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형 연극 ‘쉬어 매드니스’
지난 23일, 연극 <쉬어 매드니스>를 본 관람객들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연극은 마치 ‘이보다 더한 관객참여형 연극은 없다.’고 작정한 듯 했다. 관객이 연극의 요소로 빨려들어가는 연극은 여럿 있었지만 <쉬어 매드니스>는 그보다 한단계 더 관객들을 연극 속으로 빨아들여 관객을 배우로 만들었다. 지난 3일 국내에 첫선을 보인 연극 <쉬어 매드니스>의 배경과 이야기 구성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무대의 공간은 성북동의 한 유니섹스 미용실 ‘쉬어 매드니스’. 말 많고, 분주한 토니(오용)와 미용사 미스 양(연보라)이 일하는 이 미용실 바로 위에 사는 왕년의 유명 피아니스트 노애심이 살해당한다.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이라곤 토니와 미스 양, 골동품 판매상 태진아(최무인), 사교계 명사 장여사(이지현) 뿐. 마 형사(이성민)와 조 형사(홍우진)는 이들 네 명을 살인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범인을 추적해 간다. 이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은 ‘증인’이 된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연극을 본 다음에는 ‘배우’가 되어 범행 현장의 재연과정을 검증하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 증언이 맞는지 따져 범인을 지목하는 일종의 ‘추리 게임’을 해야 한다. 용의자들은 인터미션 시간까지 객석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마 형사는 가장 유력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이날 낮 공연에선 미스 양이 지목됐다. 배우들과 살인사건 추리게임…관객반응 따라 매번 다른 버전 이 연극을 공연중인 뮤지컬해븐 박용호 대표는 미국 보스턴에서 처음 공연을 본 뒤 그자리에서 “이거다!”라며 판권을 사왔다고 한다. 쌍방향 소통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를 공략할 만한 키워드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쉬어 매드니스>가 1980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했는데 연극의 본고장 뉴욕에서 공연하지 않고서도 27년 동안 3만7천여회 공연, 전세계 73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도 배경이 됐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관객참여형(인터랙티브) 연극은 꾸준히 국내에서도 선보여왔다. <관객모독>이나 <버자이너 모놀로그> <술> <죽도록 행복한 사나이> <비언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참여 정도는 <쉬어 매드니스>와 비교가 안된다. 객석에 물을 뿌리거나, 관객을 무대로 끄집어내거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일부 가져다 쓰는 정도다. 그런 점에서 관객의 반응에 따라 ‘365일 다른 버전’을 공연하는 이 작품은 관객참여형 연극의 한계를 시험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관객들은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은 마형사가 수상하다” “태진아씨가 가방에 넣은 물건이 뭐냐?” “미스 양이 휴지통에 (살해도구로 지목된) 미용 가위를 넣어 나갔다” 등 ‘추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공연을 본 손병화(36)씨는 “관객들이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이 재밌었다”며 “다음번에는 누가 범인으로 지목되는지 한번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보완할 점도 있다. 산만하다, 재미 이외의 메시지는 찾기 어렵다는 평도 나온다. 박 대표도 “관객이 작품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묘미이긴 하지만, 배우의 즉흥 연기나 추리 과정이 단순한 면이 있다”며 “장기공연으로 기획된 만큼 관객의 반응을 봐가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색다른 연극을 보고 싶거나 추리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격일 듯. 오픈런(기간 정하지 않는 공연), 대학로 예술마당 2관. 1만5천~3만원. (02)744-4337.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