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보다 빛나는 ‘닥종이 장신구’
종이조형작가 김경신씨 18 일부터 전시회
보석을 물고 있는 브로치와 귀걸이. 금과 은을 바탕 금속으로 한글 자모를 응용한 디자인이 현대적이고, 물고 있는 보석은 그윽한 연두, 노랑, 보라색으로 기품 있는 여인을 연상케 한다.
“닥종이로 만든 겁니다.” 독일과 베트남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종이조형작가 김경신(52)씨가 전시회를 앞두고 최근작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칠기함에서 꺼낸 장신구들(사진 아래)은 생판 보도 듣도 못한 색감. 닥종이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릴 때 잠에서 깨어나 창호문을 투과해 들어온 은은한 아침 햇살의 느낌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제법 큰데도 무척 가볍다. 네 겹 여섯 겹으로 붙인 두툼한 닥종이를 얇은 금은 테두리로 감쌌다. 물에 풀리는 닥종이는 파라핀을 먹여 빛투과성을 살린 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핵심 기술은 금속 테두리를 감싸는 전해주조 기법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쓰이던 도금기술을 응용했다. 한쪽 전극에 닥종이를 달아 금 또는 은 전해질용액에 담그고 전류를 통하면 귀금속이 닥종이에 얇게 도금되는 방식이다. 닥종이는 부도체여서 은도료를 칠해야 하는데, 싸고자 하는 부위에, 또는 원하는 문양에 칠을 하면 그대로 도금된다. 판금 작업보다 시간과 재료가 덜 들고, 아무리 복잡해도 문제될 게 없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연구·실험한 기술로, 1995년과 1997년 독일과 한국에 발명특허를 냈다. 김씨의 장신구는 유럽인들을 매혹시켜 수집가가 생겼을 정도. 독일공예가협회 주최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전시회에는 10년째 초청받았고, 2002년 이래 뉴욕과 시카고에서 열리는 ‘소파’(SOFA·조각품 및 생활예술 장신구 국제전)에 초대작가로 참가했다.
그의 장신구 작업은 닥종이를 활용한 등, 신라 토기, 떨잠 등으로 넓히고 있다. “기왕의 국내 작품들은 너무 토속적이어서 세계인이 공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어요.” 닥종이의 장점을 활용했을 뿐 단점을 보완하지 못한 탓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어쩌다 한번 달고 꽁꽁 싸두기 마련인 장신구가 곁에 두고 조각품으로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번 전시회에는 상감칠기도 선보인다. 두꺼운 칠옻에 문양을 파내고 그 위에 색깔옻을 채워 입히는 방식이다. 기존의 것은 칠 위에 덧그리는 방식이었다. 신라 이후 나전으로 돌면서 끊어진 채색칠기와 청자의 상감기법을 종합해 되살려낸 전통이다. 전시회는 한국공예문화진흥원(02-733-9040)에서 18일부터 24일까지.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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