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 ‘돈주앙’에 이어
‘로미오 앤 줄리엣’도 인기
화려한 볼거리·서정적 멜로디
영·미 작품과 달라 색다른 맛
‘로미오 앤 줄리엣’도 인기
화려한 볼거리·서정적 멜로디
영·미 작품과 달라 색다른 맛
프랑스 뮤지컬이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십계>와 <노트르담 드 파리>가 각각 8만6천명, 7만2천명을 끌어모아 뮤지컬 흥행순위 5위와 7위에 올랐고, 연말 공연한 <돈주앙>은 짧은 공연기간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3만여명을 불러들였다. 올해에는 연초부터 <로미오 앤 줄리엣>이 뮤지컬 시장에서 프랑스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20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상연 중인 <로미오…>는 개막 한달 전에 전체 입장권 12만여석 가운데 4만석 넘게 팔아치우며 흥행몰이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 세 프랑스 뮤지컬은 사실 이야기 면에서는 너무나 익숙해 진부한 것들이다. 코미디 위주의 잘 짜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는 주목받지 못했고, 흥행도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높다. 왜 그럴까?
진부한 스토리, 세련미로 극복 프랑스 뮤지컬은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처럼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강조하기보다는 이미지나 화려한 볼거리로 승부하는 콘서트형을 지향한다. 이야기 구조와 대사를 간략하게 처리하되, 성긴 스토리 구조를 의상과 조명, 세트의 세련미로 포장한다. 이런 것들이 진부한 이야기를 보충해주는 동시에 색다른 재미로 파고드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화한 이야기는 자막만으로 극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한국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거부감을 오히려 없애주는 구실을 한다.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로미오…>는 죽음의 여신이나 유모 같은 인물을 추가했다. <돈주앙>은 기사의 저주를 받고,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는 것으로 바꿨다. 뮤지컬평론가 조용신씨는 “코미디나 유행을 지향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은 남녀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을 다룬 대서사극 위주여서 대극장에 맞게 볼거리가 화려하면서도 내용이 쉽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특징이자 강점 한국인들은 뮤지컬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음악을 꼽는 경향이 많다. 스토리가 탄탄해도 음악이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힘이 없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프랑스 뮤지컬의 음악은 서정적이다.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여서 색다를 것이 없다는 약점도 있지만 한국팬들에게는 그만큼 쉽게 곡조가 깊숙히 각인된다. 과거 감미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발라드나 샹송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돈주앙>의 ‘변화’(샹제)나 ‘쾌락’, <로미오앤줄리엣>의 ‘사랑한다는 건’이나 ‘세상의 왕들’ ‘베로나’ 같은 음악들이 “좋다”는 평을 들었는데, 이는 이러한 한국인의 정서와 꼭 맞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 음악 자체가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돈주앙>의 오리지널사운드 트랙이 함께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조명+의상, 전문 무용수로 볼거리 극대화 프랑스 뮤지컬들은 조명과 의상의 시각 효과를 중시한다. <로미오…>를 보면 캐퓰렛 가문과 몬테규 가문을 붉은색과 파란색 의상과 조명으로 대비시키고, 두 집안이 결합하는 부분을 보라색으로 표현하는 등 공연 내내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활용한다. <돈주앙>에서는 빗줄기 자체를 물이 아닌 조명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연기·노래·춤 모두를 소화하지 않고, 전문 배우와 무용수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한 것도 인기비결 가운데 하나다. 배우들은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로 승부를 걸고, 무용수는 난이도 높은 춤으로 승부한다. 그래서 발레나 현대무용, 아크로바트, 브레이크댄스 같은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기가 쉽다. 관객들로서는 춤만으로도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받아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씨는 “스토리를 강조하는 영미권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이 멜로디라인이나 조명, 의상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콘서트형 프랑스 뮤지컬에 색다른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