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퓰리처상·토니상 휩쓴 화제작
냉철하고 이지적인 원장수녀역
“연기인생 40여년 아직도 실험중”
냉철하고 이지적인 원장수녀역
“연기인생 40여년 아직도 실험중”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연기해왔던 게 아닌가…, 그런 회의를 갖게 됐어요. 실망시키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반문하기도 해요.”
‘국민 어머니 배우’ 김혜자(65)씨의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낙천적인 사람인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역을 맡아서 너무 힘들고 진이 빠지네요.” 무슨 역할이길래 연기 경력 40여 년,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로 꼽히는 김씨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다음달 5일 무대에 오르는 연극 <다우트>의 원장수녀 ‘엘로이셔스’ 바로 그 배역이다. <셜리 밸런타인> 이후 5년만에 돌아온 연극무대인데 예상 이상으로 만만찮은 모양이다. 공연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김씨는아직도 연출자에게 “무대에 올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고 한다. 무척이나 힘이 들어가는 듯 목소리는 피곤해 보였는데, 그래도 이날 연기만큼은 좋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연극 <다우트>는 이번에 극단 실험극장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주목받는 존 패트릭 셴리가 썼는데,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이듬해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신부의 부적절한 행동을 파헤치는 원장수녀를 통해 인간의 확신과 의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김씨가 맡은 엘로이셔스 원장수녀는 무척이나 냉철하고 이지적인 캐릭터로, 연극 속에서 중견배우 박지일씨가 맡은 플린 신부와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셜리…>에서처럼 웃음과 눈물 연기로 무대 압박감을 날려보낼 수도 없다. “엘로이셔스가 꼴보기 싫어서 두달 동안 출연을 망설였는데, 결국 그와 작품의 매력에 빠져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진이 빠지네요, 천성이 웃음인데 날 세우려니…
김씨는 요즘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엘로이셔스를 충실히 표현하기 위해 연극 연습할 때도 수녀 의상을 챙겨 입는다. “웃음이 많은 나와 정반대의 엘로이셔스가 되어야 하니까요.”
지적 심리극을 표방한 만큼 이 연극은 상당히 ‘어렵다’. 관객들에게 ‘무엇을 확신하는가?’ ‘그 확신의 이면에 무엇이고, 확신이 흔들리는 바탕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김씨가 묵직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나를 실험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연기는 타고 난 것이고, 열심히 대본 읽고 인물을 분석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무슨 역할이듯 자연스럽게 해내온 이 ‘연기 도사’가 이렇게까지 고민하며 노력한다는 이 수녀역이 그러면 ‘김혜자표’로 어떻게 새롭게 탄생할까. 노력의 결과는 12월5일부터 14일까지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월~금 오후 4시·8시, 토 4시·7시30분, 일 3시·6시. 2만5천~5만원. (02)764-5262.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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