <락 햄릿> 등으로 주목받는 배우다. 이미 검증된 연기자지만 오디션을 보러 왔다. “다음 작품을 고르다가 선배들이 <지하철 1호선>은 꼭 해봐야 한다고 추천했어요. 연기 비중이 크고 드라마가 많아서 김민기 선생님 밑에서 연기의 기본을 다져보고 싶습니다.”


이처럼 ‘고수’들이 많다보니 오디션은 재수가 기본이고 3~4수는 약과다. 7~8번씩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2005년 뮤지컬 <달고나>의 주인공인 정의욱씨는 8번 도전한 끝에 2004년 문디 역을 꿰찼고, 2005년 뮤지컬 <아이다>에서 옥주현씨와 함께 주연을 한 문혜영씨도 7번 쓴잔을 마시고서야 2002년 걸레 역으로 데뷔했다. 김민기씨가 들려주는 일화 하나. 2006년 공연에서 걸레 역으로 열연한 황예영(29)씨는 6번째 본 오디션 자리에서 “또 떨어지면 시집가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해 폭소를 자아냈다고 한다. 이듬해 또 오디션을 보러온 그를 기억한 김민기씨가 “시집 갔냐”고 묻자 황씨는 “한번만 더 해보고 정말 시집가겠다”고 대꾸해 또다시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그 해 그는 6전7기만에 합격했다.

지정연기 심사가 끝나자 응시자들은 잔뜩 긴장한 탓인지 모두 고개를 떨군 모습이다. 김민기씨가 툭 질문을 던진다. “페이(보수)는 최소 얼마를 생각하고 있나요?” 전혀 예상 못한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한 명이 용기를 냈다. “80만원요.” 그러자 다른 이가 맞받았다. “다른 극단에 1년반 있었는데 아직 페이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긴장이 풀린 응시자들은 그제서야 킥킥거린다. 이때 누군가 외친다. “밥 먹여 주실꺼죠?” 드디어 폭소가 터진다.

김민기씨에게 왜 보수를 물었냐고 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을 밝히니까 기대치에 못 미치면 안되니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고 싶었거든요. 예전엔 저희가 많이 주기로 소문났는데 요즘 대형 뮤지컬이 많이 나와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아요.” 김광희씨가 웃으며 반박을 했다. “아마 그거 생각하고 오는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하철 1호선>이니까요.”

<지하철 1호선> 탑승자들의 이름은 다음날 학전 게시판에 붙었다. 4전5기만에 승차 통보를 받은 김기정(28)씨의 목소리에선 감격과 각오가 동시에 묻어났다. “<지하철 1호선>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배역 하나 하나가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도전했죠. 이제는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배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확한 발음에 좋은 점수

목소리 매력 있어야…성의 부족 ‘감점’

이번 <지하철 1호선> 오디션에는 일반 응시자 265명과 학전 소속 배우 4명 등 모두 269명이 응시했다. 1차 노래심사, 2차 연기·안무심사, 3차 연기·노래심사를 거쳐 <지하철 1호선> 승무원이 된 이는 모두 11명.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어떤 점을 높이 샀을까?

오디션에서는 무엇보다 대사할 때 우리 말을 제대로 말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민기씨는 강조한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외국 팝이나 번역극 투의 대사에 익숙해 한국 발음과 뉘앙스가 올바르지 않다”면서 “심사에서 그런 버릇부터 걸러낸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연기는 연습으로 늘 수 있지만 잘못 배운 발음과 노래는 고치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94년 초연에서 주인공 선녀 역을 맡았던 배우 이미옥씨는 “노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소리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며 “테크닉은 좀 떨어져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목소리, 관객들을 사로잡을 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목소리를 찾는다”고 심사포인트를 일러주었다. 작곡가 김광희씨는 “요즘 지망생들이 너무 기성 가수들을 흉내내려고 한다”면서 “자기 개성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자신도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이황의 조연출가는 가장 큰 감점 대상은 준비 부족이나 성의부족이라고 잘라 말했다. “오디션에서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릴 수 있지만 성의가 없어서이거나 부족해 그런 것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는 또 “연기할 때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본다”고 덧붙였다.

독일 그립스극단 폴커 루드비히 대표의 뮤지컬 <리니에 1>을 김민기 대표가 번안해 들여온 <지하철 1호선>은 조선족 처녀 ‘선녀’가 백두산에서 사랑을 나눈 약혼자 ‘제비’를 찾아 서울에 와서 겪는 대도시 밑바닥 이야기다. 1994년 5월14일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시작해 14년 동안 3486회 무대에 올라 국내 최장수 공연으로 한국 공연사에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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