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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혼을 다 쏟아! 그게 ‘모태의 힘’이야

등록 2006-11-05 17:31

‘국가브랜드 공연’ 1호 ‘태’ 막바지 연습
“자, 이 부분 대사 바뀌었어요. 이렇게 고칩니다.” 갑자기 연출가 오태석(66)씨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진다. “아니, 아니 감정을 더 실어야지.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배우들의 눈빛이 일제히 오 감독에게 쏠린다. 잠시 고민하던 성삼문과 현덕왕후의 동선이 바뀌고, 단종의 억양은 더욱 애절해진다.

지난달 30일 오후, 막바지 한창인 연극 <태>(<태(胎)> 연습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974년 초연 이후 33년만에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선정된 부담감 때문인지, 이날따라 연출가 오씨는 날카롭게 주문을 해댔다. 오씨는 연극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정인지 사돈 현씨의 대사를 일부 삽입했다. 다시 열정적인 주문이 이어진다. “더 울부짖어. 혼을 다 쏟아부으라고. 그래야 극이 더 생생해진다고.”

<태>는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고 장준하와 백기완씨를 체포하려고 내린 소급계엄령에 연세대 의대생들도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 뒤 오 감독이 직접 극본을 쓴 작품이다. 권력을 유지하려고 대 살육을 감행했던 세조, 그리고 사육신의 한명인 박팽년 가문의 대를 이으려는 한 여인의 몸부림이 기본 뼈대를 이룬다. 초연 이후 여러차례 무대에 오르며 유명해진 작품인데, 정작 원작자인 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벌써 30년이나 된 묵은 연극이라고? 흐른 세월만큼 <태>도 바뀌었다. “세월이 얼마인데….” 오 감독은 직접 원작을 손봤다.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왕후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새로 등장해서 이 작품의 주제인 모정을 더욱 부각시킨다.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도 원작에는 없던 인물이다. 세조 역시 인간적인 모습이 더해졌고, 나약하게만 그려졌던 단종도 강해졌다. “보시오 숙부, 내 몸도 토막내 주시요. 토막 난 어미에게서 나온 육신이지. 나도 토막으로 닮게 하여주오.” 끝까지 세조에 저항하는 강한 인물로 단종을 재해석했다.

원작 오태석씨 두번째 직접 연출
‘세조 인간적·단종 강하게’ 손질
10일부터 국립국장서 손님맞이

“원작에서는 세조가 사육신의 망령에 사로잡혀 갈피를 못 잡는 인물이었는데 이번에는 폭군이 아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살육을 선택해야 하는 고뇌가 더 많이 녹아있어요. 반면 신숙주는 더 냉철하고 차가워졌죠.”(장민호·신숙주 역) “원작보다 이야기를 더 쉽게 풀었고, 새로운 인물도 등장합니다. 단종이 특히 많이 달라졌는데 어린 비운의 왕이 아니라 성숙한 인물로 그려 이색적입니다. 예전보다 세조 역할 하기에는 더 쉬워졌고요.”(김재건·세조 역)

업그레이드된 2006년판 <태>의 백미는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할아버지(박중림)를 죽이게 되는 박팽년의 며느리, 그리고 주인인 박팽년 가문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이가 대신 희생 되는 박씨 집안 여종이 울부짖는 장면이다. 두 여인의 기구한 운명은 신분과 처지를 떠나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정치권력에 맞선 자궁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야. 죽은 자 앞에서 누구나 부끄럽잖아. 그래서 ‘죽은 자’들을 보강했어.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거지. 잉태한 자식을 향한 모정과 한국인의 원형적인 생명의지(모태), 생명의 존엄성을 고스란히 담은 거지.”(오태석)


<태>는 11월10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원로배우 장민호, 백성희씨를 문영수, 이승옥, 오영수, 최상설, 서희승씨 등이 출연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30분, 공휴일·일요일 오후 4시. 2만~3만원. 1588-7890, 1544-1555.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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